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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현실에 맞는 방역 정책이 필요하다

OECD의 빈센트 코엔 경제검토 과장은 지난 8월 발표한 「2020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1.2%에서 -0.8%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이 수치는 한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가장 적은 나라임을 뜻한다.

 

그러나 웃음 지을 일은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4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3%로 제시했다(이는 당초 전망치인 2.1%에서 수정한 것이지만) 8월 -0.5%로 하향 수정했다. 이렇듯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하면서도 상반기에는 경제가 역성장하다 하반기에 반등세로 돌아서 1.4%가량 성장한다는 V자 또는 U자 형태의 경기 반등이 이뤄진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하반기에도 역성장이 계속되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해졌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희망적인 시나리오로 거론됐던 V자, 혹은 U자 형태의 경기 반등보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상의 W자 형태의 이중침체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하향 수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공연 취소와 잠정 연기의 반복, 코로나 위기 속 단체들 

 

모든 분야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현장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연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공연 매출액은 4월에 47억 원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5월부터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했으나 8월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방역이 강화되면서 국공립 공연장들은 다시 문을 닫았고 회복세를 이끌어가던 대형 뮤지컬 공연들도 잇따라 조기 종연을 선택해 기약할 수 없는 침체기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국공립 공연장을 무대로 하거나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는 무용계는 참혹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코로나 확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립단체의 경우 올 시즌은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인데, 국립무용단은 1월에 올린 명절기획 시리즈 <설·바람> 이후 4월 <묵향>과 <향연>의 온라인 상영 외에는 6월 예정작 <제의>와 9월로 예정되었던 손인영 예술감독의 신작 <다섯 오>를 모두 취소한 채 11월 <가무악칠채>와 <홀춤>이 올려지기까지 다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11월 공연이 무사히 올려진다면 무려 10개월 만에 관객들과 무대에서 만나게 되는 셈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상황도 비슷한데, 현장 공연이 어려워진 상황을 온라인 상영으로 돌파하려는 노력이 좀 더 눈에 띈다. 4월에 시즌 개막작으로 준비했던 <오프닝>을 잠정 연기하고 <오프닝> 공연에서 선보일 예정이었던 안성수 전 예술감독의 안무작 <봄의 제전>의 온라인 상영을 시작으로 5월에는 김보람 안무의 <철저하게 처절하게>, 안성수 안무의 <혼합>, 정철인 안무의 〈0g〉, 페르난도 멜로의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를 상영했다. 6월이 되어서도 코로나 확산세가 잡히지 않자 <오프닝> 무대에서 공연하려던 신창호 안무의 신작 <비욘드 블랙>을 댄스필름 형태로 편집한 영상을 온라인에서 선보이고 7월에는 <스텝업>으로 온라인 상영을 이어갔다. 

 

8월에 예정되었던 <스윙>의 지방 순회공연도 일부는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고 또 일부는 온라인 상영으로 전환되었고 10월 예정작인 남정호 예술감독의 신작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의 현장 공연과 온라인 중계가 동시에 진행된다. 

 

올해 상반기 공연을 대부분 취소하거나 잠정 연기한 국립발레단은 티켓 오픈과 환불을 반복하며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2월에 대구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 뒤 여수와 전주 공연을 취소한 것을 시작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시즌 개막작으로 올려질 예정이었던 3월작 <백조의 호수>와 <호이 랑>, 4월작 <안나 카레니나>를 차례로 취소했고 6월 예정작이었던 대한민국발레축제 참가작 <해적>은 <지젤>로 변경해 티켓 판매를 시작했으나 이마저도 방역 강화로 취소해야 했다. 

 

단원 안무작들 가운데 선별한 〈History of KNB Movement Series〉로 8월 들어서야 뒤늦은 시즌 개막을 했지만 공연이 끝나자마자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시작되어 <허난설헌-수월경화>는 다시 취소되었다. 국립극장 창설 70주년 기념공연 <베스트 컬렉션> 역시 4월 공연을 9월로 연기해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다시 취소했다.

 

하반기에는 11월 정기공연 예정작이었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송정빈 재안무의 <해적>으로 변경했는데, 이는 코로나 확산으로 예정된 해외 단체의 내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며 국제교류가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현 상황에서 현지 제작진의 입국이 어려워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역시 2월의 <스페셜 갈라> 이후 4월 예정작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공연을 취소했고, 6월의 대한민국발레축제 참가작 <돈키호테>는 객석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한 제작비 부담으로 전막 발레가 아닌 갈라 모음인 〈Ballet Gala & Aurora’s Wedding〉으로 변경해 공연했다. 7월의 <오네긴>은 주역 경험이 있는 무용수들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캐스팅과 동영상을 주고받는 비대면 코칭을 통해 가까스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지만 이후 예정되었던 고양아람누리에서의 갈라 공연과 대전예술의전당에서의 <돈키호테> 등은 줄줄이 취소된 채 하반기를 맞이하고 있다.

 

 

감염병 시대의 공연이 다시 일상이 되려면


이 같은 혼란이 빚어진 까닭을 유례 없는 대감염병 위기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게으른 진단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세로 돌아설 때 가장 먼저 문이 닫히는 곳은 공공 도서관이나 박물관, 공연장 등이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집단감염이 발생한 곳은 종교시설, 방문판매업체, 요양원이나 어린이집 등과 같은 사회복지시설, 커피숍이나 실내체육관 등 다중이용시설, 클럽 등 유흥업소 들이었다. 심지어 슈퍼전파자가 나왔던 클럽에서는 다수의 방문자들이 문진표 작성을 허위로 해 감염 경로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방역 위반 사례들이 나오기도 했다.

공연장은 대형 공연의 경우 많게는 천 명 이상의 관객들이 동시에 입장하는 밀집 이용시설이면서도 아직까지 집단감염 사례가 보고된 적 없는 장소다. 한국은 국경이 막힌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에서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서울과 대구에서, <캣츠>가 서울에서 오리지널팀의 장기 내한 공연을 이어가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해외 투어 공연이 가능한 나라로 K방역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지난 6월 <오페라의 유령> 공연 당시 공연장 운영이 가능한 한국의 방역 상황에 주목했고, 올리버 다우든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화상회의를 통해 코로나 시국에서의 공연장 방역과 운영에 대한 논의를 나누기도 했다.

사람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 관객들과 대면하는 특성을 갖는 공연 콘텐츠는 도서관이나 전시관, 영화관 등에서 접하는 콘텐츠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 장소들은 방역 강화로 문을 닫았다 다시 열더라도 콘텐츠를 다시 이용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는 곳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몸으로 전달하는 무용이라는 콘텐츠는 ‘하루를 쉬면 본인이 알고 이틀을 쉬면 동료가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들이 안다’라는 격언 아닌 격언이 있을 정도로 무대에 올라가기 위한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하며 당연하게도 이 훈련은 하루 이틀 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공연은 한두 달, 길게는 몇 달 전부터 티켓 예매가 행해지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연이 취소될 경우 제작진과 출연진은 물론 관객들까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공연장 문을 닫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환불 등 추가 업무도 발생한다. 공연계가 코로나에 대한 대응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이후의 정상화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많은 공연예술 콘텐츠들이 유튜브 등을 통한 온라인 상영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는 현장 공연에 대한 보조재 성격은 될 수 있어도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공연계 중론이며 그나마도 공공극장이나 국공립단체 등 일부 여력이 되는 기관·단체에 한할 뿐 소위 뉴 노멀 시대의 새로운 스탠더드가 될 수는 없다. 현행 ‘객석 띄어 앉기’ 정책 역시 제작비 부담을 가중시켜 장기적인 대안으로 삼기에는 적절치 않다.

공연 관람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일방향으로 앉아 행해지기 때문에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감염 위험성이 낮다. 그동안 공연계는 연극과 뮤지컬을 중심으로 ‘시체 관극’이라는 조어가 생길 정도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객석 의자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타인의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관극 방식이 문화로 자리잡아 왔다. 감염병과 무관하게 지켜져 온 이러한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존중이 다수가 한 장소에 밀집해 있음에도 집단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외에도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출연자들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는 ‘퇴근길 문화’도 코로나 시국에는 위험할 수 있다는 자체 판단으로 동선 분리가 행해지고 있다. 공연장 문을 닫고 공연을 중단하는 정책만이 공연계를 코로나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방역 정책은 실내 50인, 실외 100인을 기준으로 집합 금지 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공연계에서는 이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장소에서 최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공연장들은 그에 맞춰 입장 관객의 총인원 수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객석 띄어 앉기’ 방식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감염병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시대, 일상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대해서도 좀 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글_ 윤단우(댄스포스트코리아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