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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 예악통치의 맥을 지킨 고종황제의 마지막 자존심

   

임인진연 공연은 1902년 고종황제의 51세 망륙생신과 황제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5차례에 걸쳐 거행된 ‘임인진연의’ 중 궁중 내부인들만을 위한 내진연 중 일부 궁중연회만 재현한 것이다. 고종이 어려운 국제정세 중에 성대한 행사를 고심 끝에 치른 이유가 대외적으로는 독립국이자 문명국임을 전 세계에 선포하고 대내적으로는 통치의 수단이기도 했던 궁중무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조선시대 마지막왕의 자존심 때문이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의궤에 의하면 ‘임인진연의’에 21종의 춤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봉래의>, <헌선도>, <몽금척>, <향령무>, <선유락> 등 5종의 춤만 재현되었다.

임인진연은 창작보다는 재현에 목표를 두고 ‘임인진연의궤’와 ‘임인진연도병(병풍)’을 기반으로 재창작되었는데 황제의 자리를 비워두어 관객들이 황제의 시선으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몽환적인 천장포장, 화려한 황색취장과 의상, 궁중화 등 왕실의 위엄과 위계질서를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했으며, 궁중음악, 궁중무용, 다례의식, 사창 등 고품격 궁중예법으로 고품격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을 재인식하게 했다. 특히 임인진연 승인을 위해 황태자가 고종황제에게 다섯 차례 진언하고 거절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고종황제의 고뇌를 표현하고, 조선말기 태극기를 계양해서 혼란스러운 시대상황을 관객에게 행간으로 알려주려고 한 국립국악원의 노력이 공연의 깊이와 의미를 더했다.

진연의는 『악학궤범』의 ‘시용향악정재도의(時用鄕樂呈才圖儀)’를 통해 정재의 음악과 진행순서 등을 기록할 만큼 엄격한 예법과 절차를 중요시한다. <봉래의(鳳來儀)>는 용비어천가의 가사에 맞추어 음악과 무용이 창작된 역사가 오랜 궁중 정재(춤 연향)이다. 공연에서는 많이 축약되었지만 왕에게 바치는 왕의 공덕을 찬송하는 공덕요를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부르는 ‘사창’, 궁중음악 ‘낙양춘’에 맞춰 <봉래의>라는 정재(춤 연향)을 임금께 올리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대형족자를 들고 등장하는 <몽금척(夢金尺)>은 조선 태조 때 정도전이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태조가 꿈에 신령으로부터 금척(金尺)을 받았다”는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 진 정재(춤 연향)이다. 궁중음악은 ‘해령’을 연주하였고 노래하는 이가 ‘봉정부지영이-몽금척수명지상야-유황감지공명혜’ 등 3차례 사창을 부르면 전원이 세 번 발을 구르고, “만세 만세 만만세” 3창을 외치는 것이 특이했다.

<향령무>는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로 6인의 무용수가 두 손에 방울을 들고 장단에 따라 방울을 흔들고 뿌리면서 추는 춤이다. <향령무>를 출 때는 노래하는 이가 ‘옥전요궁주관현-열신선-봉삼인대타향연-무편편-유원종금-군왕수-영제천-춘풍담탕백화전-만년년’의 긴 사창을 부르고 궁중음악은 ‘세령산’을 연주했다. 엄숙한 궁중연향에 방울소리가 경쾌하게 들려 무희들이 귀엽게 느껴진다.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온다는 <선유락>은 사신이 뱃길로 떠날 때 바닷가에서 기녀들이 전송하는 모습을 놀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교방에서 시작되어 궁중연향으로 발전할 만큼 재미있다. 특이하게 무관이 등장해서 호령집사가 되는 군무(軍舞)형식이고, 반주음악은 특이하게 취타대가 연주한다. 궁중음악은 ‘수제천’을 연주하나 창사는 ‘어부사시사’를 부르니 부조화 속에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