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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36회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 변화하는 세상에 우뚝 서는 법

  

무용은 시대의 감정과 리듬을 몸으로 기록하는 체계이다. 지난시간, 코로나는 우리사회를 변화시켰다. 코로나는 우리각자가 오롯이 감내해야 했던 내적 전쟁이기도 했다. 무용예술은 코로나 이후로 변화하는 가치관들의 전쟁 속에서, 우리가 지키고, 성찰할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1987년부터 시작된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은 우리를 휘몰아친 변화의 양상들을 춤으로 풀어낸 한편의 드라마였다. 한국의 중견/중진 무용가들이 우리사회에 대해 몸으로 풀어낸 진단의 양상을 하나씩 풀어보자.

이동하의 〈게르니카(Guernica)〉는 20세기 초,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허물어진 게르니카 지역의 참상을 보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Guernica Again〉은 현대의 전쟁논리가 가진 모순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엄청난 물적 자본을 동원해야 하는 오늘날의 현대전은 전쟁이란 이벤트를 통해 한쪽은 완벽하게 파괴된 피해자가, 또 다른 편에서 전쟁을 기획하고 비극을 연출하는 이들을 위한 무대가 되어버렸다. 돈이 눈처럼 흩뿌려진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를 통해 고통의 밀도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장혜림의 <에카>는 구약성서 예레미아 애가의 첫 소절로 ‘어찌하여’와 같은 비통함과 놀람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감탄사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에카는 우리시대에 바치는 애도일기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타인의 죽음, 빼앗긴 삶의 터전은 생생한 구경거리로 변질되어 우리 눈에 비춰진다. 공감을 잃어버린 삶은 무대에서 뒤집힌 의자로 표현되며, 피아노는 그 삶의 참상을 들려주는 수단이 된다. 피아노 위에서 춤을 추던 무용수와 또 다른 무용수와의 앙상블 댄스는 폐허가 된 삶 위에서 여전히 희망을 꿈꾸는 자의 의지를 보여준다.

조원석의 <경계>는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선에 서 있는 인간을 표현한다. 타이프라이터로 글을 쓰는 작가인 주인공은 15개의 조명이 만들어낸, 일상이란 무대를 살아간다. 시간대가 바뀔 때마다 다른 무대로 넘어가며, 이 과정에서 무의식의 나를 만난다. 현실의 나는 눈을 가리고, 무의식의 나는 입을 가린 채, 서로는 소통하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현실과 무의식의 나는 점차 하나가 되어가며 서로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두 개의 자아들의 때로는 충돌하고 욕망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정혜진의 〈Memento-접어둔 날개〉는 치매나 알츠하이머로 고통 받는 현대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요즘, 이 주제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용을 하던 여자가 기억을 잃어가는 고통스런 과정과 이의 극복과정을 보여준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며 사람은 개념을 뜻하는 명사를 잃어버리고 이후엔 몸의 움직임을 담은 동사의 뜻을 잃어버리게 된단다. 자신에게 춤을 배운 이들이 그녀에게 새롭게 자극을 주고, 이 과정에서 춤을 통해 몸에 각인된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려낸다. 무용수의 기억 속에 접어둔 날개를 펴는, 그 순간을 무대에서 확인해보라.

장은정의 <친애하는 그대에게>는 미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에린 핸슨의 시 〈Not〉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에린 핸슨은 고전적 인상주의 화풍에 표현주의 미술의 장점을 결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작가이다. 〈Not〉은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말을 건내는 한 편의 시다. 오랜 세월 그저 춤추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안무가 장은정은 공연을 통해 자신이 사랑한 세계에 대한 깊은 존중감을 드러낸다. 힙합과 현대무용이 결합된 무대는 역동적이면서도, 자신이 완성한 스타일에 가닿으려는 예술가의 정서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