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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무대 위에 희노애락을 구현하다, 드라마 발레 안무가 존 크랑코(John Cranko, 1927-1973)

사진1 / 존 크랑코

 존 크랑코는 독일의 작은 무용단이었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드라마 발레 안무가이다. 한국에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강수진이 수석무용수로 활약했던 무용단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강수진의 무용수로서의 은퇴작이기도 한 <오네긴>은 그녀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승급하여 역을 맡은 첫 작품이며, 그녀에게 존 크랑코 상의 영예를 안겨다 준 작품이기도 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크랑코가 발레에 대한 열망을 안고서 고향으로부터 영국 런던으로 건너온 것은 채 스무살이 되기 전인 1946년이었다. 새들러스 웰스 발레학교(Sadler’s Wells Ballet School)에 진학하기 전, 크랑코는 단지 약간의 발레 트레이닝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는 작품으로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에서 새로이 자리잡으려던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현 로열발레단)에서 크랑코는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 발레의 군무에 해당)의 일부로 출연하는 등 무용수로 활동했으나, 그가 최종적으로 원했던 것은 안무가로서의 작업이었다. 그는 고향인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17세의 나이에 이미 이후 안무의 단초가 되는 세 개의 발레 작품을 구상하기도 했다.

사진2 / <오네긴> 중 강수진과 제이슨 라일리

 크랑코는 순수한 안무 자체보다 안무에서의 연극적 효과들에 관심이 있었다. 또한 작품이 상업적인 성공과 거리가 멀거나 아주 적은 관객들만이 작품을 보러온다는 점을 ‘예술성’과 연결시키는 견해에 명백히 비판적이었다. 크랑코는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에게서 직접 조언을 얻는 등 그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작업을 신봉했으나, 음악과 맞아떨어져 ‘음악을 보는 듯한’ 혹은 ‘춤을 듣는 듯한’ 느낌까지 주는 발란신의 클래식한 안무와 크랑코의 작업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발레의 창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협업과 상호 간의 신뢰이며, 소품이나 음악은 그것들이 고안되는 기준인 안무와의 결합에 진정한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크랑코의 말은 오히려 미셸 포킨(Michel Fokine, 1880-1942)과 상통한다.

 크랑코는 무용수를 발탁하여 양성하고,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가 빛날 수 있는 안무를 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코르 드 발레의 오디션을 보러왔던 무명의 무용수 마르시아 하이데(Marcia Haydée, 1937~)를 발탁하여 주역으로 세우며,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는 데 자신의 사임을 걸기까지 했다. 이 이야기는 후에 하이데가 이루어내는 드라마틱 발레리나로서의 뛰어난 성취를 고려한다면, 크랑코의 선구안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푸쉬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이야기를 가져와 크랑코가 창작한 <오네긴>은 하이데를 주역으로 하여 1965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의해 초연되었고,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함께 크랑코의 대표작으로 손꼽힐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진3 / 존 크랑코와 마르시아 하이데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크랑코는 뉴욕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무용단과 함께 독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복용하던 약의 흔치 않은 부작용으로 45년의 생을 마감했다.

 안무가로서 크랑코에 대한 평가는 유럽과 미국에서 극명하게 대조된다. 유럽에서는 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의 예술감독이었던 애쉬튼(Frederick Ashton, 1904-1988)에 버금가는 평가를 받았으나 미국의 평론계에서는 안무가로서 전혀 재능이 없다는 평가마저 받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는 프티파와 발란신의 지대한 영향 아래 형성된 미국적 경향이 포킨과 애쉬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럽적 경향과 가지는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창작했던 작품들 뿐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수상되는 존 크랑코 상(John Cranko Award)이 해마다 뛰어난 무용수들에게 부여되고 있으며, 슈투트가르트 시에 위치한 존 크랑코 발레학교(1971년 설립)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미래의 무용수를 꿈꾸며 춤추고 있다.


글_ 기자 심온(서울대 미학 석사과정)


사진(1)_ http://www.npg.org.uk/collections/search/portraitLarge/mw57012/John-Cyril-Cranko, a photo by Cecil Beaton
사진(2)_ https://kr.pinterest.com/pin/247557310738180959/
사진(3)_ http://lasylphidedubolchoi.tumblr.com/post/80574013638/marcia-hayd%C3%A9e-and-richard-cragun-rehearsing-under

참고자료(1)_ Oleg Kerensky, ‘Cranko Remembered’(a review of the book named ‘Theatre in My Blood: A Biography of John Cranko by John Percival’), Dance Chronicle, Vol. 6, No. 4(1983), pp. 374-378
참고자료(2)_ John Percival, ‘The Arts: A Creator of Wit and Brilliance’(http://www.lexisnexis.com/hottopics/lnacademic/?verb=sr&csi=8200&sr=HEADLINE(A+creator+of+wit+and+brilliance.)%2BAND%2BDATE%2BIS%2B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