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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춤이 되고 움직임은 리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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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발레’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이 작품은 발레가 아니다. <발레메카닉>은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개의 곡의 연주 퍼포먼스와 이에 맞춘 움직임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공연의 제목이자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조지 앤타일의 곡명이다. 클래식과 현대음악 연주 단체인 TIMF앙상블과 현대춤 단체인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콜라보 작업으로, 공연자들은 춤, 움직임, 악기, 리듬, 소리 등 모든 감각으로써 관객과 만났다. 연주가 춤이 되고 움직임이 리듬이 되며, 소리가 춤이 되는 흥미로운 무대였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탱고(Tango)>(1940)_ 피아노 한 대와 바이올린 한 대. 이를 둘러 싼 사각 조명 귀퉁이에 네 명의 무용수가 있다. 연주자들은 실험실 연구자 혹은 우주비행사와 같은 옷차림이다. 무용수들은 운동선수처럼 흰 티셔츠에 흰 반바지의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발랄하게 움직인다. 누워있던 무용수들은 바이올린 탱고 선율에 맞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각 조명 위를 이동하며 춤을 추는 몸들은 마치 음표들이 악보의 선과 칸을 이동하는 것 같다.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나무조각을 위한 음악(Music for Pieces of Wood)>(1973)_ 깜깜한 무대에 다섯 명의 연주자가 객석을 바라보고 일렬로 선다. 손에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나무조각이 들려있다. 가운데 연주자가 일정한 박자로 나무조각을 두드리며 연주가 시작된다. 한 명 씩 박자를 비껴가며 리듬을 더하고 변주가 진행되는데, 서로 다른 나무는 서로 다른 높이와 소리를 내지만 켜켜이 쌓인 리듬은 꽉 찬 음악이 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움직임이 된다. 보이지 않는 공명에 실린 반복적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에 펼쳐지는 춤이다.

테리 라일리(Terry Riley) <행성의 꿈 수집가의 일출(Sunrise of the Planetary Dream Collector)>(1980)_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마치 한 판의 놀이가 벌어질 것만 같다. 현악기와 관악기, 드럼이 설치된 사이로 무용수들이 악보대에 종이(악보)를 줄줄이 매달고 슬금슬금 들어온다. 인간인 듯 인간이 아닌 움직임으로. 연주에 맞춰 하나씩 떼어낸 종이들을 한 명의 무용수에게 구겨 넣기 시작한다. 장난감을 만들 듯, 솜인형을 만들 듯. 온몸이 빵빵하게 채워진 무용수는 드럼소리와 함께 폭발을 시작한다. 악보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모습이 꼭 억눌린 본능의 분출 같다. 자유로움의 폭발이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프론티스피스(Frontispice)>(1918)_ 이 공연의 주인공을 굳이 찾자면 음악이 아닐까? 그러나 그 음악은 수학적 논리로 정교하게 짜인 흐름이라기보다 우리를 휘어 감고 온 사방에 울려 퍼지는 공명이다. 공중에 떠다니는 음과 리듬이 보이고 거기서 움직임이 탄생한다. <프론티스피스>에는 네 대의 피아노와 네 명의 연주자만이 있다. 같은 곡을 연주하는 여덟 개의 손이 어디서 끊기고 어디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레 이어진다. 객석에 등을 돌리고 앉은 연주자들의 들썩이는 등허리, 물결치는 팔, 자동기계처럼 줄을 치는 건반 나무까지 모든 것이 춤이 된다. 짧지만 강렬한 감동이다.

조지 앤타일(George Antheil) <발레메카닉(Ballet Mécanique)>(1953)_ <발레메카닉>(1924)은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와 더들리 머피(Dudley Murphy)가 감독한 모더니즘 영화이다. 애초에 영화음악으로 작업하였으나 러닝타임의 차이로 별도 발표되었고, 이후 1953년 앤타일은 4대의 피아노와 실로폰, 2개의 전자벨, 2대의 프로펠러, 팀파니, 글로켄슈필, 퍼커션 등으로 구성한 짧은 버전을 만들었다. 나무판에 구멍을 뚫는 드릴 소리, 대형선풍기 소리, 화재경보기 울림으로 공연장이 가득 찬다. 무용수들은 그 사이를 뛰고 걷고 기어 다닌다. 음악인지 소리인지, 춤인지 놀이인지 경계를 알 수 없다. 규칙 없는 카오스가 유발하는 흥분과 카타르시스는 참으로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