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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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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의 <몸쓰다>를 봤다. 패션사가인 내게 이 공연은 남달랐다. 무용과 패션은 공통분모를 가졌다. 일견에 너무나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몸이다. 옷은 인간의 몸을 상수로 한다. 입혀지지 않은 옷은 천 조각일 뿐이다. 무용은 몸으로 서사를 발화한다. 몸은 패션과 무용 두 세계가 각자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극한으로 사용하고 써야 하는’ 체계이자 질료이다. 안애순의 안무로 선보인 <몸쓰다>는 작가가 지금껏 창작의 근원이 되어준 몸에 대한 겸허한 성찰이란 점에서 돋보이는 무대였다.

우리는 머리를 쓰고 몸을 쓰며, 목소리를 쓴다. 심지어 애를 쓴다. 몸을 쓴다는 건 기록하는 행위다. 우리는 몸을 통해 일상의 사건과 감정을 기록하고 내면에 각인시킨다. 이때 몸과 관절, 근육은 자아를 빚는 힘이 된다. 안무자가 몸의 움직임을 글쓰기 행위와 연결시킨 점이 흥미롭다. 무용을 구성하는 작은 동작을 프레이즈(Phrase)라고 부른다. 의미 그대로 말과 어구이다. 일상의 차원에서 인간의 몸은 제스처와 포즈, 표정을 통해 어구를 만들어낸다. 놀랍게도 이 세 가지 요소는 ‘자아의 탄생’을 알린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품이다.

글을 쓴다는 뜻의 프랑스어 에크리튀르(Ecriture)는 물리적 표면 위에 특정 매체를 이용해 흔적과 기록을 남기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희망을, 긍정의 몸짓을, 정신의 가능성을 그러모아, 그 위에서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우리의 몸이 만들어내는 사회적인 제스처들을 하나하나 모아 정신의 어휘집을 만들어낸다. 제스처란 사회적으로 학습된 행동이다. 놀랍게도 이 제스처의 배면에는 인간의 무의식과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숨어있다.

작품 속 무용수들은 인간이 몸에 새긴 감정의 양상을 표현한다. 반복되며 굳어진 동작들, 내면에 숨긴 억눌린 상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든 제스처와 동작들은 삶의 불협화음을 드러낸다. 무용수들은 한편의 그림처럼 자신의 몸에 각인된 서사와 감정을 표현한다. 무대장치로서 사용된 프레임은 이런 효과를 증폭시킨다. 여기에 상하로 움직이며 무용수의 몸 가까이 닿는 조명은 인간의 몸에 의미를 새기는 거대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큐브처럼 좌우로 조정되는 이동무대는 감정의 조각들이 우리의 몸을 통해 어떻게 재배치되는 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형태를 발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돈에서부터 어떤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내적인 욕구에서, 자기 주위의 우주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무대 위 무용수들은 각각의 동작에 나름의 질감을 부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심리적 방어기제로 보호되는 몸, 막 쓰는 몸, 타성의 각질이 생긴 건조한 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험 속에서 편집된 몸의 순간을 표현해 내기 위해 애쓴다. 각각의 제스처들은 촘촘한 밀도를 가진 문장으로 피어난다. 10명의 무용수가 발화하는 문장의 결론은 하나다.

‘내 친애하는 몸을 더 많이 사랑하기’가 결론이 아닐까? 안무자의 메시지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음악과 함께 선연해진다.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모두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마주 봐요. 처음 태어난 이 별에서 사는 우리 손잡아요.” 몸을 가진 우리들은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존재들이다. 몸과 마음의 각방살이를 더욱 깊게 하는 세월 앞에서도, 나의 자아를 담은 그릇 같은 이 몸이 ‘결국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임을 말해주는 작품. 그래서일까? 안무가 안애순의 메시지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