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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예술계의 반전(anti-war) 움직임과 서방의 대러 제재: 용기와 생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며칠 안에 끝이 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고 있는 조짐이다. 역사적으로 한 나라 한 민족이었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기에 러시아인들도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볼쇼이발레단의 프린시펄인 올가 스미르노바가 네덜란드국립발레단으로 이적했다는 보도가 있다. 그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온 마음을 다해 전쟁에 반대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피력했다. “지금은 21세기이고 현대 시민사회에서 정치 쟁점들은 평화적 협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력으로 국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러시아에 수치심을 느낀다.” 세계 일류의 발레단에서, 게다가 러시아인이 모국을 비판하며 이적한 사실은 그 자체로 비통하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더 큰 울림을 준다.

 

  

  [사진1] 올가 스미르노바의 텔레그램 메시지

 

춤계에서 선두적으로 반전 메시지를 냈던 예술가는 러시아 출신 발레안무가이자 ABT 상주안무가인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이다. 4월 초 볼쇼이발레단에서 초연 예정이었던 그의 신작 <푸가의 예술>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발레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전 세계 예술가들로부터 반전 메시지를 받아 SNS에 공유하며 연대를 넓혀나가고 있다. 내로라하는 수많은 무용가, 안무가,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마린스키의 대표적 발레리나 디아나 비쉬네바, 러시아 출신 연주자인 막심 벤게로프와 예프게니 키신 등도 일찌감치 함께했다. 라트만스키는 3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합병에 지지를 보내고 ‘푸틴의 친구들’로 불려온 예술계 인사들(그중에는 니콜라이 치스카리제,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이반 바실리예프, 보리스 에이프만 등이 있다)을 거론하며 이번 침공 이후에도 여전히 푸틴을 지지하는지 공개 질문을 던졌다.

 

올 4월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 예정이던 키릴 사브첸코프와 알렉산드라 수카레바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호소하며 참가를 포기했다. “많은 시민들이 폭격에 죽어가고 러시아 시위대가 침묵을 강요받는 속에서 예술의 자리는 없다.” 메이어홀드 극장의 예술감독 엘레나 코발스카야는 “살인자에게서 돈을 받으며 그를 위해 일 할 수 없다”며 사임을 표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6개 지역에서 매진 콘서트를 계획했던 유명 래퍼 옥시미론(Oxxxymiron) 역시 동료 래퍼들과 함께 전쟁 반대를 표하며 모든 콘서트를 취소했다. 지금 그의 홈페이지는 “No to War”라는 문구만이 떠있을 뿐이다.

 

 

[사진2] 옥시미론의 홈페이지 화면

 

한편 미국과 서유럽 및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수많은 나라들은 전방위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인 바, 대표적으로 친 푸틴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에 대한 비토가 시작점이었다. 이번 사태 후 유럽 예술계에서는 게르기예프에게 침공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낼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침묵하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2월 25일 빈 필의 뉴욕 카네기홀 공연 지휘자는 야닉 네제 세갱으로 교체됐고 이후 밀라노, 뮌헨, 로테르담 등에서 게르기예프의 예술감독, 명예지휘자 등의 자격을 박탈했으며 그 외 서방세계의 모든 에이전시가 그와 절연을 선언했다.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의 카네기홀 공연은 급히 조성진으로 대체되었고,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는 “나는 전쟁을 반대하지만 입장을 밝히지 않는 예술가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비판을 받으며 보이콧 대상이 되었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독일의 피아니스트 라르스 보그트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 해외 예술가들의 방러 공연이 취소되었다. 항공편도 운행하지 않기에 이 냉랭한 분위기는 오래갈 것 같다. 2014년부터 볼쇼이발레단과 작업하며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레퍼토리화 했던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역시 5월에 예정된 공연을 취소할 것으로 보인다.

 

친 푸틴 예술가 보이콧은 점점 러시아 예술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칸 영화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예술가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과 별개로 러시아 영화의 출품을 막았다. 소치에서 개최 예정이던 F1 경주 및 스포츠와 예술 관련 국제 대회들도 일제히 러시아의 참가를 거부하였다. 올 여름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에 초청된 볼쇼이발레단 공연 역시 취소됐고, 워너브라더스, 디즈니, 소니 등 채널에서 러시아 영화 및 프로그램은 금지되었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푸틴 정부에 제재를 가하고 전쟁을 찬성하는 예술가를 보이콧 하는 부분은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서방의 대러 제재가 자칫 러시아 전체를 악마화 하는 혐오 프레임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프로파간다로 변질될 수 있음은 우려스럽다. 이탈리아의 한 대학교에서는 도스토옙스키 수업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쟁이 벌어졌다. 차이콥스키의 <1812> 연주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으며, <안나 카레니나>를 방영했다는 이유로 넷플릭스는 비판을 받았다. ‘전범국가 러시아의 예술’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이다. 

 

이러한 금지는 과연 온당한가? 독재자의 폭주와 무차별적 폭력에 대한 규탄과 무조건적인 러시아 예술 금지는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하여 첼리스트 줄리안 로이드 웨버는 1968년 소련군 탱크가 프라하로 진격했던 해 BBC 프롬스에서 열렸던 8월의 연주회를 떠올렸다. 당시 러시아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소련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연주곡이 체코 작곡가 드보르작의 작품이었고, 연주를 마친 로스트로포비치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관객들에게 이 눈물은 무자비한 탱크의 쇳덩어리보다 더 깊이 있는 무게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아테네시립오케스트라의 노조위원장 디오니시스 크리스토풀로스는 그리스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러시아 예술 제재를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술은 사람들을 통합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지지하며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연대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프로파간다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는 반대하며, 푸틴 체제와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예술가들과 함께하겠다.”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예술가들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러시아의 예술가, 큐레이터, 건축가, 예술비평가, 예술경영자 등 18,000 명의 예술종사자들이 ‘전쟁 반대’ 서명을 한 온라인 청원을 올렸다. 이들 중에는 블라디미르 유린 볼쇼이극장 총감독도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지난 3월 4일 ‘가짜 뉴스법’이 통과된 후 이들의 안전을 위해 서명은 비공개처리 되어야 했다. 

 

 

[사진3] 비공개 처리된 18,000명 러시아 예술가들의 반전 서명

 

 

러시아 정부는 전쟁을 시작한 쪽이 러시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가짜 뉴스법’에 의하면 지금 이 사태는 ‘전쟁’이 아닌 ‘특별 군사 작전’이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언론사는 폐쇄를 강요당한다. 마찬가지로 소위 ‘가짜 뉴스’를 말하는 사람은 최장 15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가짜 뉴스’의 확산과 ‘푸틴 체제’ 비판이 두려운 때문인지 정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공식적으로 막아버렸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은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될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지금도 수천 명의 러시아인들은 끊임없이 반전 시위를 하고 끌려간다.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이 곳 러시아에서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인지,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서 깨닫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생존 위협의 두려움을 뚫고 정부와 전쟁을 규탄하는 러시아 국민과 예술가들에게 큰 존경을 표한다.

  

 

글_ 이희나(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