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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조정하는 자는 누구인가?: 고물X고블린파티 <꼭두각시>


 

예(禮)에 관한 기록과 해설을 정리한 고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는 음악이론을 담은 악기편이 있다. 이는 음악이 곧 덕이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전략이라고 보았던 공자의 사상을 담는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인 ‘인仁’을 이념으로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으려면 음악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음악이 사람의 정서를 장악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인 셈이다. 결국 한 나라의 음악에는 ‘지금 이 순간’의 정치적 상황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뒤엉키며 발화하는 신음소리가 섞이기 마련이다.

이번 음악동인 고물과 무용집단 고블린파티가 함께 선보인 <꼭두각시>는 시대의 정서를 장악하는 도구인 ‘음악’과 이를 교묘히 지배하기 위해 촉수를 뻗는 권력, 그 힘에 맞서는 몸의 저항을 통해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싸움을 선연하게 드러낸다. 꼭두각시'란 이름은 원래 한국의 전통 인형극인 ‘박첨지 놀이’에서 박첨지의 아내 역으로 '나무로 깎아 만들어 기괴한 탈을 씌워 노는 젊은 색시 인형'을 가리키던 것이었으나 의미가 확장되면서 사람이 움직여 노는 물체를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된다.

서구에서 꼭두각시의 뜻으로 사용되는 퍼펫(Puppet)은 타인의 의지에 흔들리는 사람 혹은 타국의 지배하에 움직이는 정권이란 뜻으로도 사용된다. <꼭두각시>는 바로 이 동서양의 중의적 의미를 무대로 끌어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점차 지배하며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어떤 세계를 표현한다. 그 세계를 정확하게 지칭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우리의 삶의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위기감들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면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일수도 있고, 특정한 이념을 부각시키며 지배 권력을 강화하는 언론매체일 수도 있다.

극이 시작되면 가야금과 소금, 대금과 해금, 장구 연주자들은 세로형태의 도열을 이루며 연주에 들어간다. 연주자들이 있는 무대의 다른 절반은 음악이 영향력이 지배하는 질서정연한 다른 세계이다. 이때 무용수들이 무대에 들어오며 그 질서정연한 춤을 춘다. 이음새 없이 조화된 음악은 곧 ‘안정된 질서와 정치, 그 속에서의 삶’을 은유할 것이다. 그런데 점차 이 세계에 점차 균열이 간다. 시나브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던 무용가들이 무대 위에서 음악가들의 연주에 개입한다. 아니 서서히 스며들며 중첩된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용수들의 접근에 저항하다가 어느새 그들과 마치 원래부터 한 몸인 듯 하나가 되면서 극의 시작을 알렸던 ‘조율된’ 음악의 세계는 무너진다. 점차 음악은 거칠고, 굉음을 내기도 한다. 손과 입, 폐가 하나가 되어 연주하던 순수음악이 무너지고 심지어 주크박스에서 음악이 나온다. 이미 이 세계가 강력한 타자에 의해 ‘프로그램’ 되어 가고 있다는 상징이 아닐까? <악기>편에서 이야기한 음악적 질서를 통해 유지되던 세계가 붕괴되고, 세상은 광폭해진다. 무용가들의 춤도 거칠고 폭력적인 제스처와 동작으로 바뀐다.

변화된 세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음악은 모든 것을 한 손에 거머쥐지 못한다. 음악연주의 우두머리격인 장구는 더 이상 조종되기를 거부하며, 무용수들과 쟁투를 벌이기도 하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을 바꿔나간다. 무대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특정한 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 억압과 지배의 자리를 공수교대 할 뿐이다. 힘은 결코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번 <꼭두각시>는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작용은 반작용에 부딪치기 마련이라는 작은 지혜, 그 만화경 같은 세계를 보여준다. 아주 깔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