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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승무와 함흥검무의 명인 장홍심(1914-1994)

 한국 전통춤은 누대에 걸쳐 여러 전승자의 노력에 의해 지금에 이르렀다. 특히 근대 이후 한성준은 여러 전통춤을 공연예술로 다듬어 무대화하였고, 경성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도 이러한 영향에 의해 많은 춤이 정제되었다. 이후 이러한 몇몇 춤들은 보존 가치를 인정받으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재생산의 의미를 확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들은 파급력을 가지고 보급이 이루어졌지만 개성을 가진 춤들은 여러 이유로 인해 전승되지 못한 이면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춤꾼들의 활동은 근근이 이어지며 대중과 소통하였지만 새로운 세기에 그 맥은 희미해졌고 전설로만 남아있다. 장홍심도 그러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한사람이다.

 1991년과 1996년 이루어진 무형문화재조사 보고서를 중심으로 일생을 풀어보면 그는 1914년 함흥에서 태어나 함흥권번에서 춤에 입문하는데 이때 그를 가르친 인물은 조택원의 외할머니로 알려진 배씨 할머니로 그에게 검무, 포구락, 승무, 살풀이춤 등을 배운다. 그러다가 21세에 경성으로 와서 한성준 문하에서 여러 춤을 배우고, 1938년 고전무용대회에서는 이강선과 함께 검무, 태평무, 살풀이춤을 추는 등 전통춤이 공연예술로 정착하는데 일조하였다.

 해방공간에는 고향인 함흥으로 가서 음악동맹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며 검무, 화관무, 승무, 한량무 등을 전승하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부산에 정착하여 이매방과 함께 무용연구소에서 활동하였고, 이후 서울에 와서 개인 무용연구소를 차리고 활동하다가 1994년,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바라승무와 검무에 일가를 이루었다. 바라승무는 승무에서 북가락 대신 바라춤을 춘 형태로 한성준의 1938년 고전무용대회에서 첫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35년 한성준의 공연에서 파계에 빗댄 내용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승무가 불교계에 비판을 받아 고육지책으로 바라승무가 승무를 대신하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 춤은 바라춤이 지니는 종교적 상징성이 승무에 더해지며 공연예술로 의미를 확보하게 되었다. 정범태의 『한국의 명무』(한국일보사, 1985)에서도 바라춤의 사진이 실려 그의 특기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장홍심은 바라춤뿐만 아니라 승무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해방공간 북한에 머물던 시절 그의 승무를 보고 최승희가 칭찬을 하였고, 그의 딸인 안성희를 가르칠 정도로 이미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장홍심은 함흥권번과 한성준에게 승무를 익히지만 완전히 체화한 것은 이매방과 교류에서 이루어진다. “李선생님의 승무의 북가락이 멋이 있고 흥겨워 그것을 다 배우고 자신의 劍舞를 소개하기도 했다”(무형문화재보고서, 1991)는 회고처럼 그는 당대 북가락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매방을 통해 승무에 대한 집약이 이룰 수 있었다. 한성준과 이매방, 정점이 되는 두 사람의 춤을 직접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는 변별성을 지녔고, 현실과 피안의 경계에서 무아지경을 느낄 정도로 그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춤이라 말하였다. 또한 그의 검무는 함흥에서 익힌 호방한 기법과 한성준의 단아한 정서가 함께 어우러지고 검의 놀림도 다양하여 독특한 춤사위를 보여주며 그만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렇지만 1984년 제11회 한국명무전(국립극장, 1984.9.27-28)에서 ‘승무’, ‘바라춤’, ‘검무’를 보여주었고, 1993년 3월 27-28일 호암아트홀에서 명인전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뿐 그의 춤의 세계는 전면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점은 해방공간 평양과 함흥, 전후 부산 등에서 활동으로 인한 관계성의 단절과 어려운 생활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에 기인할 듯하다.

 변별성을 지닌 그의 춤은 여러 춤꾼에 의해 영향을 주었지만 미시적이란 점에서 아쉬움을 준다. 한국 전통춤은 보존가치를 지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뿐만 아니라 개성을 지닌 여러 춤들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몇 종목의 쏠림 현상은 오히려 새로운 가치 창출에서는 제한적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잊힌 춤에 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전통춤의 제대로 된 보전이 전승의 필요성이 그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