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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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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난무하는 무용계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위드유

 한동안 우리 사회가 꽤 시끄러웠다.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MeToo)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그 파장이 크게 일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용기를 얻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봇물 터지듯이 #미투를 외치었고, 그 파장은 연예계, 정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 모든 하나하나의 고발은 가히 충격적이었으며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 병폐가 젖어들어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방증이기도 하였다. 무용계라고 다르지는 않을 터, 그 고름이 언제쯤 흘러나올 것인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으나 침묵은 예상보다도 오래 가고 있다.

 연극계의 거물이 매일같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대국민 사기극과 같은 ‘사죄 공연’까지 펼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 까지 했던 문학계의 거장은 폭로를 당한 이후 겁쟁이처럼 숨어 지내며 비겁한 행보를 하고 있다. 전통문화계 역시 타격을 받았으며 그 여파로 인간문화재 제도마저 흔들어놓고 있다. 유독 음악계와 무용계가 조용했는데, 얼마 전 아카데미 쪽에서부터 조금씩 썩은 물이 새어나오고 있다. 교수들 사이의 알력싸움으로 변질되어 버린 어이없는 고발 사건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조용하게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무용계의 테두리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부유하고 있다. 실제 성폭력의 피해자도 있을 테고, 옆에서 보고 들은 간접경험자, 혹은 이러저러한 경로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을 터이다. 그들은 은밀하게 삼삼오오 이야기하지만 용기 있게 나서거나 #미투에 나서지는 않는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법조계를 필두로 정계와 연예계에서 우후죽순으로 폭로가 이어질 때 다른 분야에 비해 예술계가 쉬쉬하며 훨씬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뉴스에서 분석하기도 하였다. 큰 이유를 들자면 이 것이다. 무용이나 전통예술, 음악 등 이른바 순수예술 분야는 여전히 도제식 교육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섣불리 폭로를 하였다가 오히려 피해자가 주위의 눈총을 받고 더 이상 그 분야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는 요상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그리고 무용계의 실태가 딱 그러하다. 본 웹진의 인사이트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던 바와 같이 무용계의 권력층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 여기서 무소불위의 권력층을 대표적으로 꼽자면, 한 번 획득하면 사라지지 않는 철밥통을 끌어안고 제자들을 줄 세우고 자신들의 후계자를 선택하여 영원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교수들과 칼보다 무서운 펜의 위력을 가지고 무용가들을 쥐락펴락 하며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비평가들을 들 수 있다. 참 구시대적인 모습 같지만 여전히 이런 사태를 목격할 수 있는 곳이 무용계다. 부패한 권력의 피해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건강하지 못한 권력을 생산한다. 이 부패 권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보다도 몇 겹의 힘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미투 운동은 권력과의 싸움이다. 단순한 성폭력의 피해자와 #미투의 피해자의 차이라면 그들은 권력 구조에서 하위에 있다는 데 있다.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억누르며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차마 저항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권력 구조 아래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무용계가 #미투 운동에 침묵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을 알기에 더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무용계가 취해온 태도는 ‘우리가 남이가’ 식의 무용계 감싸기 혹은 침묵과 방관이었다. 예술적 성과와 도덕성을 굳이 선 그어가며 우리식구 감싸기를 이어 온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사회가 아니다.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성에 대한 인식 뿐 아니라 권력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였다. 피해자의 용기에 동참하는 #위드유 역시 확산되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금이 바로 무용계가 변화하고 건강한 춤 생태계를 일구어 나갈 시대적 계기가 아닐까.

 약 한 달 전인 3월 19일 (사)한국무용협회가 #미투 사태에 대하여 피해자와 약자의 편에 서는 입장을 발표한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고무적이다. 이후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어 단순한 모양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으나, 협회의 앞으로의 입장과 행보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윤단우 무용 칼럼니스트 역시 언론에서 무용계의 #미투를 다루며 문제제기를 하였다. 본 웹진에서도 무용계의 적폐를 고발하는 ‘블랙페이지’ 코너를 통해 무용계 내 성폭력 실태를 다룬다.

 이 모든 것들이 #위드유가 되어 무용계 내 피해자들과 약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위드유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그래서 정말로 무용계를 움직일 수 있으려면 용기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위드유란 행동이다. 삼삼오오 은밀하게 속닥거리는 뒷담화와 무기력한 수수방관은 이제 그치고 결집된 목소리로 #위드유를 실천해서 무용계 #미투에 힘을 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_ 편집장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