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 ‘쿠쉬나메’를 주제로 한 김선미 무용단의 <천>은 지난 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의해 공연예술 창작산실 육성지원 무용분야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오는 2월 2일과 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새로이 오르는 <천>은 어떤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지 알아보기 위해 김선미 무용단의 예술감독이자 본 공연의 안무를 맡은 김선미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Q. 먼저 역사학적으로도 새로운 쿠쉬나메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A. 쿠쉬나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7세기 경 아랍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 지역으로 피신한 페르시아의 마지막 황제 야즈데기르드는 신라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며 신라왕의 딸과 혼인하기를 청하고, 신라왕은 딸을 내어준다. 그리고 야즈데기르드와 신라왕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페르시아를 다시 일으키게 된다. <천>은 신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한 딸을 위한 넋들임과 위로이다. 불교의 천도의례 중 하나인 영산재가 공연의 큰 틀이 된다. 나는 이 제의의 만신 역할을 한다.
Q. 영산재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있는가?
A. 영산재는 영산작법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쉽게 말해 혼을 위로하여 제 갈 길로 보내주는 것이다. 이 공연에서 위로하는 혼은 앞서 말했듯 신라 공주의 혼이다. 천 년 전 고향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던 공주의 혼과 당시의 역사를 불러와 그동안 쌓여 있던 그리움과 갈등을 해원시켜 다시 제자리로 승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인물들을 위한 해소 뿐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해원이기도 하다. 나는 그 영혼들을 불러들이는 만신의 역할을 맡아 그들을 위로 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움직임을 한다.
Q. 이번 공연에서 2014년 초연된 <천>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영산재의 형식을 도입하면서 지난 공연과는 많이 달라졌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갖고 있었던 갈등과 그리움을 해원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주역들만이 등장했던 장면, 특히 전쟁 장면에 이번에는 군무가 도입되면서 한층 더 강렬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출연진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특히 이번 공연에서 페르시아 왕자 역할을 맡은 박호빈은 현대무용가로서 그의 이국적인 외모와 춤으로 공연에 다채로움과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Q. 한국무용은 정형화되어 그것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한국무용의 창작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또 한국무용의 창작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A.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춤이 가지고 있는 진득한 호흡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빨래를 즈려밟는 듯 깊이있고 진득한 발디딤, 궁중무용이나 살풀이, 승무가 가지고 있는 깊은 호흡들, 승무가 갖고 있는 유장한 선…. 이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과거의 감성을 현대에 적합하게 이미지화하여 변형시키는 작업 역시 중요하다고 하겠다.
최근 창작춤이라고 하여 외국의 춤을 겉핥기 식으로 가져와 가볍게 안무하는 경우도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춤이 가진 호흡과 결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창무회에서는 김매자 선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언제나 본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기부터 다지는 시간을 가진다. 나 역시도 김매자 선생의 <춤본Ⅰ,Ⅱ>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나는 무대 위에서 한치의 억지스러움이 없기를 추구한다. 모든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야 관객 역시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밀하게 짜임새를 만들고, 미련스러울 정도로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Q. 이번 공연 이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A. 우선 올해는 이번 공연 이후 휴식을 가질 예정이다. 창무회에 들어온 1982년 이후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하지만 나는 춤추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어디에서라도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찾아주실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초연 당시 관객들로부터 “공연이 위로가 되었다”는 반응을 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천(千)’ 자를 좋아한다. 이는 ‘일천 천’ 자이지만 ‘하늘 천’ 자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광할한 하늘의 모습처럼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천>이 천 년 전 영혼들 뿐 아니라 관객 여러분들의 가슴에도 위로와 해원을 안겨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선미무용단 <천> 공연일시: 2016년 2월 2일(화) ~ 2월 3일(수) 오후 8시 인터파크티켓 1544-1555 ticket.interpark.com |
글_ 기자 심온(서울대 미학 석사과정)
사진_ 김선미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