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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청춘과 작별하는 세 가지 방법

(15일 공연 리뷰입니다) 

피나 바우쉬는 “움직임은 동시대적 삶에서 태어난다”라고 말했다. 젊은 안무자의 작업에는 동시대의 삶이 녹아있다. 안무자 김민의 〈Barcode〉는 독특하다. 각 무용수들은 상자를 소품으로 삼아 춤을 춘다. 상자의 각 면에 적힌 알파벳은 서로 조합되면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열쇠말을 만들어낸다. 소비사회를 견인하는 생산물을 뜻하는 PRODUCT, 제품의 존재를 알려주는 BARCODE, 공허함을 뜻하는 EMPTY까지.

현대사회는 소비사회이다. 무엇을 소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존재인 소비자는 우리사회가 꿈꾸는 궁극의 인간상이다. 인간의 소비는 타인을 통해 이뤄진다. 타인을 동경하고, 모방하며, 압도하고 싶은 마음에 상품을 개발한다. 차별화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멍들게 한다. 김민의 작품은 공통의 바코드를 가진 상품 같은 인간, 사회적 조건에 순응함으로써 대체 가능한 상품처럼 빚어진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안무자 오정윤의 <할喝>은 꽤 흥미로운 작품이다. 제목인 할은 불교용어로 선승들 사이에서 수행자를 책려하기 위해 발하는 소리 또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말과 글로 통어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의 작용을 표현할 때, 이 할을 발한다. 감청색 고깔과 의상을 입은 4명의 무용수는 동일한 율동을 반복하고, 그 옆에서는 색동의 고깔을 쓴 여인이 한 칸씩 길을 내어나고, 그 위에 씨앗을 뿌린다. 여기서 씨앗은 발아해서 꽃을 피우는 존재의 상징일 것이다.

우리가 춤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나 춤이란 집단 행위에 동참하는 이들이 그 과정에서 일련의 ‘뭉클함’을 얻는다. 그 순간을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작품 속에서 무용수 네 명의 동작이 균일하게 보이도록 애를 쓴다. 인간이 학습과정을 통해 전인적 삶의 방식을 취득하게 되듯, 연속되는 과정 속에서 무용수들은 자신의 몸을 태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할’이라는 인생의 채찍질을 자신에게 감행하는 것이다.

안무자 홍은채의 <나붸>는 나비가 알과 유충,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안무에 담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비는 몸이 가벼워서 부서지기 쉽고 날갯짓이 우아하며 가볍게 바람처럼 난다고 하여 영혼의 가벼움을 상징해왔고, 자유로이 비상하는 나비를 통해 고대인들은 초월적인 속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비가 비상하는 모습을 보고 육체에서 벗어나는 영혼의 자유로움으로 이해하였다.

안무는 동시대를 사는 창작자의 내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세대별로 세상을 응시하는 관점, 소비태도, 자기계발의 욕망도 다르다. 젊은 창작자들은 삶의 면면에서 ‘기미’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기미(幾微)란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일과 상황이 되어 가는 형편’이란 뜻이다. 젊은 무용수들은 움직임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시대의 신호에 호응한다. 이전 세대와의 헤어짐을 짓고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몸을 통해 표현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