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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예술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



[사진1] 독일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독일은 장르를 불문하고 걸출한 예술가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배출한 국가 중 하나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인정받는 무용수들 중 다수가 이 곳에서 탄생하고 활동했다는 사실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예로 필자가 이전에 조명한 바 있는 마리 비그만(Mary Wigman)을 비롯하여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과 그의 제자 쿠르트 요스(Kurt Jooss) 한야 홀름(Hanya Holm), 그리고 현재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샤 발츠(Sasha waltz)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모두 각각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여 무용사에 기록될만한 업적들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피나 바우쉬(Pina Bausch)를 빼놓고는 무용사를 논할 수 없다.

 

 피나 바우쉬는 1940년 독일의 졸링겐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나고 자란 시기에 독일의 예술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한 현실과 마주하여 표현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무용계 또한 마리 비그만을 선두로 고전발레의 형식미와 모든 장식적 요소를 부정하고 인간의 내면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표현주의 현대무용이 등장하였다. 비그만을 비롯한 표현주의 현대무용의 선구자들은 피나 바우쉬가 연극과 무용이 결합된 독특한 방식인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새로운 양식을 탄생시키는데 있어서 직·간접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사진2] 피나바우쉬가 한국을 소재로 안무한 <러프 컷(Rough Cut, 2005)>의 한 장면

 

 ‘탄츠테아터’는 독일어로 무용을 뜻하는 탄츠(Tanz)와 연극을 뜻하는 테아터(Theater)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무용과 연극의 결합한 일종의 ‘무용극’ 형식을 뜻한다. 이러한 탄츠테아터에서는 무용수가 노래를 부르고, 대사를 구사하기도 하며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일상의 모습, 그리고 때때로 즉흥적인 모습까지 무대 위에 그려진다.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전혀 놀랍지 않게 여겨질지도 모르나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피나 바우쉬는 20세기 최고의 무용가라는 수식을 얻게 되었다.

 

 20세기 미국의 현대무용이 ‘무용을 위한 무용’ 즉,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진 형식주의에 심취해 있었다면, 피나 바우쉬의 춤은 밀접하게 현실과 맞닿아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온 뿌리 깊은 사회적 불안, 사람들 간의 복잡한 관계가 극적으로 구현되었으며 무대는 추상적인 오브제 대신 흙과 물, 나무와 바위 등으로 채워져 폐쇄적인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드넓은 자연공간으로 확장시켰다. 단편적인 장면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콜라주 기법 또한 그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이다.



[사진3] 영화 <피나(Pina, 2011)> 포스터

 

 피나 바우쉬는 자신의 경험과 삶의 배경을 무대 위에 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벗어나 전 세계 각국에 체류하면서 받은 인상을 작품 속에 담는 것에도 열중했다. 1989년 이탈리아 팔레르모를 소재로 한<팔레르모, 팔레르모>를 시작으로, 스페인, 오스트리아 빈, 로스앤젤레스, 홍콩, 부다페스트, 브라질리아 등을 방문함으로써 세계 국가·도시 시리즈 안무를 이어나갔다. 2005년에는 3주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안무한 작품인 <러프 컷(Rough Cut)>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하여 한국의 문화예술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된 바 있다. 이처럼 적지 않은 나이에도 곳곳에 숨어있는 예술적 영감을 발견하고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쏟아 붓던 피나 바우쉬는 68세가 되던 해인 2009년, 암 진단을 받은 직후에 갑작스레 삶의 막을 내렸다. 2011년, 피나 바우쉬의 몸은 떠나고 없지만 그녀의 영혼이 담긴 움직임은 생전에 그녀에게 커다란 감명을 받았던 영화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에 의해 제작된 3D영화 <피나(Pina)>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피나 바우쉬는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확립함으로써 예술작품의 표현 범위를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서 탁월한 자질을 발휘하여 부퍼탈(Wuppertal)이라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의 무용단을 불과 몇 년 만에 독일을 대표하는 무용단으로 탈바꿈 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이러한 발자취는 무용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 음악, 영상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조명되곤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구절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글_신찬은(성균관대 예술학협동과정 석사4기)

 

사진출처:
사진1_
http://www.pina-bausch.de/__we_thumbs__/17_2_pina_bausch_krueger.jpg
사진2_
http://www.theapro.kr/upload/cheditor/NWSLG05U6T0GSPH24IWI.jpg
사진3_
http://www.clasicamexico.com/blog/wp-content/uploads/2012/04/PINA.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