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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문화현상과 신전통춤의 유행, 그리고 전통춤의 종말

최근 들어 한국무용가들 사이에는 우리 시대의 전통춤을 표방하며 의상, 몸짓, 음악까지 전통춤과 흡사하게 추는 신전통춤이라는 양식이 유행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패션과 대중음악을 시작으로 상업광고, TV 프로그램, 국악공연 등 문화계 전반으로 확장된 복고주의 또는 복고풍의 영향으로 보인다. 복고주의는 과거의 기억, 추억, 전통 등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본뜨려고 하거나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을 말한다. 한편에서는 이를 영어 Retrospect(추억)에서 앞만 줄여 레트로라고 부르는데,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거나 과거에 유행했던 것을 현재 대중들의 기호에 맞춰 재해석하는 경향이다. 레트로의 개념은 확장을 거듭하여 현재는 뉴트로, 힙트로, 빈트로라는 신조어까지도 출현하였다. 이중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뉴트로라는 개념에 주목이 간다. 레트로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과거에 유행했던 것을 다시 꺼내 들어 향수를 자극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뉴트로는 과거의 것에 새로운 의미를 입혀 향수 계층이 새롭게 즐기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전통춤은 뉴트로 전통춤이라고 할 수 있다.

  

뉴트로 전통춤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전통춤이 아니며 창작춤이다. 신전통춤의 창작자들 역시 자신의 춤을 정통 전통춤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경술국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서구화, 현대화, 산업화 등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굴곡을 지나온 오늘날의 전통춤이 사전적 의미 그대로 “역사적으로 오래된 과거의 문화유산” 또는 “여러 세대 간에 전승되어온 춤”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선진국 대열로 향해가며 전통문화의 중요성이 주목받고서야 절멸의 위기에 놓였던 전통춤이 보전될 수 있었고, 역사 속의 춤에 대한 복원 및 재현 작업이 성행하였다. 문제는 후자인 전통춤의 복원과 재현에 있다. 악학궤범, 궁중무도홀기, 시용무보, 의궤, 도병, 이왕직아악부 아악생양성소, 국립국악원 등 풍부한 기록물과 의인 승계가 뒷받침되는 궁중무용조차도 누군가에 의한 ‘상상의 산물’이라는 의구심을 받는다. 몸의 예술, 순간의 예술이라는 춤의 속성상 어떠한 기록물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웃 나라의 고전 무보, 고문서의 춤명칭 하나, 누군가의 구술 한 단락으로 복원 또는 재현된 춤을 전통춤이라고 호명할 수 있을까? 여러 스승의 문하에서 다양한 몸짓으로 학습한 재현자의 몸이 만든 춤을 정통 전통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무용계의 전통춤에 대한 인식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전통춤은 창작이 개입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근래에 읽은 파스칼 키냐르의 <부테스>(송의경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7)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인용해 보겠다. “statu quo ante(예전 상태)는 사회적 시간에 자주 출몰한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는 시선은 이전의 삶에 대한 욕망의 시선이다. 나른하고 우수에 젖은, 말하자면 ‘박물관적’ 취향을 지닌 살아 있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보다 더 준엄한 계율이 강조된 적은 없었다.” 이 구절은 준엄한 틀에서 전통을 바라보는 시선 뒤에는 박물관적 취향과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고정불변한 전통춤이라는 주장 뒤에는 박물관의 전시품과 다름없는 유형적 자산이라는 욕망을 감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춤을 전통춤이라고 하는가?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이라는 논쟁적인 선언을 발표하여 새로운 현대예술을 옹호했던 예술철학자이다. 그의 선언은 새로운 현대예술은 더 이상 전통적 미학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모방이론으로 대표되는 서양예술의 한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예술은 역사이후를 맞이했다는 것이 요체이다. 단토는 예술을 정의하려던 수많은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본질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잘못된 곳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두 대상이 표면적으로는 같아 보이나 하나는 예술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구분지점은 지각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 너머에 있는 그 어떤 것에 있다고 하며, “어떤 대상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볼 수 없는 무엇(예술이론의 분위기, 예술사에 대한 지식), 즉 예술계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하였다. 근대(신)무용의 전통춤화에 대한 논란을 점화하기도 전에 신전통춤이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등장하여 전통춤의 개념과 범주에 대해 이견이 치닫고 있는 무용계에 ‘전통춤의 종말’이라는 선언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30년만에 국가무형문화재 춤종목이 신규로 지정된다고 한다. 더 많은 춤종목이 선정될 수 있도록, 그래서 보다 많은 무용가들이 전승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무용계의 의기투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금까지 전통춤에 대해 본질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것을 재숙고하며, 전통춤에 대해 성숙한 토론문화를 일구어 가기를 희망한다. 

 

글_최해리(발행인, 무용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