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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미디어 속의 한국무용(16)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무용 영상 및 음향기록

앞서 설명한 것처럼, 195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여러 주체들에 의해 한국 무용을 촬영하고 기록한 다양한 영상자료(기록영화, 문화영화 등)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영상들은 무용이 가지고 있는 즉자적인 요소들을 활용하여 한국의 문화와 ‘민족정서’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알리는 데에 그 주된 목표가 있었다. 이는 물론 단순한 문화의 우수성 홍보에서 그치지 않고, 냉전시기에 대만, 남베트남, 필리핀 등 수많은 “자유세계” 아시아 국가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자유진영” 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세계사적 맥락이 깃들어 있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영화를 통한 한국에서의 공보(公報) 정책은 더욱 강화되기에 이르렀는데, 특히 1961년 국무원 산하 공보실이 공보부로 승격되고, 다시 이것이 1968년 문화공보부로 승격되는 과정을 거치며 그 산하에서 주관하던 각종 영화 제작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본격화되었다. 즉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가 1961년 국립영화제작소로 승격되면서 제작 편수와 수량, 그리고 배급 면에서 과거와는 큰 차별점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국립영화제작소 안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수많은 문화영화를 감독, 제작하며 이름을 날렸던 대표적인 인물로 앞서 언급한 양종해(梁宗海, 1929-現)를 들 수 있다. 그는 앞글에서 언급한 김백봉의 시공관 공연실황 기록영화 3편 모두를 감독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1970년대 말까지 한국 문화의 국내 공보 및 해외 홍보 목적으로 제작한 다수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였다. 이 시기에 양종해에 의해 제작되었던 여러 무용 관계 기록영화 및 문화영화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1980년대까지 꾸준히 재개봉을 거쳤던 <초혼>(1965)를 들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는 제작 당시에 작성되었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제작 기록과 시나리오, 제작 심의문서 및 기타 문서자료가 적지 않게 보존되어 있어[사진 1-5] 당시의 문화영화 제작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짐작할 만 하다.



“화려한 한국무용을 해외각국에 선전하며, 한국무용이 지닌 고유의 문화적 예술적 특색을 세계 각국 문화계에 재인식하게 한다”는 기획 의도로 제작된 이 작품은 1965년 1월 29일 제작이 시작되어 5개월 뒤인 1965년 6월 30일 제작이 완료되었다. 원작 모윤숙, 각본 양종해, 무용극의 안무는 1960년대 한국무용을 대표하는 여성무용가 중 한 명이었던 강선영(姜善泳, 1925-2016)이 맡았고, 강선영과 송범(宋范, 1926-2007) 등이 출연하였으며, 음악은 정윤주(鄭潤柱, 1918-1997)가 맡았으며 중간에 나오는 창(唱)은 김소희 명창이 맡았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후 이 영화의 프린트는 총 92벌이 제작되어 그 중 62벌은 전국 각지의 주요 영화관에 배포되었고, 나머지 30벌은 주미대사관, 주영대사관, 주프랑스대사관 등을 비롯 전세계 각국에 배포되었다. 당시 국내에서의 일반 극영화 프린트 제작도 대개 10벌 이상을 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1960년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 문화영화의 제작과 배포, 그리고 활용이 당시 얼마나 중요한 사업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초혼>은 1965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 12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비극영화(非劇映畫)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이후 국립무용단에서 강선영에 의해 다시 무대용으로 재구성, 재연출되어 1968년 9월 6일 국립극장에서 정식 초연1)을 거친 뒤 강선영의 대표 연출작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다. 당시 이 작품의 무대 초연을 다룬 인터뷰 기사에서 강선영이 “영화 아닌 무대 조건에 맞추느라 거의 다시 창작하다시피 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의 경우 영화로 먼저 제작된 것이 무대극으로 재구성된 한국 현대무용 작품으로서는 다소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상기록이 만들어졌던 것과 함께, 1950년대 이후 한국 무용계에서는 무용의 대중적 보급을 위한 발걸음으로 무용반주용 음악을 음반에 녹음하여 전국 학교 등지에 배포하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1957년 5월 결성된 새무용보급위원회의 활동을 들 수 있다. 1957년 5월 “한국의 무용문화 향상과 보급”을 목적으로 김백봉, 임성남, 강선영, 송범, 김태헌 등의 무용가들 및 이서구, 이혜구, 김천흥 등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결성된 새무용보급위원회는 그 해 7월 초중등학교에서의 무용 교육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유니버설(Universal) 레코드사를 통해 전 5매의 <새무용 음악> 유성기음반 앨범을 제작, 발매하였다.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은 『조선일보』 1957년 7월 2일자 기사​2)에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새무용보급위원회는 이 음반을 초중등학교 운동회, 학예회, 매스게임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으며, 또 그 무용 동작을 담은 사진 해설집까지 만들어 이를 각지 학교에 보급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무용 교육을 “산간벽지에서도 누구나 지도할 수 있게 편집”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무용 지도와 편집, 기획은 해방 후 한국 무용교육의 권위자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파조(波鳥), 즉 이호순(李浩舜)이 하였고, 음악 편곡은 <스승의 은혜>의 작곡가로 유명한 권길상(權吉相)이 맡았다. 음반과 함께 무용의 동작을 순서대로 기록한 『새무용 사진해설집』도 제작되었는데, 이는 그 시기의 주요 사진 정기간행물인 『사진보도』의 특별판으로 기획되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때 수록된 무용 동작들의 사진 모델은 서울 덕수국민학교와 이화여자중학교 학생들이 했다. 당시 이 음반 세트의 수록곡은 다음과 같은데, 이 중 특히 <꼭두각시>는 오늘날까지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자주 공연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새무용보급위원회의 활동 가운데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레코드 1: A-1 태극기행진곡 / A-2 꽃과 바람

레코드 2: A-3 하이킹행진곡 / A-4 한국무용기본

레코드 3: A-5 농군행진곡 / A-6 동심 및 꼭두각시

레코드 4: A-7 대한어린이행진곡 / A-8 雙扇舞

레코드 5: A-9 즐거운 소녀 왈쓰 / A-10 南方의 리듬



이렇게 제작된 <새무용>은 정식 교재와 음반으로 재구성되어 그 후 계속해서 재간행되고 그 내용 역시 꾸준히 확장, 개정되어 1970년대 중반까지 LP 음반의 형태로도 계속 발매되었으며, 새무용보급위원회는 1963년부터 한국무용교육총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재발족하여 1970년대 후반까지 활동을 이어나갔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이호순은 <파조의 노래>라는 무용영화를 기획하여 1959년 하순 무렵 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이는 실제로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각본집인 <파조의 노래>와, 이 영화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주제곡 유성기음반이 발매되어 현재 실존이 확인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료제공_ 석지훈(한국음반아카이브·역사학)



[사진1] 1965년 국립영화제작소 제작, 양종해 감독으로 제작된 무용극 영화 <초혼>의 홍보 전단지.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2] 국립영화제작소의 <초혼> 영화 제작지시서. 본래는 <한국의 무용>이라는 단순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고 했던 작품을 무용극으로 전환하여 기획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3]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작성된 영화 <초혼>의 필름 배부표. 국내에 약 60여벌의 프린트가, 해외 대사관 및 기타 공관 및 홍보실에 30여벌의 프린트가 배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4] 양종해가 자필로 작성한 무용극 영화 <초혼>의 기획 구성안 원고 (제1페이지).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5] 무용가 겸 안무가였던 파조 이호순에 의해 기획되었던 무용영화 <파조의 노래> 각본. 1959년경. 개인소장.


[사진6] 1957년 7월 새무용보급위원회에 의해 발매된 <새무용> 유성기음반 앨범과 율동 화보. 2018년 코베이 KOBAY 경매 출품 사진.


[사진7] 1959년 유니버설 레코드사에서 영화 <파조의 노래> 주제가 음반으로 발매된 <즐거운 마스겜> / <연희의 노래> 유성기음반. 뒷면에는 당시 새무용보급위원회에 소속되어있던 여러 무용가들의 사진을 담고 있어 자료적인 가치가 크다. 이경호 소장.


[사진8]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과 함께 한국교육무용총연합회 명의로 LP로 재발매된 파조의 <새무용> 지도 LP음반. 지구레코드 제작, 발매. 이 음반은 계속 내용이 보충되고 재녹음되면서 1970년대 후반까지 여러 음반사를 통해 계속해서 발매되었다.



1) “가을을 연다 (1): 國立舞踊團의 「招魂」”, 『경향신문』 (1968. 8. 31.)

 

2) “敎育舞踊레코드 새무용普委서 製作”, 『조선일보』 (1957.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