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이다. 2020년 초부터 시작했던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1년을 넘어가면서 전 세계는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졌다. 각자 사정은 다르겠지만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힘든 한 해를 보냈을 터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힘든 시기를 위로하며 버티고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힘든 시기는 끝을 모른 채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 위로의 일환으로, 지난 2020년 12월 24일 국립발레단과 KBS가 공동 기획한 언택트 발레 공연 ‘우리, 다시: 더 발레’가 지상파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다. 프로그램의 취지를 옮겨보자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세상 밖으로 나온 국립발레단의 아름다운 도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발레단원들은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전남 신안 태평염전, 경주 불국사, 서울함 공원, 홍천 은행나무숲, 문화역서울284, 수원 화성 에서 <백조의 호수>, <빈사의 백조>, <해적>, <잠자는 숲속의 미녀>, <허난설헌>, <요동치다>, <호두까기 인형> 등을 공연했다.
발레를 공중파 TV에서 방영한다는 소식에 반갑게 채널을 돌렸으나 나는 공연을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얼핏 해외의 유명무용단의 춤 영상의 구도와 영상미를 흉내 낸 듯한 촬영은 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도한 편집으로 기교를 부렸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슬로우 모션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였으며, “발레는 이렇게 신기한 동작도 한다”라는 눈요기 정도로 발레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1세기도 1/5이나 지나간 시점에도 여전히 발레는 발끝으로 서서 기교를 부리는 묘기대행진 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작품인 <호두까기 인형>에서 턴을 하는 발레리나의 토슈즈가 수원 화성 앞마당의 흙바닥을 파고 들어갈 때는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길이 없었다. 이 모든 장면에서 제작진의 춤에 대한 무지와 애정 없음이 묻어 나왔다.
공연 장면도 이 정도일진대, 말미에 이어진 비하인드 영상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부르기에 충분했다. 임시 고무 플로어 하나 없는 흙바닥과 아스팔트에서 토슈즈를 신고 춤추는 무용수들을 보며 공연 내내 불편했는데, 심지어 이들이 쌀쌀한 겨울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촬영한 사실을 보고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추운 계절에 오로지 백조 의상만 입고 차가운 염전에 들어가 미끄러질 뻔한 발레리나가 차가운 물에 젖은 토슈즈를 신고 잘 움직여지지도 않았을 것이 뻔한 발을 녹이면서 촬영을 하다니 이것이 혹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극장에서도 한 작품 공연하면 헤져버리는 토슈즈를 신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춤을 추고 너덜너덜해진 슈즈를 보여주는 장면이 이어졌다.
제작진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춤을 추고 촬영했어요”라는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어리광을 부리면 시청자들이 찬사를 보낼 것이라 생각한 걸까. 무용수들이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으니 감동을 받으라는 걸까. ‘발톱이 빠지고 굳은살이 박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과 같은 감동 서사를 만들고자 한 것일까.
방송과 동시에 이 공연은 무용수들을 혹사시킨 것이라는 댓글들과 함께 논란에 휩싸였다. 시청자들은 “고통을 주는 연출을 희망으로, 아름답다고 포장하지 마세요. 시국이 힘들다고 해도 열악한 환경에 사람을 던져놓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저는 무용수분들이 안전한 무대 위에서 춤추길 바랍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고 해도 이런 장면을 보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아스팔트나 추운 곳에서 저런 옷 입고 추면 애초에 관절염에 온갖 근골격계 질환 가지고 있는 무용수들 몸 안 망가져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지난 1월 20일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보낸 자료에서 “염전에서는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돌과 낙엽, 흙이 있는 숲 속에서는 발목이 돌아갈까 봐 불안해하며 촬영을 마쳤다”고 실토했다. 한 단원은 비행장 아스팔트에서 춤을 추다 정강이 통증이 악화됐고 다른 단원은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무릎을 다쳤다고 하니 무용수 혹사 논란이 우려가 아닌 현실임이 밝혀졌다.
제작진은 아마도 온 국민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생활 터전으로 나와 힘든 환경에서 춤을 추고 이를 극복하는 무용수들의 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굳이 무용수들을 부상의 위험으로 몰아가며 촬영한 극기훈련, 고난극복 프로젝트는 억지로 감동을 짜내려는 시도였을 뿐,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하면서 정작 발레단원 수십 명을 좁은 공간에 대기시키며 방역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방송국 제작진들이 춤에 무지하여 무리한 요구를 했더라도 수십 평생을 발레리나로 살아온 강수진 단장은 누구보다도 위험을 알고 단원들 편에 섰어야 했다. 발레단의 명성보다도 무용수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며 단원들을 보호하는 프로페셔널하고 리더십 있는 단장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공감이란 진정성이 동반되어야 우러나오는 감정이다. 우울과 절망이 가득한 국민들 앞에서 “자, 내가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춤을 추고 있어. 나도 힘들지만 극복하는 거야. 아름답지?”라고 보여준다고 한들 이에 공감할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그 힘든 환경조차 가식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보다 불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삶의 터전을 위협받은 국민 중에는 예술가들도 상당하다. 특히 몸을 써야 하고 레슨이든 공연이든 대면을 해야 하는 무용계의 경우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고 학원 레슨도 금지되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겨울 다시 확진자 수가 증가하면서 국립발레단 역시 <호두까기인형> 공연이 취소되었다. 부상의 위기를 감수하면서 춤을 추고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발레단원들 자신이 위로 받아야 하는 당사자이기도 했다. 예술가가 국가적 이념과 메시지를 위해 선전 도구처럼 사용되던 시대는 이미 폐기처분 된 시절 아니던가. 무용예술이 코로나 시기에 얼마나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지, 예술에 대해 조금의 공감과 이해가 있었더라면 이번과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다시: 더 발레’를 보면서 2020년 4월 러시아에서 기획했던 한 TV 방송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코로나의 폭풍에 고통 받는 의료진과 전 국민을 위하여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기약 없이 문을 닫은 볼쇼이극장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공연을 하고 이를 생방송으로 방영하였다. 온라인 언택트 공연의 가능성을 여는 기회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지만, 한편으론 당연히 가득 차 있어야 할 객석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이 비쳐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처절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춤을 추며 감동을 전해주는 무용수의 공연을 보면서 러시아 국민들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또 자신의 아픔을 치유 받았을 것이다. ‘우리, 다시: 더 발레’가 인위적인 방식으로 호소하는 대신 국립발레단을 통해 무용계와 공연예술계의 마음을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었다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그 진심이 통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직접 마주하지 못할수록 진정성이 소통에서 핵심 키워드가 된다. 가식으로 포장된 메시지는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고 숭고한 것일지라도 공허한 프레이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첨단 촬영 장비와 멋진 영상미보다 중요한 것은 소재와 전달 매체를 대하는 기본적 태도와 진정성이며, 그것이 ‘우리, 다시: 더 발레’가 간과한 지점이다. 이제는 불가피해진 언택트 춤 소통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자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20년 12월 29일 ‘KBS x 국립발레단 '우리, 다시 : 더 발레' 공연을 두고 혹사 논란이 벌어졌다’
경향신문 2021년 1월 21일 ‘'돌밭에서 춤추라고?'...‘KBS 더 발레’ 혹사 촬영 논란’
글_ 이희나(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