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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보다 위대한 예술가는 없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는 현대차 정몽구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201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문화예술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중 ‘명인 시리즈’는 일생을 한국 예술에 헌신한 명인들을 재조명해 그들의 삶에 투영된 예술의 가치를 사회로 확산하고 그 의미를 대중 개인의 삶에서 다시 발견하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로, 2019년 안숙선, 2020년 김덕수에 이어 올해는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이 세 번째 명인으로 선정되었다.

 

김매자 이사장의 춤인생을 설명할 때 항상 따라붙는 것은 ‘한국 창작춤의 대모’라는 수식어다. 그는 1971년 이화여대 무용학과 교수로 부임해 20여 년간 재직하며 후학들을 양성했는데, 제자 5명을 단원으로 해 1976년 창단한 창무회는 1970년대 초반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신무용에서 벗어나 한국의 전통춤과 민속춤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예술춤을 통해 한국춤을 현대화하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작무용’의 줄임말인 ‘창무’가 그의 춤인생을 요약하는 데에서 나아가 한국 창작춤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된 것은 그가 무용계에 미친 영향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단면이다. 그가 1980년대에 만든 <춤본> 시리즈는 한국 창작춤의 형식적 구조와 체계적 어법에 대한 요구를 실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에서 실시한 20세기 한국예술의 고전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무용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국내 최초의 무용 전용극장인 창무춤터를 개관했고, 92년에는 창무예술원을 설립해 극장과 무용단, 교육기관이 유기적으로 운영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이듬해인 1993년에는 무용전문지 <몸>(창간 당시 <무용예술>)을 창간해 비평가가 중심이었던 무용담론 생산을 무용가 중심으로 돌리고자 했고, 무용가들의 창작활동을 독려하고 춤의 문화적 증진을 위해 무용예술상을 제정했으며, 국제교류의 플랫폼으로 창무국제공연예술제를 열어 세계 무용계의 조류를 국내에 소개하고 한국 창작춤을 세계무대에 알리고자 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이렇듯 그가 한국무용계에 남긴 뚜렷한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창작춤의 역사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명인’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손색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김매자 이사장의 춤인생이 빛나는 업적으로만 수놓아진 영광의 길인 것은 아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는 말처럼, 그의 영광이 높고 찬연할수록 영광 뒤에 따라붙는 오욕 역시 어둡고 진하다. 그의 20년 교수생활의 막을 내리게 한 것은 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화여대 무용학과 입시부정 사건이다. 입시생 학부모 2명으로부터 2천5백만 원을 수수하고 부정 입학에 가담해 교수직을 잃고 수인(囚人)의 몸이 되는, 불명예스러운 퇴장이었다. 그가 수뢰한 돈은 수사를 통해 당시 시공 중이던 창무예술원 건물의 공사대금으로 사용했음이 밝혀졌고,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그는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받고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이화여대 무용학과에 재직 중이던 4명의 교수 중 실기를 가르치던 3명이 모두 연루되어 재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이 내려지는 결말을 맞았고 이로 인해 무용사회는 커다란 혼란을 겪어야 했다.

 

입시부정으로 교육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뒤에도 무용 현장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쇠하지 않았는데, 창무예술원을 중심으로 창무국제공연예술제, 무용전문지 <몸>, 포스트극장 기획공연 등의 여러 사업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공 지원금 횡령, 노동력 착취, 거래대금 미지급, 탈세 등의 전횡이 존재했다. 자생력 없이 지원금에 의존해야 하는 운영난은 ‘페이백’이라 불리는 예술계 만연한 횡령을 가능케 하는 명분이 되었고, 만성적인 임금체불은 노동인력을 횡령의 공범으로 만드는 동기로 작용했다. 

 

잡지나 공연 홍보물 제작을 위해 거래하는 디자이너나 인쇄소 등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거래처를 바꾸는 방식으로 거래처에 금전적 타격을 입히는 것 역시 매우 고질적인 수법으로, 소송을 당하고서야 해결에 나서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포스트극장 기획공연인 ‘내일을 여는 춤’, ‘드림앤비전 댄스페스티벌’, ‘유댄스페스티벌’ 등에서 참가비로 거둬들이는 현금 수입은 국세청에 수입 보고를 한 바 없으며, 이 반복되는 탈세에 대해서 아직까지 조사가 이루어지거나 처벌을 받은 사실 또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꾼 김매자는 우리 사회에 헌신한 예술가로서 ‘명인’의 이름을 달고 떳떳이 무대에 설 수 있는가. 공적을 쌓는 과정이 이러한 부정으로 점철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피해와 희생을 감수해야 했음에도 이 공적이 공적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인지, 과를 제대로 평가한 뒤에도 공을 과로부터 분리해 공으로만 기릴 수 있는지, 무용사회는 아직까지 이 질문들을 던져본 적도, 대답한 적도 없다. 예술가의 업적을 높이 기리기 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술은 예술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예술보다 위대한 예술가는 없기 때문이다.

 

글_ 윤단우(댄스포스트코리아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