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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공연예술의 새 지형도

위기의 순간에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모스크바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전쟁박물관이 있다. 당시의 모든 전투에 대한 기록과 함께 전쟁 시기의 삶의 비참함과 희생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폭격으로 부서진 벽의 벽보, 흙먼지가 쌓이고 찢어진 신문과 전단지에서 발견된 오페라와 발레 공연 포스터와 광고였다. 하루 먹고 살 음식조차 부족한 그때, 내일 혹여나 죽을지도 모르는 긴장 가득한 전시 상황 속에서도 러시아인들은 차이콥스키를 듣고 <백조의 호수>를 보았다. 이러한 역사의 기록은 예술이 삶의 풍요 위에서 누리는 잉여적인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다. 전시 상황에서 예술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함, 공허함을 달래는 삶의 일부와 같은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휘저어 놓고 있다. 신종 플루나 메르스가 유행할 때에도 이 정도의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현대에 감염병으로 인해 휴교를 하거나 직장을 가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물며 공연이 취소된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금 전 세계를 집단 패닉으로 몰아넣고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마비시켰다. 한국보다 전파가 늦었던 러시아는 공용 시설을 폐쇄 조치하고 시민들의 자가격리를 강제하는 방안을 한 달 넘게 유지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공연장들은 현재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폐쇄한 상태이다.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감염의 불안과 공포가 좁혀오면서, 사람들은 평소에는 삶에 치여 지나쳐버렸던 문화예술로 관심을 돌리는 것 같다. 어쩌면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러시아인들처럼 예술을 통해 패닉을 해소하고 무너진 일상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예술계 역시 방법을 달리하여 관객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미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가상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구동하고 있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SNS를 통해 하루에 한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일종의 ‘온라인 도슨트’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웹사이트를 접속하면 마치 관람자가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이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온라인상에서 미술관의 구석구석을 줌-인 줌-아웃 하며 감상할 수도 있다. 작품의 실제 질감이나 공간 구도와 분위기 등을 100% 체험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관람 방식은 미술 작품 감상 및 창작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자극 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시간적 제약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시각예술과 달리 공연예술은 타격이 훨씬 커 보인다. 미리 계획된 하루 이틀의 기간에, 정해진 시간 동안 무대에 오르고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 공연예술의 운명이다. 일 년치가 짜인 스케줄에서 주어진 공연 일시가 지나가버리면 무대에 설 기회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 음악가 및 무용가는 SNS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개인적인 라이브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간단한 발레클래스를 실시간으로 방송하며 온라인 댓글로 쌍방소통을 하는 일종의 팬서비스도 제공한다. 모든 예술가들의 유튜버화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춤이라는 공연 형식은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특수한 상태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수가 없다. 특히 러시아에서의 춤 공연은 대부분 발레이기 때문에 공연 생중계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볼쇼이나 마린스키 같이 큰 발레단은 과거의 공연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려 24시간 동안 상영하는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간간히 현대 작품이 있기도 하지만 상영작의 대부분은 고전 발레이다. 프로시니엄 무대에 최적화된 고전 발레 형식은 영상으로 감상하기에 가장 편안하며 호응도가 높을 것이다. 어찌 보면 모니터 앞의 관객은 실제 극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보는 것과 같다. 게다가 친숙한 음악과 내용이 있는 고전 발레는 관객이 마치 영화에 몰입하듯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발레 영상을 보며 환상에 빠지고 감동을 받고 잠시 현실 도피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고전 발레와 다르다. 대부분의 컨템포러리 작품들은 고전 발레가 추구하는 원근법적 구도로 짜여있지 않으며, 내용과 움직임 역시 추상성이 짙은 작품이 많다. 카메라와 모니터라는 기계장치를 사이에 두고 무대 위 무용수의 몸과 관객의 몸이 소통하기에는 거리감이 너무 크다. 한국에서는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가운데 몇몇 공연들은 관객 없이 공연을 진행하여 인터넷 TV로 생중계하였다(댄스포스트코리아 3월호 리뷰 , 4월호 리뷰 ‘2020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 참고). 관객이 화면 속의 춤을 보아야 함에도 카메라 움직임을 자꾸만 의식하게 되는 것은 분명 영상으로 보는 춤의 한계일 것이다.

 

 

 

온라인 춤 공연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부분에서 그 이전과 이후 세계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한다. 경제, 정치, 문화, 사회 구조, 그리고 세계의 역학 구도 역시 많은 부분이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공연예술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공연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이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다양한 선택과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해 주었다. 온라인 춤 공연 생중계라는 것은 코로나 상황과 공연 내외적인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시도였겠으나 지금까지는 시도해보기 힘들었던 방식이다. 공연예술은 관객과 작품이 직접 만나는 현장성, 공연함과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순간성을 담보한다. 때문에 코로나 이전까지 공연 영상은 기록의 차원에서 고려된 것이지 창작 내지는 공연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법의 차원으로 고민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온라인 춤 생중계라 했지만 그것이 여느 춤 영상과 특별히 다른 점은 별로 없었다. 무대 전체를 보여주는 풀 샷과 줌 인, 무용수들 표정의 클로즈업, 카메라의 움직임은 관객들의 시각을 통제한다. 공연 현장이라면 어떤 무용수가 움직이는 동안 내가 무대의 다른 쪽을 바라볼 수 있지만, 영상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현장에서의 30초 암전과 영상에서의 30초 암전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공연장 무대에서 움직이지 않는 무용수를 마주할 때 경험하게 되는 긴장감을 영상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용수들의 무게감과 질감, 호흡의 강도, 힘의 흐름 등을 영상으로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춤 작품은 당연히 극장에서 감상할 때와 다른 지각 경험을 하게 되고 다른 해석을 하게 한다. 이 지점에서, 기록을 위한 춤 영상과 공연을 위한 춤 영상, 혹은 상영을 위한 춤 영상 사이의 경계와 그 차이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시도와 논의는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있어왔으며,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협업 역시도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작업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디지털아트 개념도 2000년대 이후로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춤 공연 역시도 영상이나 인터랙티브 장치들, 홀로그램 등의 여러 가지 기술적 장치들을 사용하며 인간 몸 움직임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러나 그 수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춤을 현장성과 순간성에서 분리시키지는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삶의 모든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중이다. 예술의 패러다임 역시 변화하고 있다. 오프라인 예술에서 온라인 예술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았던 예술에서 접속이 가능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유비쿼터스 예술로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말처럼, 예술의 미디어(매체, 전달 방식)가 변화하면 그것이 우리와 관계 맺는 방식 역시 변화하게 된다. 온라인 춤 생중계와 같은 공연 형식이 앞으로 계속될지, 혹은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유지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여러 가지 시도들이 예술을 창작하고 지각하는 우리의 사고회로를 넓혀주고 있음은 사실이다. 코로나 시대의 예술 패러다임은 춤 공연에 존재론적 질문을 새롭게 던지고 있다.

 

 

 


 

 

 

글_ 편집주간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