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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의 시간 “너와 나의 기억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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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은 2004년 창단한 로댄스프로젝트(Roh Dance Project)의 ‘기억 3부작’ 중 <메모리>, <프로젝트 망각>에 이은 기억시리즈의 최종판이다. 노정식 안무가는 사람들이 같은 시각·같은 현장에서 동시에 경험을 했으면서도 각자 다른 기억과 다른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와 다양한 ‘왜곡’ 현상에 대해 6명의 무용수들이 주인공이 되어 6편의 옴니버스 공연으로 보여준다. “너와 나의 기억은 같은 걸까? 우리의 기억은 과연 온전한가?”

6명의 무용수가 같은 모양의 작은 공을 주워든다. 누구는 어린 시절 친구와 공놀이하던 기억을, 누구는 아무도 없이 혼자 벽을 치며 놀던 외로운 기억을, 누구는 사랑하는 친구와 오해로 헤어진 아픔을, 누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상대방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안무가 노정식은 공연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의 기억이 선택되고, 만들어지고, ‘왜곡’되어 가는지 6편의 공연을 통해 탐색하는 시간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공은 이미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의미’가 되었다. 공놀이가 누구에게는 우정이 되었고, 누구에게는 천둥처럼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청각만 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시각도 왜곡되어 상대방과 소통이 어려워지게 된다. 물질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의미는 변해간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타인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각자 제각각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을 자기동일시로 인한 ‘왜곡’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닐까? 질문한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도 사실은 나의 일방적인 신경증적 ‘왜곡’이 아니었을까?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남자는 격렬했고, 주도적이고, 조정하고 구속하고 싶어 했고 여자는 소극적이고 순종하고, 통제당하는 것을 사랑으로 알았다. 아름다웠던 그들의 춤은 끝이 났고 남자는 떠났다. 홀로 남은 여자는 슬퍼한다. 여자는 이별 후 홀로 남겨진 것이 슬픈 것일까? 사랑이라고 믿었던 ‘왜곡’된 관계가 깨진 후 깨닫게 된 공허함이 슬픈 것일까?

몸짓이 비슷한 남자무용수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춤을 춘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거의 복사수준으로 동작이 같다. 그러나 아무리 똑같은 춤을 추어도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똑같을 수가 없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춤을 출 때에 왼쪽 무용수가 오른 손을 쓸 때 오른쪽 무용수는 왼쪽 손을 사용한다. 안무가는 본인들에게는 ‘왜곡’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보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왜곡’이 일어나고 해석이 달라지는 또 다른 ‘왜곡’의 이유를 보여준다.

‘왜곡’은 디지털·글로벌화로 소통이 더 쉬워졌다는 현대사회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과잉된 언어와 정보화는 오히려 사람 간의 진정한 소통을 더 어렵게 하고 있으며 오히려 획일화 정형화되게 하기도 한다. 노정식 안무가는 <왜곡> 공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가 본 창으로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습을 말하기 전에, 타인의 창에 비친 세상과 시선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하며 그것이 반드시 언어일 필요는 없는데 그 어떤 경우. 무용은 다양한 의견들을 상호수렴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혀 줄 수 있는 치유의 소통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