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짐 히크매트는 <진정한 여행>에서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다”고 읊조렸습니다. 희망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겠지만 나짐은 불멸의 춤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모든 무용가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불멸의 춤을 추기 때문이지요.
춤은 춤추는 순간에 속절없이 사라지는 예술입니다. 그러기에 무용가들은 매번 자기 생애 최고의 춤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불멸의 춤을 추게 됩니다. 춤을 추면서 가졌던 생각, 들었던 음악 선율, 입었던 의상의 촉감, 객석으로부터 전해진 감동 등은 무용가의 몸에 각인되어 아카이빙 되겠지요. 그러나 무용가의 몸이 소멸하면 그 아카이브는 소멸합니다. 무용가 한 사람이 죽으면 그가 가졌던 수십 개의 아카이브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무용가의 공연을 보았던 관객의 기억에 잔상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춤은 외재적인 글, 그림, 사진, 동영상, ICT 맵핑 등 매체에 남기지 않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지고의 예술인 춤이 지존의 예술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이처럼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춤의 문외한들은 최첨단 영상과 ICT 기술이 있으니 춤은 얼마든지 기록, 재현, 복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생각, 감각, 감정을 담은 몸이 장소에 따라서, 춤의 환경에 따라서 시시각각 찰나로 변하는데 어떤 매체가 이를 완전하게 담을 수 있으려고요.
살아 있는 무용가들이 추는 불멸의 춤에 비한다면 모든 매체의 춤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춤잡지는 글과 사진이라는 두 가지 매체를 활용해서 춤을 기록하고 현존하는 무용가들의 말과 당대 필진의 연구로 미완의 춤기록을 보충해가는 복합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문장에 ‘현존’과 ‘당대’라는 용어가 등장하듯이 춤잡지에서 중요한 것은 시의성입니다. 동시대의 춤공연, 춤의 인물, 춤을 둘러싼 담론, 춤의 사건 등 당대 춤현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의 춤기록’을 댄스포스트코리아의 모토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기록, 편집, 인쇄, 배포로 이루어지는 잡지의 제작에서 당대의 지배적인 매체 기술은 많은 영향을 줍니다.
댄스포스트코리아는 종이 잡지가 웹진과 멜진으로 이행되던 무렵인 2013년에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매체 기술은 순식간에 변합니다. 얼마 전부터 ICT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잡지에도 ICT 기술이 도입되면서 댄스포스트코리아에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아직은 ICT 기반의 웹진 제작이 보편화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개편을 하려면 고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지난 4년간 지원기관에 신청서를 냈지만, 무용부문 심의위원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터무니없는 지원금을 받고서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 지원금으로는 원고료를 지급하기도 벅찼습니다. 권력의지가 약한 지식인 서너 명과 투박한 형태로 웹진을 발행하다 보니 무용가들에게 광고는커녕 주변 지인들에게 구독을 요청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절박함과 진심이 통한 것일까요. 작년 말에 무용인들이 부재한 2차 심의면접에서 이 시대 춤잡지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더니 1천만 원의 지원금을 결정해주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서 2020 문예진흥기금 공연예술비평연구활성화지원에 참여하신 심의위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1천만 원으로는 최신의 웹진 경향을 반영하여 변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휘청거리지 않을 정도의 제작비를 더해 댄스포스트코리아의 개편을 수용해주신 브랜딩 파트너스의 강준현 대표이사님과 편집진의 무모한 상상을 온라인상에 구현해 내기 위해 밤낮없이 고생하신 박정미 팀장님 이하 기술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여 년 전에 춤잡지 제작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매달 막대한 자본, 시간, 노동을 소비하느라고 삶이 너덜거린 적이 있습니다. 업계 최하위 잡지를 최상위 잡지로 끌어올리면서 터득한 사실은 잡지의 생명은 좋은 인재와 시대가 요구하는 콘텐츠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 교훈을 주었던 인재 중의 한 명이 이희나 편집주간입니다. 이희나 주간은 수년 전에 가족과 모스크바로 이주하였고, 이국땅에서 원격으로 댄스포스트코리아의 편집에 참여하고 있는 능력자입니다. 장지원 편집장은 댄스포스트코리아의 창간 때부터 동고동락하고 있는 인재입니다. 장 편집장의 인품은 무용계 최고의 명품이며, 차분하고 친절한 그의 리더십은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김현지 씨는 대학 1학년 때 아르바이트 학생으로 한국춤문화자료원에 들어와서 벌써 5년차가 된 큰 일꾼입니다. 현지 씨는 변변치 않은 댄스포스트코리아의 살림을 꾸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개편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정도로 인재로 성장하여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 어린 관리인, 착한 편집장, 잡다하게 바쁜 발행인의 빈 구석을 메우는 것은 윤단우 부편집장과 김향 박사입니다. 윤단우 부편집장의 무용계 개혁을 향한 도전과 용기는 심장을 뛰게 합니다. 윤 부편집장의 블랙페이지를 통해 무용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향 박사의 냉철한 판단력은 댄스포스트코리아의 중심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무용 전공 세 명의 인재들이 댄스포스트코리아의 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 날을 머리를 맞대고 구상하던 서현재 씨와 윤혜린 씨가 만든 댄포코TV의 안무리서치 영상은 단박에 히트를 쳤습니다. 페이스북에 안무리서치 영상이 올려진 3일 만에 조회수 1,800회를 상회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환한 댄스포스트코리아의 개편은 외형에 끝나지 않습니다. 콘텐츠 면에서도 개혁에 가깝습니다. 어떤 콘텐츠들이 생성되었는지는 유튜브 댄포코TV에서 연예인 초월 외모를 지닌 김서희 씨의 소개로 확인해 보시지요. 이렇게 출중한 인재들과 함께 만드는 댄스포스트코리아라서 자랑스럽고 발행인으로서 행복합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관점과 표준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고, 이를 뉴노멀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번 개편을 통해 댄스포스트코리아는 춤잡지의 뉴노멀 시대를 열었다고 자부하며, 더불어 이달부터 뉴스레터를 월말 발행에서 월초 발행으로 변경하여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좋은 잡지는 좋은 독자가 완성합니다. 댄스포스트코리아가 이 시대의 신뢰 받는 춤기록 미디어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열렬한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글_최해리(무용인류학자, 댄스포스트코리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