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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미디어 속의 한국무용(1) 서설(序說)


 

개항 이래 크고 작은 격변 속에서 근현대 한국 사회에는 실로 많은 박래품(舶來品)들이 소개되었다. 그런 박래품들 가운데 가장 혁신적으로 한국인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은 어떤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감히 비문자 대중매체 (非文字 大衆媒體, non-textual mass media)를 꼽고자 한다. 비문자 대중매체, 즉 사진과 영상과 음향 등의 근현대 미디어는 사물을 문자 기록이나 사생(寫生)이라는 추상화와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 있는 그대로를 복제, 시각과 청각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을 통해 직접 전달하고 기록하였다. 이는 기존에 공간성과 시간성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던 공연 예술(performing arts), 특히 음악과 무용의 대중적 수용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공교롭게도 이들 매체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수용되던 시기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한국 무용(Korean Dance)’ 1) 역시 기틀을 잡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한국인 근현대 무용가들이 처음으로 주체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전근대 재래무용과 서구 및 일본을 통해 전래된 신무용(新舞踊)을 습합(習合)하여 ‘한국적’인 새로운 공연예술로 발전시켰던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한국인 문화생산자(cultural producers) 2) 혹은 흥행사(impresario)들이 등장하여 미디어와 공연예술 양쪽 모두의 기획과 생산, 보급을 주도하기도 했던 시기였다. 

 

그간 무용계는 물론이고 한국의 공연예술사 전반에 걸쳐 근현대에 제작된 미디어 매체에 담긴 한국 공연예술의 실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는 분단과 전쟁 등 근·현대 한국 사회의 격변 속에서 한국에서 제작된 다수의 미디어 자료들이 소실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들의 자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나머지 많은 자료가 산일되고 멸실되었던 탓이 적지 않다. 하지만 현존하는 자료들과 당대에 발행된 신문, 잡지 기사 등 문헌 자료의 검토와 분석만으로도 당대 한국 무용의 역사적 실체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연재될 글에서는 19세기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제작되었던 다양한 한국 근현대 무용관련 미디어 자료, 그 중에서도 특히 영상자료와 유성기음반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20세기 이후 정립된 한국무용의 변천상을 돌아보는 한편, 자칫 소모적일 수 있는 ‘원형’ 혹은 ‘전통’의 논쟁에서 벗어나 근·현대 무대예술로서 정립되어온 한국 신무용 또는 한국 무용의 역사적 실체를 기록 매체를 통해 검토하는 작업에 대한 시론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멀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사진과 영상에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시선으로 기록된 한국의 재래무용부터, 가깝게는 1960-80년대의 냉전체제 하에서 '자유 대한민국'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해외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수행한 한국 현대무용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 무용이 걸어온 실로 다변적이고 복합적인 면모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이 글에서 사용하는 ‘한국무용’이라는 개념어는 서구와 일본에서 신무용을 배워 이를 도입한 20세기 전반의 한국 무용가들에 의해 창안된 뒤 해방 이후로 한국(남한)의 국민국가 문화로 정립된 무용을 가리키는 단어로 한정하기로 한다. 한편 이 용어의 특수성을 고려해 본고에서는 식민지 시대 한국(조선)과 해방 후의 국민국가 한국을 가급적 ‘한국’이라는 단어로 통일하여 서술한다.

 

2) 이 글에서 사용하는 ‘문화생산자’라는 개념은 근현대 사회에서 국가적 혹은 상업적 이익을 위해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기획, 생산, 흥행, 보급, 판매 등에 종사하며, 예술가 및 창작자들과 대중 사이에서 중개자(mediator)의 역할을 하는 인물로 한정한다.

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정의에 대한 논의로는, Abu-Lughod, Lila.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after Television", The Fate of "Culture": Geertz and Beyond, ed. Sherry B. Ortner,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9); pp.113-135. 참조.

 

 

글, 사진제공_ 석지훈(한국음반아카이브, 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