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에게 창작 환경 기반을 제공하고 안무가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작 시스템을 공유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끝_레지던시: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가 3월 27일 금요일부터 3일간 국립현대무용단의 올해 첫 무대에 오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길 위의 여자> 등의 작품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던 안무가 윤푸름의 <17cm>와 <생소한 몸(Raw Material)>, <뉴 몬스터(New Monster)>와 같은 작품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온 안무가 임지애의 <어제 보자> 두 작품으로 구성된다. 차세대 여성 안무가의 새롭고 독특한 시도가 국립현대무용단과의 협력을 통해 무대 위에서 발할 시너지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Dance Post. Korea가 연습 현장을 찾아 두 안무가를 만났다.
Q. <17cm>와 <어제 보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윤푸름(이하 윤): <17cm>는 어떤 본질이나 대상이 있을 때 그 형상을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이다. 0cm부터 17cm까지는 불편할 정도로 가깝지만 대상에 숨어있는 진정한 본질을 알아차릴 수는 없는 거리인 것이다. 이번 작품은 그 지점에 시선을 두어 우리 모두의 다양성, 각자에게 숨어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새로운 시도이다.
임지애(이하 임): <어제 보자>는 언어와 몸의 관계를 여러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도들을 나열하는 작품이다.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언어와 그에 동시적으로 따라오는 몸짓, 제스쳐에 주목해 의심없이 사용해 왔던 몸과 언어의 관계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Q. 작품명이 독특한 만큼 그 속뜻이 궁금하다.
윤: <17cm>는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 불편한 감각적 거리이자 역설적으로 그보다 더 가까우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는 추상적 거리이며 나아가 관계에 있어 접촉이 필요하지 않은 SNS 시대에 오히려 필요해질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하다.
임: “어제 봤다.”도, “내일 보자.”도 아닌 <어제 보자>는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허약한 상태의 언어이다. 언어와 몸의 관계, 그 형식과 규칙을 깨고자 하는 작품 의도를 녹여낸 제목이다.
Q. <17cm>라는 구체적인 거리를 통해, <어제 보자>라는 무의미한 단어의 조합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윤: 우리 모두에게 숨어있는 본질에 대한 것이다. 시스템 혹은 구조의 일원으로서 만나는 사람이 과연 그 사람의 가장 내밀한 비밀, 그의 본질까지도 드러낼 수 있을까? 제도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성소수자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주장할 수 없듯, 우리 모두는 시스템 내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소외된 부분을 감추고 살아간다. 연일 기사 제목을 장식하는 자극적 멘트들은 우리의 현실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현실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장식이기도 하다. 획일적인 제도 아래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사고들이 근본적 치유 없이 감춰지기에 급급한 상황을 우리는 주시해 오지 않았는가. 이번 작품은 그처럼 감추어져 있는 이야기, 나아가 실은 모두가 알듯 우리 모두의 본질이 그 지점에 감추어져 있음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풀어내는 과정이다.
임: 의심 없이 사용해 왔던 언어와 몸의 관계, 그를 지배하는 형식과 규칙을 깨고 나 자신이 다시 그 형식과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전공한 한국무용은 발레와 달리 용어가 정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으며, 몸이 자연을 재현하듯 동작을 하므로 언어와 몸짓이 정확히 일치된 채 춤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은 ‘붙어있던 언어와 몸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언어는 의미의 전달 수단이기 이전에 몸을 그 출발점으로 하는 소리의 진동임에도 불구하고 몸 없이는 언어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주 망각되는 것 같다. 허약해진 채 붕 떠 있는 언어 자체에 집중하며 몸이 언어를, 또 언어가 몸을 어떻게 형상화(shaping)하며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서로를 방해하는지 그를 보여주고자 한다.
Q.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 요소가 있는지?
윤: 안무적으로는 <17cm>라는 거리를 유지하는 동작들을 통해 그 불편함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느껴지는 거리를 조직적으로 유지하다가 점차 흐트러지는 군무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으로도 평소 우리의 곁에서 숨어있는 소리들을 찾아내기 위해 작업 중에 있고, 공간적으로도 자유소극작 지반 아래 터널과 같은 숨어있는 공간을 활용할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곳은 무대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은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관음의 공간으로서 미묘한 상상을 계속적으로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위 ‘퇴폐’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드로 춤을 추는 무용가가 국공립 시스템 안에서는 불편하고 퇴폐적인 수 있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게는 옷 입은 모습이 그만큼이나 어색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본질을 마주할 수 있으며, 사실상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기사는 우리의 현실을 일면 반영하며, 모두의 내면에는 그 같은 욕망이 숨어있지 않은가.
임: 작업자에게는 구체적인 메소드가 존재하지만, 그를 어떤 구체적인 장치를 통해 전달해야 하는지, 관객들에게 이 시도가 얼마나 정확하게 읽힐 수 있을지는 아직도 나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언어와 몸이 동시에 서로를 돕는 유기적인 관계임을 드러내거나 반대로 둘을 떨어뜨려 언어는 남겨두고 액션이나 상황을 다른 것으로 대치해 접합하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무대의 경우 바닥을 활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네모난 회색 바닥 위에 다른 작은 바닥을 겹쳐 비틀어 놓는다거나 해서 기존의 형식과 규칙을 파괴하고자 하는 작품 주제에 대해 힌트를 준다. 드라마투르그와도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한 논의 중에 있다. 필름에서 언어를 가져와 사용하거나 본인 스스로의 이야기를 끌어내 언어를 농담처럼, 유희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데 그 텍스트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Q.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지만, 관객이 마주하고자 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그저 즐기며 보아 주셨으면 한다. 각자 생김새가 다르고 가진 것이 다르듯 생각하는 바도 다를 것이다. 실은 당신도 알고 있는 본질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지만, 그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 앞에 관객이 서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임: 프로그램에 적힌 작품의 설명을 한 번쯤 놓고, 각자가 발견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언어와 몸의 관계이지만, 텍스트에만 충실하다 보면 몸의 텍스쳐, 호흡, 음악과 같은 부분을 놓치기 쉽다. 새로운 것은 제안 그 자체보다도 수용자가 어디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_ 인턴기자 안수진(서울대 미학/경영학 4)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