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5일부터 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동명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무용 <11분>이 공연된다. 소설 <11분>은 성행위의 평균 지속시간을 나타내는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성(性)이라는 키워드로 영혼, 육체, 사랑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마리아가 고향인 브라질을 떠나 스위스 베른 가의 창녀로 일하며 성, 사랑, 영혼에 대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번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은 소설 <11분>에서 영감을 얻은 각 무용수들의 안무로 이루어진다.
무용수들, 그리고 예술 감독은 어떤 생각과 방식으로 안무를 꾸려나가고 있을까? 공연 준비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댄스 포스트 코리아의 심온, 안수진 두 명의 인턴기자가 연습현장과 기자간담회에 다녀왔다.
8월 18일, 다섯 명의 무용수가 리허설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연습 현장에서 댄스 포스트 코리아가 무용수들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인터뷰는 허효선 - 지경민 - 최수진 순서로 진행되었다. (리허설 당일 개인 사정으로 이준욱, 김보람 무용수는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Q. 소설 <11분>의 어떤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영감을 받았는가?
허효선(이하 허): 이번 안무에 차용한 문구는, 마리아의 일기에서 밑줄 그었던 세 문장의 조합이다. “우울한 권태에 빠져 현재에 미래를 보며 살아가는 나는, 혼자 걸어갈 수 있을 때 원하는 곳으로 갈 것이다.”
Q. 작품에 소제목이 따로 있나? 안무의 주제는 무엇인가.
허: <땅콩>이다. 땅콩은 그 자체가 성적인 코드를 담고 있으면서도, 여성 성기로서 '여자'인 나를 상징하기도 한다. 보통 우리는 땅콩의 고소함을 기대하며 껍질을 까는데, 이번 안무에서는 땅콩을 까는 그 행위 자체로서의 행복함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러니 땅콩의 알맹이는 작품의
주제가 아닌 셈이다. 실제 땅콩을 직접 소품으로 사용해 몸의 여러 부분에 비비는 안무가 있다. 자위라 하면 직접적으로 성기와 가슴이 떠오르는데, 팔꿈치와 같은 몸의 다른 여러 부분들을 통해 색다른 느낌들을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Q.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에서 11분은 성 행위의 유지 시간이다. 그 11분의 과정을 다루는 것인가?
허: 그렇지는 않다. 나에게 11분은 결국 하나의 인생이다. 11분을 통해 마리아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또 단편적으로 나타낸 것 아닐까.
Q. 안무 중 눈여겨 볼만한 테크닉이 있다면?
허: 오프밸런스(off-balance), '깨짐' 안에서는 결국 자신을 믿고 행위 해야 한다. 그 믿음을 오프밸런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참고 : 고전무용(ex: 발레)에서는 상체를 곧게 펴고, 골반과 상체를 따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특징인 반면, 현대무용에서는 수직적 중심을 벗어난 자유로운 움직임을 추구한다.
Q. 작품의 소제목은 무엇이며, <11분>이라는 작품 중 어떤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영감을 받았는가?
지경민(이하 지): 소제목은 <연필 빌리는 아이>이다. 영감을 얻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그날 아침, 소년이 다가와 연필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갑작스런 접근에 화가 난 척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그녀는 소년이 다가오는 것을 본 순간 겁에 질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고, ……중략…… 그가 눈치챌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Q. 관객들이 주목해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지: 나는 소년의 수줍은 움직임을 안무에 담고자 했다. 소년은 내가 책에서 발견한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책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소년의 수줍은 움직임들을 상상해 표현했다. 이 움직임을 후에 랄프와 잠자리를 가질 때 마리아가 보였던 수줍은 모습을 연결했다. 창녀로서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지만 사랑하는 랄프 앞에서는 옷을 벗는 것이 다시금 수줍었다고 이야기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이때의 마리아를 과거의 소년과 작품 속에서 만나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작품 안에서는 소년과 마리아, 두 사람이 모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Q. 이전에도 본인이 안무를 해본 적이 있는지?
지: <애니메이트>, <원>, <인간의 왕국> 세 작품에서 안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항상 듀엣 이상을 만드는 공연을 해 오다가 솔로를 하려니 아무래도 부담감이 있고, 괜히 과욕을 부리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Q. <11분>이라는 작품을 기반으로 한 공연의 핵심은? 어떤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영감을 받았고, 어떤 안무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소제목은?
최수진(이하 최): 이번 안무는 모던 발레 형식이고, 소제목은 <나쁜 여자>이다. 소설에 ‘소유하지 않음에서 느끼는 자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의 안무는 이 부분에서 착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마지막 부분에 마리아가 사랑하는 랄프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에서 영감을 받았다. 결정의 순간, 그 '찰나'가 가장 큰 주제이다.
안무 중에 토슈즈를 한 쪽만 착용하는데, 이는 개념적으로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는 지난 일들, 지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서로 스치고 어긋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 쪽만 토슈즈를 착용한 채로, 불편한 스텝들과 자유로운 스텝들을 섞어서 사용하게 될 것이다.
Q. 랄프를 떠나려 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여성, 즉 마리아의 독립적인 신념이다. 제목은 <나쁜 여자>지만, 사실 마리아는 당당한 신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옳은 결정을 하는, 그럼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여자인 것이다.
Q. 공연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최: 다섯 명의 안무를 관통하는 연결고리를 통해 공연 전체를 하나의 작품, 하나의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 혼자서만 잘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8월 21일에는 '국립현대무용단 <11분> 프레스리허설 및 안애순 예술감독 취임기자간담회'에 참석하여, 신임 예술감독인 현대무용가 안애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애순: 이 프로젝트 <11분>은 국립현대무용단의 전임 예술감독인 무용가 홍승엽과 본인의 시기에 맞물려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이미 7월 전에 시작 된 이 프로젝트는 여러 차례 선정 위원들의 논의에 걸쳐 각자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술적․ 신체적으로 절정의 시기를 맞고 있는 30대 전후의 다섯 명의 무용수들을 선정했다.
무용수들은 각자의 영감과 해석을 가지고 안무를 꾸려나갈 것인데, 오늘 리허설에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 어떤 색깔로 이야기를 할 것인지 일부만을 보여주었다. 다섯 명의 작품은 안무들이 연결되는 브릿지 부분이나 여러 무용수가 함께 등장하는 엔딩 부분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합쳐 질 텐데, 오늘 리허설에서는 그 부분이 빠져 있다. 다섯 개의 안무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하나의 공연으로 탄생할 지 본 공연에서 기대해주시면 좋겠다.
이번 공연에는 안무 외에도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먼저, 이번 공연은 재즈계의 떠오르는 유망주인 K-Jazz Trio(피아노 조윤성, 베이스 황호규, 드럼 이상민)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한다. 자체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K-Jazz Trio는 무용수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음악적 무용을 잘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무대 장치 역시 소극장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바닥의 레벨을 달리하여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하는 시인 김경주 씨에게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렇게 8월 18일 연습 현장과 21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여, 각각의 무용수와 예술감독이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지켜보았다. 아직은 각자의 작품이 서로 완벽하게 녹아들지 못한 미완의 상태이긴 하지만, 다섯 개의 안무는 날것의 상태로도 각자의 영감과 표현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과 안애순 예술감독, 그리고 김경주 시인과 재즈밴드 K-Jazz Trio가 이번 공연을 통해 어떤 ‘11분’을 관객들에게 보여줄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글_ 댄스포스트코리아 인턴기자 심온 (서울대 미학/독문학 4)
인터뷰·정리_ 댄스포스트코리아 인턴기자 심온·안수진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 한국춤문화자료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