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임새 있는 탄탄한 무용 공연을 보고 싶다면 <스텝 업>에 주목하자. 국립현대무용단은 안무 공모 및 레퍼토리 개발 프로젝트로 선정한 안무가 배효섭, 이은경, 정철인의 작품을 오는 9월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선정된 3명의 안무가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발탁된 안무가들이다. 2017년 12월 1차 서류 심사를 시작으로 2차 인터뷰 심사, 그리고 3차 쇼케이스 심사를 거쳐 배효섭, 이은경, 정철인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더욱이 안무가들의 기존 창작물을 국립현대무용단의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으로 보완, 발전시켜 초연의 아쉬움을 뒤덮고도 남는다.
< Part 1. 안무 배효섭, ‘백지에 가닿기까지’ >
배효섭은 자기 자신과 무대를 해체하는 색다른 작업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안무가는 동물의 사체가 부패하고 분해되어 소멸되기까지의 과정을 영상으로 보고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사체는 끊임없는 생태계의 순환 구조를 통해 더 넓은 동물계로 나아간다. 이처럼 안무가 본인의 작업도 분해되고 해체되어 보다 넓은 세계로 확대되기를 희망한다.
안무가는 본인 스스로를 계속적으로 탐구하고, 그가 매일 자리하는 그의 무대를 해체해본다. 늘상 움직이는 익숙한 움직임들의 시발점은 과연 어디인지, 무대라는 보편적인 구조 속에서 항상 정형성을 고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안무가는 모든 것의 기원은 백지 상태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결국 그의 작품은 ‘비어있음(Blank)’이 콘셉트이지만 공허함과 허무함이 아닌 ‘잘 해체된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더 넓은 세계에 가닿고자 하는 것이다.
< Part 2. 안무 이은경, ‘무용학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 >
이은경의 이번 작품 <무용학시리즈 vol.2: 말, 같지 않은 말>은 2016년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여전히 안무다’ 초연작 <무용학시리즈 vol.1: 분리와 분류>와 맥을 잇는다. 이은경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벨기에 파츠 P.A.R.T.S. 유학 시절 받은 서술형 평가서(Teacher’s Report)의 텍스트를 랩으로 제작해 작품 음악으로 쓰면서 색다른 재미와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는 같은 공연을 보고도 언어로 이야기하는 순간, 본 것의 차이가 말하는 것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무용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쳤을 사실적 언어의 기억을 떠올린다. 안무가 이은경은 8살 때 무용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약 2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몸에 피드백, 칭찬, 꾸짖음 등 방대한 양의 말들을 쌓아왔다. 그 중 안무가의 지난 세월의 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리포트는 종이 형태로 전해졌고 보관되어 왔다는 것이 그녀가 춤을 추면서 들어왔던 다른 무수한 말들 사이에서의 특이점이다. 이 점이 이번 작품의 주요 소재를 ‘평가서(report)’로 정하게 된 이유다. 과거의 언어와 현재의 몸의 언어는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집중 탐구해 보여준다.
< Part 3. 안무 정철인, ‘0g’>
정철인의 <0g>은 초연 당시에 안무의 토대로 사용한 ‘낙하운동’의 물리적 특성을 보다 깊게 연구하여 작품에 녹여냈다. 힘의 원리를 기반으로 중력의 힘을 이겨내고자 분투하고, 순응하고, 무중력에 다가가는 모습을 그린다.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일상적인 움직임이지만, 예측 불가한 감각적인 무대로 관객을 자극한다. 속도, 리듬, 무게감을 자유자재로 다스리며 균형-불균형의 반복은 신체 부위부터 오브제, 움직임 전반에 밀도 있게 녹아져있다. 뿐만 아니라 초연에서는 듀엣으로 진행되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네 명의 무용수로 확대 구성하여 극대화된 움직임을 보여준다.
최종 선발한 세 개의 작품들은 향후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레퍼토리로 발전시켜 국내외로 유통할 예정이다. 훌륭한 안무가들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의 픽업스테이지 <스텝 업>은 창의적인 안무가들과 쟁쟁한 무용수들이 모여 3인 3색의 꽉 찬 무대들을 보여 준다.
글_ 기자 윤혜준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