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는 4년 아래 후배이지만 '존경'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무용학자입니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시절부터 출중한 실기로 무용계 어른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무용기록법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을 공부해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녀의 박사논문은 라바노테이션의 쟁점을 다룬 것으로, 라바노테이션 전문가들이 칭송해마지 않았습니다. 섭식 장애가 생길 정도로 공부에만 매달렸던 그녀는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고, 외국 유학생으로서는 드물게 대학원장상을 받고 졸업했습니다.
이런 인재가 귀국했건만 당시 그녀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민 곳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작 강의 하나를 제공하면서 그녀의 재능만 탐하는 음험한 손길이 가는 것 같아 유학생 출신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무용계의 현실은 그녀가 유학을 가기 전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 그래서 줄을 '제대로' 서지 않으면 고단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계가 달라지기를 원하는 '우리'는 줄을 서지 말아야 하고, 바른 학문을 펼쳐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어줍잖은 선배의 말을 경청하고서 그녀는 대략 이렇게 답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배려해준 고마운 말이지만 사람이든 상황이든 본인이 경험하고 판단하겠으며, 다만 소신을 갖고 행동할 터이니 자신을 지켜보고 믿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그녀가 매우 믿음직스러웠고, 그때부터 그녀에 대한 존경의 싹이 튼 것 같습니다. 그 후로 10여 년간 SH와 학문적 동지로 지내며 한국춤문화자료원을 설립하는 등 많은 일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 무용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가장 많은 대학 무용과의 수와 한해에 수십 명씩 배출되는 박사입니다. 그런데도 지성과 윤리성을 갖춘 멘토를 구하는 것도, 지혜와 덕(德)을 갖춘 어른을 찾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무용계는 관행과 조직이 상식과 사회적 통념보다 앞서는 곳입니다.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온 유학의 여파인지 무용계의 쟁점과 맹점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때마다 겁도 없이 쟁점에 부딪히고, 가차 없이 맹점을 지적했습니다. 학문적으로 옳고 그름은 구별하고, 부당함에는 맞서고, 문제의 근원은 분석하고, 역사를 위해 기록하는 것이 학자의 본령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교수들의 적'이나 '기피 인물'로 찍혀서 산다는 것이 무용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무지했던 탓입니다. 그보다는 든든한 후배 SH가 늘 곁에서 지혜와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SH는 나에게 멘토였고, 어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또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지 3년이 되었습니다.
SH는 딸의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미국 체류 1년 차에 SH는 라반움직임 분석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고, 강좌도 맡았다고 알려왔습니다. 체류 2년 차에 SH는 TESOL이라는 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얼마 전에 SH는 영주권을 취득할 절차를 밟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중학생이 된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그리고 정규직을 가질 희망이 없는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답니다. 아직 그녀의 이메일에 답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40대 중반인 SH에게 우리 무용계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으니 희망을 품고 귀국하라고 설득할 수도 없고, 잘 생각한 일이라고 격려할 마음도 일지 않습니다. 적재적소(適材適所)를 모르는 무용계의 구조가 하도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우수한 무용학자를 잃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그것보다는 노상 도움만 받고 해준 것이 없어서,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선배라서 부끄러워서 답을 못 쓰고 있습니다.
SH, 그저 미안한 마음만 그득하네. 아버님께서 불교에 관심을 두셨으니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겠지. SH가 어디에 있든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그 곳을 빛나게 할 것"이라고 믿네. 부디 건강하시게나.
글_ 편집주간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