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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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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하(現下) 백세시대에서 요설(饒舌)

  흔히 요즘을 백세 시대라 말한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다 백세를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복지제도와 의학이 발달하면서 100세를 넘는 인구가 늘어났고, 노년층이 이에 비례하여 증가하면서 붙여진 명칭일 것이다. 이제는 예전 나이에서 10~20세 내외는 빼야 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니 지하철 노약자석은 웬만큼 나이가 들지 않고서는 앉기 힘든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직업군 중 장수하는 분야로 어떠한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경우로 오케스트라 지휘자라 말한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로 일컫는 헤르베르트 폰 카랴얀도 70대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다 80여 세에 생을 마감하였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도 90여 세까지 사는 등 많은 지휘자들이 장수하며 노년까지 현역에서 활동 하였다. 이러한 원인으로 역동성을 들 수 있다. 몇 시간 서서 지휘를 하니 그만큼의 체력이 필요하여 평소 건강관리를 하였을 것이고, 지휘봉 하나에 수많은 단원을 결집시키는 쾌감 그리고 즐기며 평생 할 수 있었다는 가장 중요한 원인에 바탕을 둘 수 있다. 지휘자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단점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보면 무용인도 장수군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한다. 이는 평생 몸을 움직이며 일을 즐기면서 창작을 하니 장수 직업군으로 이해될 수 있다. 얼핏 머릿속을 스치는 대가 몇 분을 기억하여 보아도 쉽게 이해가 되며 그 뒤를 잇는 중장년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는 모습도 그러한 예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 무대는 제한되거나 창조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중장년층의 공연은 예전 작품을 변용시키거나 ○○ 주년 기념 공연으로 한 작품 정도 서는 것이 관례처럼 행해졌다. 이는 몸에서 오는 한계도 있을 것이고, 무대를 만들고 싶어도 어떠한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여 이러한 회고에 의탁한데 기인할 것이다.

 

최근 여러 재단의 지원 사업을 통해 공연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무용은 흔히 돈을 벌기보다는 쓰는 구조라 말하는데 이런 지원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 게다가 젊은 무용인에게는 마중물로 의미가 크다. 흔히 88만원 세대라 일컫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자그마한 희망을 주고,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작은 토대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원은 대상이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이들의 공연을 연속적으로 보다보면 토대를 주는 공연으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설익어 그에 합당한 과정과 결과를 주었는가 의문이 되는 경우도 보게 된다. 며칠 전 모재단의 지원을 받은 공연을 보게 되었다. 공연 전 팸플릿의 내용은 현학적이며 아카데믹한 인상이 강하였지만 무언가 의미를 주겠지 하고 기대지평을 갖게 하였다. 그런데 높게 보더라도 대학 무용과 졸업 작품 수준에서 조금 넘어서는 무대를 보고는 너무 무분별한 지원의 쏠림 현상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게 만들었다.

 

이젠 이런 지원도 다양화, 특성화가 필요할 듯하다. 특히 앞서 말한 노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지원도 가시화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젠 중장년층도 예전 어른입네 하고 뒷짐질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며 그들도 그런 행위를 한다면 좋은 시선이 아님을 알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 대한 해답으로 최근 몇몇 중장년 무용수의 신작 창작 공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무대가 예전처럼 번득이는 치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이에 걸맞은 표현과 담론으로 관객에게도 잔잔한 감흥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업난에 20대 창업 계속 늘어베이비붐 은퇴로 60대 창업도’(뉴시스, 2018.9.20.)라는 기사를 보면 지난해 전체 사업체 수 증가분(7285) 중 절반 이상(74.0%)60대 이상의 창업이었다.” 라 하여 중장년의 일상적 문제를 수치로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중장년은 경제성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참여가 현실적 문제로 다가선 것이다.

 

이들이 그동안 많은 혜택을 누렸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진취적인 활동을 벌이는 층위에게 일정 부분 기회균등을 준다면 영속성과 삶의 질을 높이고 구조화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동안 혜택을 받지 못하고 현역에서 꾸준하게 활동한 무용인에게의 혜택이란 측면에서도 필요하며 후배들에게도 하나의 모범을 남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중장년층에 대한 배려는 공연 지원뿐만 아니라 여러 복지 등의 문제에서도 곰곰이 함께 생각할 현실적 문제로 등장하였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글_ 편집자문 김호연(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