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칼럼

리콜렉션

토착적인 한국 발레의 시작, 진수방(陳壽芳, 1921-1995)


[사진 1] 진수방의 노년 시기 모습

 진수방(陳壽芳, 1921-1995)은 서양 발레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춤을 접목하여 한국무용의 발전을 선구적으로 이끌었던 여성 무용가이다.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사범부속학교를 졸업하고 일찍부터 무용에 입문한 그녀는 조택원, 한성준, 이시이 바쿠(石井漠), 가와카미 스즈코(河上鈴子), 러시아인 크리아스노바 등을 통해 다양한 무용 장르를 순차적으로 연마한 것으로 알려진다. 진수방은 여러 경계를 월경하면서 토착적인 한국 발레의 창안과 도입을 위해 일생에 걸쳐 노력했던 무용가이다.

 진수방은 14세였던 1935년 8월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황인호(黃仁好)와 함께 조택원의 빼어난 연구생으로 소개되었으며, 당시 이들은 함께 순회공연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그녀는 1940년에 무용연구소를 만들어서 아동무용과 예술무용의 도제식 시스템을 통해 무용 대중화와 제자 양성에도 힘썼다. 1946년 3월 진수방, 정지수, 한동인 세 사람은 합동 공연을 통해 해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 발레의 무대 공연을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진수방이 이끌었던 ‘한국발레예술무용단’은 1954년 11월 공연에서 고전 발레와 스페인 무용, 창작 무용 등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무용작품들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사진 2] 진수방의 스페인 무용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

 특히 그녀는 1961년 6월에 「돈키호테」 「투쟁」 「괴로움과 즐거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주목할 만한 ‘코리안 발레’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진수방이 서양 발레에 베이스를 두면서도 최승희 무용작품의 음악을 담당했던 지영희와 박성옥 같은 당대 최고의 국악인들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한국적 장단을 서양 발레에 도입하는 방식으로 한국적 발레의 토착화 혹은 현지화를 시도했던 예술적 노력을 보여주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진수방의 대표작으로는 「물긷는 아가씨」(1947년 초연) 「그랜드코리안발레」(1961년 초연, 지영희・조병학 편곡) 등이 있다.

 한국무용사에서 진수방은 발레 지도자로서의 면모도 꾸준하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1946년에 조선무용예술협회가 결성되었을 때 발레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그녀는 1956년에 한국무용가협회장이 되었으며, 1959년에는 한국무용협회를 새로 발족하면서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62년 국립무용단이 설립되었을 당시 무용단 임원직을 맡았으나 내부적 갈등으로 사퇴하기도 했던 진수방은 같은 해 ‘제1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후 진수방은 일본과 미국으로 무용 유학을 떠나면서 한국 발레의 외연을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데 계속 헌신하였다. 진수방은 1963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제세버 발레스쿨’ 원장의 초청으로 발레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재미 무용가로서 미국 순회공연을 하는 등 꾸준하게 활동하였다. 그녀는 1970-80년대에 한국을 방문하여 국내 무용가들에게 발레와 재즈 특강을 하기도 했으며, 미국 뉴욕에서 말년을 보냈다.


글_ 이진아(문화사 연구자)

사진 출처_
사진 1_진수방의 노년 시기 모습(『서울신문』 2008년 11월 20일자).
사진 2_진수방의 스페인 무용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동아일보』 1950년 1월 11일자).

참고문헌_
“진수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호연, 『한국 근대 무용사』, 민속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