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칼럼

리콜렉션

근현대 미디어 속의 한국무용(12) 조택원, 그가 남긴 영상과 음향의 세계(2)

지난번 글에서 살펴보았듯, 일제강점기에 조택원의 무용을 기록한 영상자료로는 두 편의 극영화 <미몽>(1936)과 <병정님>(1944)이 남아있다. 이 두 편의 영화에 수록된 조택원의 영상들은 비록 허구의 이야기를 담은 극영화의 내러티브 속에서 일종의 눈요기 장면으로 기획되어 남은 것이지만, 이 시기의 무용을 기록한 영상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이 두 영상에는 제한된 형태로나마 배경음악을 포함한 음향이 입혀져 있는데, 한국과 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1950년대 이전 무용 영상들이 소리가 없는 무성(無聲) 필름에 그 몸짓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더욱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이들 영상들은 이들 필름이 발견되었던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분석되고 또 논의되었던 바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처럼 기존에 알려져 있던 자료들 이외에도 해방 전후 시기, 즉 1945년에서 195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조택원 관련 영상들을 최근 3건 추가로 확인하였다. 이들 영상들은 2021년 필자가 한국영상자료원의 연구 용역을 통해 정리한 <1950년 이전 조선・한국 관련 기록영상 컬렉션> 해제 과정에서 확인한 것과, 그 이후 필자가 추가로 진행한 한국영상자료원 해외자료 수집조사 용역을 통해 확인한 자료들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대 초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까지 한반도를 촬영한 기록영상 113편(1945년 이전 기록영상 53편 및 해방 이후 영상 60편)을 수집, 발굴하였는데, 이들 자료들은 외국인이 개인 소장부터 선전, 홍보까지 다양한 이유로 조선인에 대한 인상, 생활상, 민속문화, 자연 경관, 도시 풍경의 변화 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 가운데 지난 2015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NARA)에서 수집된 필름 중 하나로, 해방기 주한 미국공보원(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in Korea)에서 제작한 영화 <한국 농촌생활(Korean Farm Life)>에 조택원과 관련된 영상이 들어있다. 이 영화는 1947년 9월과 10월에 재미교포 출신의 미국 육군 중위인 이한근(李漢根)의 연출로 제작, 촬영되어 이듬해인 1948년 2월에 공개된 한국에 대한 홍보영화로서, 영어 내레이션이 삽입된 세미다큐멘터리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화의 대부분은 시골소녀 방해(김신재 분)와 그녀의 오빠 학복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에서 사계절마다 어떤 농사일을 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농촌생활> 조택원 출연분 


그런데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가을 추수가 끝난 뒤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그 끝부분에 ‘젊은 남녀의 로맨틱한 감정을 표현한 한국의 전통무용’을 소개하는 장면이 1분 50초가량 수록되어 있다. 영상의 해상도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전반적인 춤사위 내용과 두 무용수들의 얼굴 및 체형을 보아 조택원과 그의 당시 부인이었던 김선영(金鮮英)이 함께 공연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내용은 조택원이 1941년에 처음 선보였던 무용극 <춘향조곡> 중 ‘광한정연(廣寒情緣)’을 담은 것이 거의 확실하며, 촬영 장소는 창덕궁 후원에 있는 반도지(半島池) 연못과 그 옆에 서 있는 정자인 관람정(觀覽亭)으로 추정된다.


이 영상은 칼라로 촬영되어 있어 당시 이 공연에서 입었던 구체적인 의상의 형태와 색깔을 잘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난 2007년에 성기숙 교수가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한 1956년 일본에서의 <춘향조곡> 공연을 담은 영상자료1)보다 거의 8-9년 앞선 자료로 더욱 가치가 있다. 또한 편집되어있기는 하지만 당시 이 공연에 삽입되었던 음악도 일부 수록되어 있다. <춘향조곡>이 한국 근대무용에서 최초의 무용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또 이 작품이 창작된 지 겨우 7년 만인 1948년에 공개된 영상이라는 점에서, 이 무용극의 원형을 상고할 수 있는 귀중한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택원은 이 영상을 촬영한 직후인 1947년 10월 ‘무용을 통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교류’ 및 ‘미국 무용계 시찰’을 명목으로 미국 순회공연 길에 올랐다. 이 미국 순회공연은 미군정 문교부 예술과의 주선으로, 조택원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조선무용예술협회의 주최와 조선은행 등의 재정적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소설 『대지(The Good Earth)』의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펄 벅(Pearl S. Buck)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설립된 이른바 동서협회(東西協會; The East and West Association) 역시 미국 현지에서의 활동을 후원하였다. 이때의 미국 순회공연에는 조택원 이외에도 그의 부인인 김선영을 비롯해 김소영(金先英), 임경희(林景喜),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가야금병창의 달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심상건(沈相健)과 그의 딸 심태진(沈泰珍), 경서도소리 명창 김옥진(金玉眞) 등 총 7명이 이른바 “조택원 한국무용단”의 이름으로 도미하였다.


조택원 일행은 1948년 3월 로스엔젤레스에서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간 뒤, 그해 5월 7일과 8일에 있었던 하와이 호놀룰루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1949년 5월까지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 뉴욕 등지를 오가며 계속해서 한국 무용 공연을 수행함과 동시에 당시 미국의 무용 및 공연예술계 시찰을 수행하였다. 바로 이 과정에서 조택원 일행은 당시 미국 NBC-TV에서 첫 선을 보인 시사교양 프로그램 <메리 마거릿 맥브라이드 타임(Mary Margaret McBride Time)> 쇼의 1948년 11월 16일자 에피소드에 펄 벅과 함께 출연하였다.


메리 마거릿 맥브라이드는 1930년대부터 라디오 교양프로그램 진행자로 미국 중년 여성 청취자들에게 매우 큰 인기를 끌었던 인물로, 1940년대 말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TV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기존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1948년 9월부터 TV 프로그램으로 전환하였다. 바로 이 프로그램에 조택원 일행이 출연하게 된 것이다. 이때 조택원 일행은 소고춤, <만종을 보고>의 두 무용 공연과 심상건, 김옥진 등의 민요 연주 등을 선보였는데, 이는 무용사적, 그리고 예술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공연예술이 미국 프라임타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당시의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조택원 일행의 TV 출연 사실은 이미 확인된 바 있지만, 1940년대에는 아직 TV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기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택원의 당시 TV 출연 자료는 영상기록으로 남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 9월 필자가 한국영상자료원의 미주 지역 영상자료 발굴조사 용역 과정에서 이 TV 출연 자료를 기록한 키네스코프(Kinescope) 16밀리 필름2)을 최초로 발굴하였다. 이 영상자료는 불원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필자가 참여한 같은 조사에서는 1951년 7월 13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베켓(Beckett)에 있는 제이콥스 필로우 무용센터(Jacob's Pillow Dance Center)에서 조택원과 김선영이 공연한 <춘향조곡>의 일부를 담은 흑백 영상의 원본 16밀리 필름 역시 발견되었다. 이 영상은 이미 지난 2011년 뉴욕 한국문화원에서의 행사를 통해 그 일부가 공개되었던 바 있지만3), 그 전량이 정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 조사가 처음으로, 이 역시 조만간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그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조택원 일행이 1948년 미국에 건너간 이후 그의 무용 반주음악이 미국에서 상업 음반의 형태로 발매되었던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 음원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글․자료제공_ 석지훈(한국음반아카이브, 역사학)



 

[사진1] 조택원 - NBC Mary Margaret McBride Time 출연분 (1)

[사진2] 조택원 - NBC Mary Margaret McBride Time 출연분 (2)

[사진3] 조택원 - NBC Mary Margaret McBride Time 출연분 (3)

[사진4] 조택원 - NBC Mary Margaret McBride Time 출연분 (4)


1) https://www.nyj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799


2) 재방송용 혹은 기록용으로 TV 수신기의 브라운관을 16밀리 흑백 필름으로 찍어 보존한 필름. 실제 방송 스튜디오 내부가 아닌 브라운관으로 수신된 영상을 다시 촬영한 것이므로 화질이 일반적인 영상보다 열악하지만, 1940년대와 50년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초기 TV 방송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매체 자료이다.


3) https://bit.ly/3LirLQ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