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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미디어 속의 한국무용(15) 1950년대 김백봉의 무용 세계와 필름 기록

앞의 글에서 적었다시피, 한국전쟁기를 전후한 때부터 1950년대 말까지 한국의 뉴스영화와 문화영화 일반에서 가장 자주 영상에 담겼던 무용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故 김백봉(1927–2023)이었다. 최승희의 수제자이자 동서라는 지위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축적되었던 근대 한국 신무용의 성과를 계승하고, 해방 이후 본격화된 ‘민족문화’ 논의의 부상과 함께 새롭게 ‘한국 고전무용’으로 격상된 전통무용에 대한 재해석을 곁들이며 20세기 후반의 ‘한국무용’을 새롭게 펼쳐나갔던 김백봉의 예술세계와 그의 업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지적해야 할 것은, 그의 예술세계와 개별 무용 작품들이 가지고 있던 지향점과는 별개로, 그의 작품들이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제작된 필름에 담겨 기록되고, 또 남한의 ‘민족문화’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보조재로 사용되며 전후 한반도의 이념 대립 속에서 남한의 체제 옹호에까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김백봉과 그의 무용단이 1960년대 중후반까지 동남아 등지로 파견된 한국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고, 이때의 해외 공연 및 활동 모습도 필름을 통해 자주 기록되고 또 배포되었다는 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1950년대 이후 한국 무용과 관련된 영상기록의 다수는 극영화 등에 삽입된 영상들 이외에도, 이 시기에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한 공보처/공보국, 그리고 미국의 세계 냉전 문화전략의 일환으로 1952년에 한국에 설립되어 1960년대 후반까지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던 주한미국공보원(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Korea, 이하 USIS) 영화부, 이른바 ‘<리버티 뉴스> 팀’에 의해 제작된 뉴스영화 및 문화영화들이 대부분이었고, 김백봉의 무용을 담은 영상기록의 절대 다수 역시 바로 이러한 형태로 남아있다.


현재 KTV e-영상역사관을 비롯한 여러 기록영화 관련 온라인 영상아카이브에서는 1954년부터 1968년까지 촬영된 김백봉 관련 영상자료가 약 30여 편 정도 확인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대한뉴스>나 <리버티뉴스> 등의 한 꼭지로 짧게 들어간 것이지만, 개중 일부는 김백봉이 실제로 무대에서 선보인 무용발표회 공연 전체를 촬영한 것도 남아있다. 이런 자료로 특히 주목할 것으로는 전래민담 <혹부리 영감>을 소재로 만든 무용극 <우리 마을의 이야기>와 고전소설 심청전을 소재로 한 <지효(至孝)>, 그리고 김백봉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한국무용의 대표 작품으로 여겨지는 <부채춤> 등이 있다.


이 3편의 영상은 모두 1956년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시공관에서 열렸던 김백봉 무용발표회의 실황 공연을 그대로 촬영해 영상화 한 것으로, 모두 USIS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이들 필름은 한국 국내뿐만 아니라 USIS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도 배급되었다. 가령 <부채춤> 필름의 경우, 한국어로 제작된 필름 이외에도 영어판과 프랑스어판, 그리고 중국어판(대만용)의 현존이 확인된다. 또한 이들 판본들은 모두 극장상영용 35밀리 필름과 순회영사용 16밀리 필름으로 동시에 제작되었는데, 이는 현존하는 다른 USIS 계열의 문화영화들 가운데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가운데 <우리 마을의 이야기>는 전체 길이가 약 30분에 달하는 문화영화로, 1950년대에 제작되었던 무용극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감 없이 고스란히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는데, 이보다 2년 전인 1954년에 북한에서 최승희의 주도로 제작된 무용극영화 <사도성의 이야기>와 더불어 1950년대 남북한 양쪽에서의 ‘민족무용’의 적극적인 창작 및 보급 의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배급되어 소개된 김백봉의 무용 기록 필름은 1950년대 이후 한국 문화의 대표적인 홍보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공보국이 제작한 <대한뉴스>와, USIS가 제작한 <리버티 뉴스> 등에도 김백봉의 다양한 무용이 담긴 영상자료들이 여러 차례 수록되었으며, 이들 역시 김백봉과 그의 한국무용을 대중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 걸쳐 한국무용을 당대의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표상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다. 한편 최근에 필자가 발굴한 1956년에 제작된 김백봉 무용단의 공연 모습을 담은 칼라 필름의 경우처럼, 아예 외국에서 한국을 찾아와 담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의 일부로도 김백봉과 그의 무용은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앞선 글들에서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최승희와 조택원 등이 이하윤이나 김준영 등의 문화생산자들과 협업 관계를 구축했던 사실을 소개했던 것처럼, 김백봉 역시 이들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의 제작자들, 특히 강래식(姜來植)과 양종해(梁宗海, 1929- ) 등과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 중에서도 양종해는 1956년부터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이후 <리버티뉴스>와 <대한뉴스>의 제작 책임자로 활동하며 196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제작된 문화영화와 뉴스영화 상당수의 제작과 감독을 책임졌다. 그는 앞서 언급한 김백봉의 시공관 공연실황 기록영화 3편 모두를 감독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흘러간 옛 노래> (1960), <열반> (1964), 무용극 <초혼> (1965) 등 한국 문화의 국내 공보 및 해외 홍보 목적으로 제작한 다수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며 김백봉, 권려성(權麗星), 송범(宋范) 등의 무용가들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 문화예술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였다.


다음 글에서는 1970년대까지 국내에서 제작되었던 다양한 무용 관련 기록영상들로 특기할 만한 자료들을 조금 더 소개해본 뒤, 해방 공간에서 제작된 무용 관계의 음반 자료 및 녹음 자료들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덧붙여보고자 한다.



글·자료제공_ 석지훈(한국음반아카이브·역사학)

 

 

1956년 4월 12일에서 16일까지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열렸던 제 3회 김백봉 무용발표회의 일부로 USIS에 의해 촬영, 배포된 문화영화 <지효(至孝)>. 고전소설 <심청전>을 모티브로 창작한 작품이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알 수 있듯, 김백봉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국립국악원장 김기수가 작곡한 무용음악을 국립국악원의 연주로 녹음하여 그대로 삽입하였다. 



1958년 2월부터 4월까지 2개월 동안 남베트남, 태국, 홍콩, 대만 등 동남아 7개국에 걸쳐 순회공연을 한 대한민국 친선예술사절단의 활동을 기록한 USIS 기록영화 <한국예술사절단 동남아 방문>(1958)에 수록된 김백봉의 무용 공연 장면들(편집). 당시 한국예술사절단은 반공총연맹 이사장이었던 공진항을 대표로 하여 자유세계의 반공 가치와 우애를 돈독히 하자는 취지에서 발족한 것으로, 1950년대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에서의 냉전 반공정책과 문화정책과의 관련을 짐작하게 한다.

 


최근 필자가 발굴한 1956년 미국 제작 한국 홍보영화에 수록된 김백봉과 무용연구소 단원들의 공연 모습 기록영상. 1956년 5월 6일 창덕궁 희정당 앞에서 촬영된 것이다. 

 


1958년 공보실에서 제작하여 1959년에 개봉한 문화영화 <무궁화 새로피네>에 수록된 김백봉의 부채춤 공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