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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한 점] 한 장의 그림에 시간을 넣는다면: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리콜렉션 [움직임 한 점]

Vol.129-1 (2026.5.5.) 발행


글_ 김은주(아트캐스터)

pace.opend@gmail.com



[움직임 한 점]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의 감각과 시선을 풀어내는 기록이다. 그림을 통해 춤을 보고, 춤을 통해 다시 그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문자들이 움직임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캔버스에 유채, 1912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한 순간이 아니라

겹쳐진 시간의 층


움직임은 흐르지 않고

잘려 다시 놓인다


몸은 형태가 아니라

궤적과 구조로 남는다


감정은 지워지고

동작만이 배열된다


이미지는 분해되고

시간은 다시 구성된다


마르셀 뒤샹은 움직임을 분석하고 재조립하며

회화를 ‘시간을 다루는 장면’으로 전환했다

마르셀 뒤샹은 그리는 행위를 넘어 예술을 ‘선택하는 것’으로 전환한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다고 믿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한 장의 화면 안에서 시간과 움직임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로 시작된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에서 그는 움직임을 잘게 분해한 뒤, 그것을 다시 겹치고 배열한다. 한 사람의 단순한 동작은 수십 개의 순간으로 나뉘어 화면 위에 병치되고,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자세가 아닌 궤적과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은 분명하다. 움직임은 과연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인식 속에서 ‘구성되는 것’일까. 이 그림 속 인물은 더 이상 하나의 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반복과 어긋남의 리듬을 지닌다. 마치 같은 음이 미묘하게 어긋나며 되돌아오는 돌림노래처럼, 시간은 겹쳐지고 흔들린다. 몸은 원뿔과 원통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며, 움직임은 부드럽게 이어지기보다 끊기고, 이어지고, 다시 반복된다.


어두운 윤곽선은 몸을 구획하는 경계이자 움직임을 이끄는 축이 된다. 점선의 호는 다음 동작을 암시하며, 서로 다른 시퀀스들은 밀고 당기듯 긴장을 형성한다. 이는 단순한 동작의 재현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가깝다. 유쾌함과 거침이 느껴지지만, 그 아래에는 치밀하게 설계된 시간의 질서가 놓여 있다.


이 그림은 정지된 평면 위에 시간을 담으려는 시도이자, 회화가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형태를 해체하던 큐비즘과 속도와 운동을 찬미하던 미래주의 사이에서, 뒤샹은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그는 형태를 부수되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움직임을 다루되 그것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거의 기계처럼 냉정하게 동작을 분해하고 배열한다.


그래서 이 몸에는 얼굴도, 감정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내려가는 동작’이라는 구조뿐이다. 몸은 더 이상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과정이 된다.


이 시기, 세계는 처음으로 속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미지는 분절되고, 움직임은 프레임으로 나뉘며, 시간은 잘려 다시 배열된다.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처럼, 움직임은 더 이상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분석 가능한 단위가 된다. 뒤샹의 이 그림은 그렇게 분절된 순간들을 다시 한 화면에 압축한 결과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장면의 재현이 아니라,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인간의 몸이 어떻게 인식되기 시작했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에 가깝다.


1913년 아모리 쇼에 출품된 이 작품은 조롱과 혼란 속에 놓였다. 계단은 어디에 있는지, 누드는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낯섦은 곧 새로운 시각의 출발점이 된다. 이후 뒤샹은 ‘그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의 정의 자체를 전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지점에서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면, 이것은 단순한 움직임의 재현이 아니다. 회화가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서기 직전의, 일종의 전환의 순간이다. 몸은 이미 해체되었고, 시간은 겹쳐졌으며, 남아 있는 것은 질문뿐이다. 이것은 사람인가, 움직임인가, 아니면 하나의 개념인가.


잘게 분절된 감각들 사이에서 우리는 시각과 촉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어지는 움직임 속에는 붙들려는 힘과 벗어나려는 힘이 공존한다. 그것은 함께 움직이려는 몸짓일 수도, 스스로를 넘어가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움직임이 단일한 흐름이 아니라 끊임없이 겹쳐지고 어긋나며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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