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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와 예술가의 창조력

 예술계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범람하고 있는데, 대개가 디지털기술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런데 디지털기술과 예술의 융합에 관한 관심과 시도는 이미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권 초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건립이 추진되었는데, 기본 설계를 구상하던 학자들은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 이야기산업, 아카이브가 주가 되는 문화콘텐츠가 미래의 문화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문화콘텐츠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던 정부나 예술계는 이들의 예측을 간과했고, 이후 아시아문화전당의 예산과 사업은 파행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문화산업에 주춧돌이 되는 아카이브사업이 다수 수행되었으나 대부분 지속발전성을 갖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문화산업에서 이니셔티브를 가지게 된 것은 문화융성을 정책 드라이브로 들고 나온 박근혜 정권이었다. 

  이 시기에는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시도했던 각종 문화콘텐츠 사업들이 증폭하였는데, 문화창조벨트, cel문화창조아카데미, 콘텐츠코리아랩 등 각종 문화창조 관련 인프라 설립과 이 기관들에서 쏟아 낸 사업들이 그 결과이다.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4대 정권을 거쳐오면서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공연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2월의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그 진면모를 볼 수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보여준 디지털기술과 융합한 공연은 공연예술에서 이 이상으로 특이할 것이 있을까 싶으면서, *'특이성(Singularity, 싱큐래러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특이성’이란 기술의 궁극으로 인한 특이한 세계, 미래 혹은 초월의 세계를 의미한다.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몬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의 저서 『특이성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2005)에서 유래하였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일군의 과학자, 예술가, 미래학자들이 10여년 전부터 디지털기술에 의해 특이한 세계가 펼쳐질 것을 예측하였다. 이들은 '특이성'에 해당하는 다양한 연구들을 수행하며, 미래 인재를 양성해 오고 있었다. 이중 ‘에디슨의 진정한 후계자’로 주목받는 레이몬드 커즈와일은 미국 서부의 미국항공우주국(NASA, 나사) 부지에 싱귤래러티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을 설립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싱귤래러티대학은 NASA가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곳으로 다양한 전공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며, 인류를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창업으로 연결하는 대학원으로 유명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정부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창의성은 예술가들에게 특화된 영역이었으며, 예술가들에게는 이로 인한 특권 또한 존재했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데이터와 플랫폼을 활용하면 누구나 창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예술가들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재정의하거나 창의력을 확장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예술교육자 로잔느 서머슨와 마라 허마노는 예술이란 재능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비평적 창조 작업이라 말한다. 그들은 예술가에 대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혹은 환경에서 영감과 정보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인이며, ‘문화의 큐레이터’라고 표현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예술에서는 의미가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예술이라는 것은 세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데이터에서 연계성 혹은 가능성을 찾고 필요한 정보와 이미지를 선택해서 적정한 매체로 배열 혹은 편집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의미를 발현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창조의 새로운 방식의 하나로 ‘큐레토리얼’을 제안할 수 있겠다. 큐레토리얼은 문화학자 김정운이 내세운 ‘에디토리얼’, 즉 편집능력과 대체할 수 있는 단어이다. 김정운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편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데이터들의 의미를 연결하고 메타데이터를 구성해서 새로운 것으로 편집하는 능력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조력이 될 것이다.


글_ 편집주간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