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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미디어 속의 한국무용(13) 조택원, 그가 남긴 영상과 음향의 세계(3)

앞의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해방 후 조택원은 남한을 대표하는 무용가로서 해외 문화사절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그는 해방 후 무용계에서는 처음으로 1947년 10월 “무용을 통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교류” 및 “미국 무용계 시찰”을 명목으로 하여 미국 순회공연 길에 올랐다. 특히 1937년의 ‘도구여행(渡歐旅行)’때와는 달리 자신 혼자만 간 것이 아니라 이른바 ‘조택원 한국무용단’의 이름으로 그의 부인인 김선영을 비롯해 김소영(金素英), 임경희(林景喜),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가야금병창의 달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심상건(沈相健)과 그의 딸 심태진(沈泰珍), 경서도소리 명창 김옥진(金玉眞) 등을 데려갔다.


조택원 일행은 1948년 3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간 뒤, 그해 5월 7일과 8일에 있었던 하와이 호놀룰루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이듬해 5월까지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 뉴욕 등지를 오가며 계속해서 한국 무용 공연을 수행함과 동시에 당시 미국의 무용 및 공연예술계 시찰을 수행하였다. 특히 조택원이 처음으로 공연을 열었던 하와이는 한말 이래 한인들이 대규모로 이민을 가 정착했던 곳이었던 만큼, 현지의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조택원의 공연에 대한 상당한 호응이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하와이의 교민 신문이었던 <국민보>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1)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긔대하든 무용단이 五월 七일, 八일 전약에 누우아누 청년회관에서 조선 자ᄅᆡ의 예술, 음악, 무도 등 온갖 히극을 연주할 예정이다. 미국 라셩에셔 큰 환영을 밧은 후 하와이를 방문하게 되엇스니 누구히나 이 기회를 놋치지 마시고 한번 구경하시믄 그립고 그립든 죠국의 금슈강산을 면ᄃᆡ하는 감을 가지실 것이며, ᄯᅡ라서 그 심신이 유쾌하야 건강의 유익과 가정의 ᄒᆡᆼ복이 될 거십니다. (후략)

이렇게 조택원 일행이 선보인 한국 무용이 “조국의 금수강산을 면대(面對)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질 만큼 당시 교포 사회에서의 호응이 대단했으며, 나아가 조택원이 추구했던 무용이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추구하려는 시도로서 받아들여졌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택원 한국무용단은 약 한 달 반 동안 하와이에 체류한 뒤 6월 21일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는데, 바로 이 시기, 즉 1948년 6월 말부터 조택원 일행이 시카고로 이동한 1948년 9월 사이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조택원 일행의 무용음악과 기타 한국음악의 취입이 이루어졌다. 이들 음반은 하와이와 로스앤젤레스 일대에 거주하는 재미한인 동포들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역시 <국민보>에 취입자 중 한 사람이었던 김옥진의 명의로 된 광고문 등이 있어 그 자세한 취입 경위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본인이 금년 녀름에 호항에 가셔 단체로 가뎡으로 ᄀᆡ인으로 베풀어 쥬신 후대ᄅᆞᆯ 밧고 돌아와서 주야에 닛지 못하나이다. 나는 지금 무용단 일행과 함ᄭᅴ 뉴육을 향하여 가ᄂᆞᆫ 중노에 「쉬카고」에 들넛습니다. 십여일 여기 유할 듯합니다. 호항 부모형제 쟈매의 건강과 성공을 축원하오며 ᄀᆞᆨ 단쳬샤업이 날로 더옥 발젼하기 바람니다. 여러분에게 말씀 한 마디 드리고자 함은 다름 아니라 나는 동방여행을 마치고ᄂᆞᆫ 귀국하려 합니다. 일ᄒᆡᆼ ᄀᆞᆨ인이 다 무고한 즁 나만은 녀전히 약병을 들고 다님니다. 목하 본국 형편에 잇서셔 그만한 축음기 설비도 아직 미비함으로 내가 돌아가기 전에 소리판을 몇 벌 취입하여 미・포 동포에게 밧치고 가려합니다. 슈일젼 냐성에 체류하ᄂᆞᆫ 동안에 동행하는 심샹건 씨와 그 따님 태진 양으로 더부어 「하리욷-」에 있는 「컨-티넨탈 레코-딩」 회샤를 경유하야 특히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단가 수심가 타령 민요집을 취입하여 벌써 셩판하얏습니다. ᄯᅡᆨ한 것은 영업젹으로 ᄃᆡ량출판을 못하ᄆᆡ 경비가 많이 나서 헐가로나 무ᄃᆡ금으로 증뎡치 못하고 오히려 높흔 가금에 초매게 된 거십니다. 호항에서ᄂᆞᆫ 문응한 씨가 젼임 판매하여쥬기로 자원하엿사오니 포와 동포 여러분은 문씨에게 문의하심이 편이ᄒᆞᆯ가합니다. 만일 이 몸에 행운이 임하면 귀국ᄒᆞ는 도듕에 근처 태평양 낙원에 들너 동포 여러분께 낫츠로 고별하기를 꿈꾸면서 근처 여러분ᄭᅴ 「알로하」를 드림니다. 

一천九백四十八년 九월 三十일 「쉬카고」에서 김옥진 올님2)


젼번에 본항에 도착하여 二삭 동안에 한국 음악을 공헌하든 한국 무용단원 중에 김옥진, 심태진 여사와 심상건 씨의 신식 소리로 유성기판에 너흔것 四, 五가지 판이 하와이 음악회샤로 왔샤오니 누구시든지 이 조흔 소리판을 원하시믄 본회샤 젼화 五五二七六호로 주문하시든지 친히 오셔셔 주문ᄒᆞ시기를 바랍ᄂᆡ다. 정가 一쟝 호항에서는 一元 六十五전이오, 타처에는 우ᄇᆡ가로 二十五전이람니다. 하와이음악회샤 주인 김셰영 백3)

이 광고를 통해 조택원 일행이 대략 1948년 9월 무렵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있던 컨티넨탈 레코드(Continental Record) 사를 통해 음반을 취입했고, 이것이 하와이 현지에서 음악 회사를 경영하던 한인들에 의해 판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컨티넨탈 레코드는 1942년에 헝가리 출신의 레코드 프로듀서인 도널드 가보르(Donald H. Gabor, 1912-1980)가 설립한 군소 음반사로, 주로 미국 서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재즈와 클래식 연주자들의 음반을 주로 발매한 회사4)였다. 컨티넨탈 레코드는 이 밖에도 미국 내의 이민자 그룹, 특히 창립자 가보르가 태어난 헝가리를 비롯한 동구권의 민속음악이나, 중국 등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음악을 담은 음반들도 발매했으며, 당시의 많은 미국 내 군소음반사들이 그랬듯 제 3자의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주문음반 역시 많이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한국 음반의 경우 유나시아(UNASIA) 레이블로 제작되었는데, 당시 제작된 음반의 목록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다음과 같다.


UNASIA S100 하사월 심상건

UNASIA S101 노화월 심상건


UNASIA S500 새타령 심태진

UNASIA S501 풍류가 심태진


UNASIA K1000 민요 1.한양은 2.압강물 3.더덕타령 김옥진

UNASIA K1001 노래가락 이팔가 김옥진


UNASIA K1002 장산곳 김옥진

UNASIA K1003 수심가 김옥진


UNASIA K1005-A(RUA41) 가야금散調(上) 沈相健

UNASIA K1006-B(RUA42) 가야금散調(下) 沈相健


UNASIA K1007-A(RUA43) 愁心歌 金玉眞 鼓 沈相健

UNASIA K1008-B(RUA44) 愁心歌역금 金玉眞 鼓 沈相健


UNASIA K1009-A(RUA45) 성주푸리 金玉眞 沈泰珍

UNASIA K1010-B(RUA45) 봉탈춤 沈相健 金玉眞 沈泰珍


UNASIA K1011-A(RUA47) 南原山城 金玉眞 沈泰珍 鼓 沈相健

UNASIA K1012-B(RUA48) 자진륙이 金玉眞 沈泰珍 鼓 沈相健

현재 이 음반을 발매한 유나시아라는 음반 레이블의 정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모회사로 여겨지는 유나시아 무역회사(UNASIA Trading Company)에 대해서는 약간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가령 이 회사는 미국 상공부(U.S. Department of Commerce)가 발행한 『태평양 연안 운수 편람(Pacific Coast Directory of Transportation)』 1950년 판에는 한국과의 무역을 전담하는 회사로 기재되어 있으며, 당시 그 주소는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산 페드로 스트리트 126번지(126 South San Pedro Street)5)였다. 또 1951년 미국에서 발간된 음악학술지 『노트(Notes)』에 실린 「1950-51년도 미국 내 아시아음악 현황 조사(Survey of Recordings of Asiatic Music in the United States, 1950-51)」에는 유나시아가 한국 음반의 미국 내 전문 판매업체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유나시아는 1954년에 일본 빅터레코드에서 1937년에 녹음되었던 창극 <춘향전>(정정렬, 이화중선, 임방울, 김소희, 박록주 출연)을 복사, 재발매하기도 했는데, 이 음반들은 재미 한인교포 사회 내부에서 호응을 끈 것은 물론 서울 미도파백화점 악기부 등을 통해 국내로도 재수입, 유통되기도 하는 등 국내외에 현존하는 잔존량이 적지 않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위에 언급된 유나시아 무역회사의 주소가 1950년 판 『미국 영화 및 텔레비전 기술자협회 연감(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 Yearbook)』에, 미국 영화계를 시찰하고자 1948년 도미한 영화감독 이병일(李炳逸)의 미국 체류 주소지로도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6)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보면 이 회사는 아마도 재미 한국인들에 의해 운영되던 한국 무역 전문회사였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회사가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운영되었는지, 어떤 연혁을 지닌 회사였는지에 대한 보다 정밀한 연구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1948년 녹음되었던 조택원 한국무용단 관련 음반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봉산탈춤>과 <남원산성>으로, 이는 당시 조택원 일행이 하와이에서 공연했던 무용 작품의 실제 반주음악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 이 가운데 <봉산탈춤>은 임경희의 독무로 공연되었고, <남원산성>은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몽룡춘흥(夢龍春興)>(조택원의 독무)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심태진과 심상건, 김옥진 역시 이 공연에서 각각 새타령, 가야금 산조, 민요를 공연하였음이 확인되며, 다른 무용 공연 역시 민요 반주로 이루어졌다는 <국민보> 등의 기사를 통해 이들 음반이 당시 조택원 일행의 하와이 공연의 전반적인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음반의 발굴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 무용의 정립기에 조택원을 비롯한 당시의 한국 무용가들이 한국 현대무용에서 어떻게 ‘한국성’을 새롭게 구축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조택원의 미국 공연에서 공연된 것으로 알려진 <가사호접>이나 무용극 <춘향전> 중 <몽룡춘흥>, <춘향난만(春香爛漫)>, <광한루 정연> 등의 공연에서, 기존에 사용되었던 서양풍의 반주곡 대신 심상건・심태진 부녀, 김옥심 등의 국악 연주자들이 반주하는 한국 전통음악으로 대체해 공연했다는 사실을 통해 당시의 한국무용이 지니고 있던 유동성과 융통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조택원, 그리고 그가 해방 후 이끌었던 조택원 한국무용단은 다양한 영상과 음향자료 등을 남겨 1930년대와 1940년대 한국 근대무용 및 신무용의 실체와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한국전쟁기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풍미했던, 근대 신무용과 현대 한국무용의 가교적 역할을 한 김백봉(1927-2023) 및 해방공간 이후 1960년대까지 활동한 다양한 무용가들과 이들의 활동을 담은 영상 및 음향자료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자료제공_ 석지훈(한국음반아카이브·역사학)


 

[사진1] 1948년 6월 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루즈벨트 호텔(Roosevelt Hotel)에서 포즈를 취한 조택원 한국무용단 일행. 왼쪽부터 심태진, 심상건, 김옥진, 임경희, 조택원. 조택원과 임경희는 <춘향조곡>을 위한 의상을 입고 있다. 개인 소장. 

 

 

[영상1] 이번에 최초로 공개하는, 1948년 11월 16일자 미국 NBC-TV의 시사교양프로 <메리 마거릿 맥브라이드 타임(Mary Margaret McBride Time)>에 출연하여 <소고춤>을 선보이는 조택원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의 반주자로 가야금 명인 심상건과 딸 심태진, 그리고 김옥진의 모습이 보인다. 영상의 앞부분에서 조택원 일행을 소개하는 여성 (오른쪽)은 소설 『대지(The Good Earth)』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펄 벅(Pearl S. Buck)이다. 



[영상2] 1948년 9월 미국 로스엔젤레스 컨티넨탈레코드에서 녹음되어 유나시아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조택원 한국무용단의 무용반주음악 <봉산탈춤> 음원. 역시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1) “긔대ᄒᆞ든 무용단”, 『國民報』 (1948.5.5.)


2) “<광고> 호항 동포 제위 앞에”, 『國民報』 (1948.11.3.)


3) “<광고> 유성기판 샤시오”, 『國民報』 (1948.10.27.)


4) Sutton, Allan, American Record Companies and Producers, 1888-1950: An Encyclopedic History (Denver: Mainspring Press, 2019), pp.128-129.


5) Pacific Coast Directory of Transportation ed. by U.S. Department of Commerce (1950 Edition), (San Francisco: Pacific Shipper Incorporated, 1950). p.94.


6) “Membership Directory”, in Journal and Yearbook of 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 54(2) (ed. by the Members of the SMPTE) (New York: SMPTE New York Chapter, 1950), p.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