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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 순간을 만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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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 오페라 댄스 컴퍼니의 내한공연을 봤다. 스웨덴에서 온 이 무용단은 ‘춤의 미래’를 언급할 때, 모범사례로 등장할 만큼 고전에서 현대까지, 춤의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춤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해왔다. 안무가 다미엔 잘레와 함께 만든 〈Kites(연)〉과 샤론 에얄의 독창적 안무가 돋보인 〈SAABA〉, 두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첫 번째 작품 〈Kites(연)〉은 말 그대로 바람을 이용해 하늘에 띄우는 놀이기구 연이다. 연(鳶)자에는 하늘을 나는 맹금류 솔개라는 뜻도 담겨 있고 자유와 독립, 통찰력이란 뜻도 담겨있다.

동서양에서 연은 ‘날아오르는 순간의 기쁨과 추락의 슬픔, 자유로움의 만끽과 통찰’이라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담는다. 연은 인간의 손에 쥔 얼레에 묶여있다. 실을 쥔 사람과 바람은 서로 힘을 겨루며, 그 과정에서 연은 균형을 찾아간다.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물, 사건이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은 인연(因緣)이라 한다. 여기에서 사용된 연(緣)자는 연줄을 뜻한다. 안무가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과 그 속에서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희망을 소환해내고 언제든 비상하기 위해 토해내는 몸짓을 연(Kites)의 역동성과 연결한다.

무대는 휘몰아치는 강풍에 흔들리는 뱃머리를 떠올리게 한다.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뱃머리로 달려갔다가 정점을 찍고 아래로 내려온다. 그들의 움직임은 일견에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역풍을 맞으면서도 서로의 에너지를 아껴가며 목적지를 향해 V자 편대비행을 하는 철새들의 동선을 연상시킨다. 안무가 다미안 잘레는 조각가 앤터니 곰리나 패션 디자이너인 후세인 샬라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무용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무용수들의 역동적 몸짓에서 매 순간의 환희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희망을 볼 수 있기를.

패션과 춤은 신체를 매개로 삼아 삶의 의미를 빚어낸다. 안무가 샤론 에얄의 작품 〈SAABA〉 속 무용의상은 패션 브랜드, 디올(Dior)의 수석 디자이너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작품이다. 무용수의 바디슈트는 정교한 레이스로 만들었다. 레이스는 중세 초, 수도원의 수녀들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을 투과하는 직물을 만들어 인간에게 입힘으로써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레이스를 입은 무용수들이 움직일 때마다, 무용수 각자의 내면의 빛이 밖으로 쏟아지는 듯 했다. 눈이 부셨다.

강렬한 조명아래, 강하게 바닥을 내려치는 비트가 관객의 귓가에 환각상태를 만들어낼 때쯤, 무용수들은 바디슈트를 입고 발가락을 수평으로 마룻바닥에 붙이고 서는 데미포인(Demi-Point) 동작으로 걸어 나온다. 무용수들의 몸은 세포분열을 하는 생물처럼, 엉키고 엮여 있다가 하나씩 풀려나간다. 무용수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거리를 두고, 특정한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 반복적 패턴은 무용수들을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일괄 조립되는 제품처럼 보이게 만든다. 무용수들의 몸은 마치 자연스럽다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체를 연상시킨다.

무용수들의 몸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거나 지향성을 상실한 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을 받쳐주고, 지탱하며, 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서로에게 연결된 무용수들이다. 인간의 몸짓은 하오의 햇살처럼 관객의 깨지고 상한 마음속을 파고들며 쏟아지는 빛이 된다. 무용은 우리에게 매 순간 황홀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매체가 몸이란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우리는 몸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고, 경이의 순간을 맛볼 수 있다. 이번 공연은 바로 그 점을 재확인시켜주는 무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