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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 살아있는 이 순간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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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겨왔다. 생명(生命)은 생을 살아내라는 하늘의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라 인간은 사계절과 24절기의 변화에 만들어낸 인위적 리듬에 몸과 영혼을 동기화했다. 달빛의 이지러짐을 보며, 날짜를 측정하고 해의 움직임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읽었다. 땅의 인간들은 하늘과 땅, 산과 물, 나무에 깃들어있는 신의 영과 교섭하며, 지속적으로 화해를 모색했다. 모색(摸索)’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것을 뜻했다. 불가항력의 자연이 만드는 모든 이벤트에, 인간은 온몸으로 느끼며 더듬으며 실존의 방법을 찾았다.

그룹 타고의 <더 드럼 샤먼>은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샤먼의 힘을 보여준다. 타고의 공연은 처음이었다. 1997년, 난타(NANTA)라는 공연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흥이 떠올랐다. 난타가 사물놀이를 재해석한 공연이었다면, 타고는 북을 토대로 타악기의 다양하고 밀도 있는 감성을 무대로 끄집어낸다. 종교라는 뜻의 단어 ‘Religion’에 ‘통합하다’라는 뜻이 담겨있듯, 하늘과 땅, 바다를 한 몸으로 묶는 우리 전통에선 굿이 발달했다. 그 굿의 시작에는 신을 초대하는 ‘인간의 울림’을 전달해줄 매개가 필요했다. 북은 그렇게 태어났다.

북의 울림은, 인간내면에 포집되어 있던 두려움과 환희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공연은 인간과 자연, 우주가 하나의 망(Web)으로 연결된 유기체적 세계임을 재현하는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타고의 공연자들은 각각의 샤먼이 되어 신을 부르고, 땅의 기운을 일깨우며, 삶의 터전을 되살린다. 저녁이 되어 찾아오는 도깨비들과 함께 놀이를 펼치기도 하며 바다에서 길을 잃은 영혼을 달래는 울북을 친다. 이어 하늘을 열어 비를 내려달라는 비나리 의식과 함께 인간의 삶을 갈마드는 웃음과 슬픔, 두 세계의 상생을 소망한다.

한국 춤의 대가 국수호의 연출로 해석된 무대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퍼포먼스의 정석을 따라간다. 서구의 프로시니엄 무대와 2단으로 높이 기단을 올린 무대는 북의 울림을 위에서 아래서 전달하고, 뒤를 이어 타고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창작악기 율고를 연주한다. 율고는 우리의 전통악기인 징처럼 둥그런 운라와 장구의 소리를 현대적인 악기에 입혀 결합시킨 악기이다. 각 악기들이 어우러짐은 인간과 자연이 가야할 길, 나아가 함께 빚어내야 할 소리와 삶의 질감을 잘 드러낸다. 관객들을 자신의 공연에 초대하는 공연자들의 추임새도 좋았다.

북은 피막을 몸통에 씌워서 때리거나 비벼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북을 만드는 이 막은 동물의 가죽을 이용해 만든다. 생명체의 죽음을 통해 남겨진 부산물로 지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4장에서는 북의 혼을 불러내는 혼고(魂鼓) 의식에서는 무희가 등장해 북 위에서 북과 혼연일체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춤의 사위들은 한국 전통춤의 어휘들이다. 북이 내는 떨림과 인간의 몸짓이 결합되는 연금술의 시간이 무대 위에서 펼쳐질 때, 비로소 소리와 몸짓의 출발점이 된 자연과 인간의 의미를 응시하게 된다.

이 공연은 2016년부터 세계의 유수한 연극제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세계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선봉장이라는 식의 레토릭은 피했으면 좋겠다. 세계인의 보편적 삶에 우리 특유의 ‘문화적 피막’을 입히는 일은 중요하다. 북의 울림은 신호와 소통의 도구로, 단합과 화합의 상징으로 사용되어왔다. 우리 전통의 악기와 춤이 그저 한국적 파롤(Parole)이 아닌 세계의 심금을 울리는 랑그(Langue)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적 서사와 무대가 된 굿과 제례를 넘어 ‘북소리의 울림’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을 모을 수 있음은 증명을 한 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