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을 비롯한 소위 ‘순수예술’의 현장에서 ‘대중화’는 매우 절박하고 중요한 슬로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원금이라는 제도의 뒷받침 없이 자생할 수 없는 순수예술계에서 시장 창출의 필요성은 세계의 존폐와 긴밀한 관련이 있으며,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인 ‘대중’이라는 존재는 예술계가 자생하기 위한 대안처럼 긴급하게 호출된다. 하여 예술가들은 ‘대중’이라는 잠재고객을 향해 ‘대중적인’ 작품 또는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이러한 예술가들의 노력은 흔히 ‘대중화’라는 표현으로 통칭된다.
그러나 엄연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존재하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특히 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는 예술은 그 타깃이 ‘대중’이 될 수 없다. 공연예술 시장의 두 축을 이룬다고 할 뮤지컬과 콘서트의 경우에도 상품으로서의 공연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공연의 레퍼토리와 출연자, 공연장과 가격 등 공연상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까다롭게 검토해 구매를 결정하며, 소비재 시장에서 이렇듯 다각적인 검토를 거쳐 구매가 이루어지는 고관여상품을 대중상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관객층이 한정된 순수예술 시장,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를 차지하는 전통예술이나 무용 공연에 ‘대중’이란 개념을 들이미는 것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격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무용계에서는 창작과 비평의 영역 모두에서 이 ‘대중’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모색하는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시장의 소비자로 상정된 ‘대중’에 대한 이렇다 할 분석이나 타깃팅 없이 무용의 ‘대중화’라는 구호만 난무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본 토론문에서는 춤현장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대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중, 대중적인, 대중화
무용계에서 통용되는 ‘대중’의 의미는 사전적 의미의 ‘대중’과는 다르다. 무용계에서 말하는 ‘대중’이란 무용 비전공인 또는 비무용인을 의미하며, ‘대중화’는 그 무용 비전공인이나 비무용인이 무용 공연을 보러 오도록 만드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즉, 무용의 대중화란 무용 저변 확대를 편리하게 이르는 말로, 무용계의 시장 개척 운동 또는 그러한 소망을 담은 표현인 것이다.
저변 확대가 ‘대중화’로 대체되어 저항 없이 사용되는 동안 본디 현상을 지칭하는 이 표현이 운동에 사용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특별히 지적된 바가 없다. 창작과 제작의 영역에서 대중화가 화두로 떠오르는 동안 비평 쪽에서는 이 표현에 대해 무관심했다.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대중화는 대한민국 고도성장기의 핵심적 단어인 산업화 및 도시화와 연관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세계의 ‘발전’을 위한 키워드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대중화는 산업화 및 대중화와 궤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 예로 든 두 표현과 달리 ‘대중화’에서는 핵심단어인 ‘대중’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채 통용되며 대중화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놓치고 있다.
즉, 무용 비전공인이거나 비무용인으로 일생 동안 한번도 무용 공연의 소비자였던 적이 없는 이를 ‘대중’이라고 칭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대중’의 무리에 속해 있는 어떤 개인이 무용 공연이라는 고관여상품을 구매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대중’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 무용계에서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는 무용 비전공인과 비무용인은 공연의 티켓을 구매하여 공연장의 객석을 채우는 머릿수로 시장 개척의 대상일 뿐 담론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 혹시 반감이 든다면 ‘대중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비평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이 수식어를 단 작품들의 수준이나 내용이 어떠한지 떠올려본다면 이해가 손쉬울 것이다.)
시민으로 참여하는 예술 민주화
최근 수 년 동안의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는 커뮤니티댄스 등과 같이 종전의 공연에서 관객의 위치를 점하는 ‘일반인’들이 공연의 주체로 나서는 작업들이 부쩍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관의 지원 증대는 이 흐름을 강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일반인’은 위 단락에서 언급한 ‘대중’의 다른 표현으로, 무용 비전공인이나 비무용인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
무용인과 일반인들이 공연자와 관객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주체로 한 자리에 어우러지는 발표의 현장이 늘어나고 있는 데 비해 이러한 현장에 대한 비평은 턱없이 부족하다. 커뮤니티댄스로 통칭되는 이 발표의 현장은 예술의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한 시민활동의 하나로 간주되고, 그렇기에 비평에 있어서도 이를 기록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요구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무용인들에게 커뮤니티댄스는 지원금 사업을 통한 생계유지의 한 수단일 뿐 예술활동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커뮤니티댄스라는 이름의 시민활동은 예술의 수용자로 고정되어 있던 역할을 파괴하고 예술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기존에 예술가들만이 누리던 지위를 공유하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즉, 예술가들이 점유하던 예술과 수용자를 매개하는 중간자 역할에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의 일반인들은 더 이상 위 단락에서 대중으로 통칭되던 수용자가 아니다. 이들의 활동은 무용계에서 말하는 대중화의 반대편에 위치한 예술 민주화로 바라봐야 하며 이를 읽어내는 것 또한 비평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위원)
*이 글은 댄스포스트코리아가 주최한 춤비평 세미나 ‘동시대 춤비평의 현실 - 부재·간극·저 멀리’에 발제한 원고를 다듬어 재수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