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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남자의 몸짓이 만드는 춤의 변주곡, 류장현의 <피아노>



 지난 20일 저녁,이미 <갓 잡아올린 춤>을 통해 잘 알려진 안무가 류장현을 만나 25일부터 27일까지 3일 동안 강남 LIG아트홀 무대에 오를 신작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파격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든베르크 연주곡>의 선율과 다섯 무용수의 몸짓만이 무대를 가득 채울 <피아노>가 무용, 그리고 음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관객들에게도 깊은 여운으로 남게 될 것이다.



Q. 무용 공연 제목이 <피아노>라는 점에 먼저 눈길이 간다. 제목에 의미가 있다면?

A. 피아노라는 악기는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악기이다. 솔로로도 연주할 수 있으면서, 오케스트라 전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악기이기도 하다. 피아노처럼 소박하면서도 꽉 차 있는 것, 나의 공연도 그런 공연이 되었으면 한다.


Q. 글렌 굴드는 바흐 연주자 중에서도 파격적인 연주자로 유명하다. 굳이 그가 연주한 <골든베르크 변주곡>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A. 우연히 보게 된 그의 연주 영상이 영감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그의 순수한 영혼을 직접 만나 보았다면 어떘을까 싶더라. 곡에서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의 소박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장인의 손에서 굽고 또 구워지는 과정을 거쳐서야 완성되는 백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필요한 모든 것이 제거된 소박함이랄까. 아, 이 곡에 춤을 한 번 춰 봐야겠다 싶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그를 뛰어넘고 싶다는, 도전적인 다짐도 했다.


Q. 글렌 굴드가 괴짜 천재 피아니스트라면, 바흐의 곡은 치밀한 계산을 기반으로 한 건축물과도 같다. 둘의 만남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A. 그들의 관계는 괴짜와 괴짜 간의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강한 기독교 집안 출신의 글렌 굴드, 음악을 신의 가호라고 생각했던 바흐. 언뜻 엄청난 말썽꾸러기와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아이처럼 정반대의 축에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역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와 바흐의 관계가 나와 춤의 관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것.


Q. 그런데 사실, 관객들은 이미 주어진 내러티브가 있는 공연에 익숙하다. <골든베르크 변주곡>만이 남은 무대는 많은 관객들에게 낯선 공간이 될 것 같다.

A. 물론 나도 친절한 공연을 해 보았지만, 나는 공연이 상업화되고 자본화될수록 친절해진다고 생각한다. 바흐의 곡은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언어다. 하지만 내러티브가 없이 음악과 춤만으로 소통이 가능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하지만 다원화되고 스마트화되는 시대에 장르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지금, 음악, 그 중에서도 피아노 음악과 몸뚱이 둘이 부딪혔을 때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것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Q. 그 '본질'이란?

A. 불친절할 수 있는 공연 속에서 두 대가의 선율에 맞추어 만들어진, 친절할 수도 있고 어쩌면 불친절할 수도 있는 몸짓들. 그를 만드는 땀과 에너지가 내가 생각하는 공연의 본질이다.


Q. 그렇다면, 괴짜 글렌 굴드의 삶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예술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A. 글렌 굴드는 10만 달러를 주며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를 부탁해도 거절하고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마다한 채 고독을 택했던 괴짜다. 그의 전기를 재미있는 형식으로 써 내려 간 『피아노 솔로』라는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곰이자, 조련사이다.” 자신이 때때로 곰이면서도 때때로는 조련사라는 소리다. 이 책은 앞서 말한 그의 선택, 그러니까 고독의 선택 역시 또 하나의 푸가로서 해석한다. 그의 삶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예술가의 모습은 결국, ‘어린 아이’다. 사실 이 사회는 어린 아이로 남아있는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그들에게 문제의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같은 어린 아이의 상태로 있는 이가 바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Q. 이번 공연은 공연과 예술가, 나아가 무용이라는 매체 자체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일 수 있겠다.

A. 그렇다. 다들 제 각자 분야 속에서 나름의 타당성을 찾는다. 나도 그렇다. 나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몸짓과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사실 몸에서 일어나지 않는가. 예를 들면 섹스(sex)도 그렇다. 결국 몸짓이다. 연기로 포장하는 것도, 노랫말을 붙이는 것도 아니다. 가장 순수하면서도 추악한 행위가 결국 몸짓에 배어있는 것이다. 바디랭귀지 역시 비언어적인 몸짓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움직임, 이 자체가 가장 본질적인 매체라고 생각하고 무용이 그에 가장 가까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남자 다섯이 뛰어 노는 이번 공연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가장 유희적이고 제의적인 공연이 될지도 모르겠다.


Q. ‘몸짓’이라는 것이 표현하는 자의 만족을 넘어 소통에까지 닿을 수 있다면, 그 기반은 무엇일까?

A. 무용가의 진심, 그리고 간절함. 말과 글은 위장할 수 있더라도 몸짓과 표정, 눈빛을 담은 춤은 위장할 수 없다. 어니스트의 가사에 “달콤함, 부드러움은 모두 알 수 있지만 진심만큼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진심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춤이라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이 느꼈으면 하는 바는?

A. 공연 인터뷰를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나는 항상 똑같이 대답하는데, 없다. 느끼는 것은 누구도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객 자신이다. 느끼는 것마저 안무가의 언어로 가두고 싶지 않다. 심장이 마구 뛰거나, “아, 나도 춤추고 싶다.”라는 것을, 살아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이 그처럼 가장 인간적인 느낌과 감정들에, 그리고 공연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Q.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A. 물리적인 공연 시간이다. 서사도 없는 공연을 담아내는 55분의 시간. 또 공연 준비 초기에는 음악 자체도 어렵게 느껴졌다. 다 똑같이 들리더라. 보이게 만들어 놓고서야 단순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바흐의 대가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은 나에게도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Q.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A. 우선 이번 공연을 마치고 나면 보다 외적인 변화가 필요하게 될 것 같다. 아직 계획해 둔 무용 공연은 없다.


Q. 그렇다면 ‘하고 싶은’ 작품의 모습은?

A. 전에 공옥진 선생님의 일대기를 소재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한 인물에 대해 파고들다 보니 그 인물,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시대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 이렇게 재미있는 한 인물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 아닌 연구처럼 연작을 만들어 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_ 댄스포스트 코리아 인턴기자 안수진(서울대 미학/경영학 3)

사진 _ 한국춤문화자료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