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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가르는 검(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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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은 사물이나 풍경에 내재된 생명력을 일깨운다. 풍경을 가만히 ‘저 만치의 거리’에서 들여다보고 귀 기울일수록 내 안의 존재가 깊어짐을 느낀다. 적어도 나에게 ‘춤을 읽는(Reading Dance)’ 일들은 그랬다. 직업평론가는 아니지만, 무용이란 장르를 알고 싶어, 항상 현장에서 펄떡거리는 무용수들의 몸을 눈에 담을 때마다 그 몸을 통해 나는 시선을 나의 내부로 옮길 수 있었다. 무용은 내 영혼의 창을 열어주는 계기였다. 춤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문득 가슴의 한쪽을 뚫고 나오는 기쁨, 미열, 서글픔 같은 것을 느낀다.

<피스트: 여덟 개의 순간>이란 작품은 꽤 흥미롭다. 펜싱이란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매혹의 순간을 현대무용으로 재현한다니. 피스트(Piste)란 펜싱 시합이 이뤄지는 무대이다. 폭이 좁아서 언제든 상대의 공격에 따라 밖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엉덩방아도 찧기 쉽다. 안무가 김모든은 삶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여덟 개의 순간을 펜싱의 어휘를 통해 재현하고 싶다고 했다. 상대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검객들의 몸은 무용수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센서와 움직임을 따라가는 트래킹 카메라에 연결되어 극장화면으로 다시 나타난다.

공연을 보며 패션의 런웨이 공간을 떠올렸다. 런웨이는 활주로란 뜻이다. 한 시즌을 풍미할 유행, 취향, 색과 선으로 구성된 옷들이 세상을 향해 이륙하는 곳이다. 문제는 그 옷들 중 제대로 착륙하는 옷은 별로 없다는 점. 런웨이 무대도 펜싱의 피스트와 같다. 이 길을 걷기 위한 디자이너와 모델의 노력은 치열하지만, 성공확률은 낮다. 모델들은 한 장의 직물이 어떻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옷으로 변화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물질이 환상으로 바뀌는 ‘순간의 틈’을 찾아서 몸으로 보여준다.

차가운 물질인 검을 놀이하듯 바루며 칼의 변형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 기억나는 건 무대를 통해 세상의 문법을 보여주는 건 어디나 참 비슷하다는 깊은 공감 때문이리라. 이 순간이 끝나면 무대 위의 검객은 혼자서 가상의 존재를 상정하고 칼끝을 겨눈다.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불어넣는다. 이후 세 번째 순간에는 길을 걷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칼끝이 빚어낸 삶의 길, 실루엣이다. 네 번째는 이제 본격적인 생을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물러설 곳 없는 피스트 위에서 푸른 칼날의 끝이 교차한다.

‘경쟁’의 순간이 끝나면 검객은 비로소 되돌아본다. 지금의 경쟁이 어떤 길로 나를 이끄는지, 내면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것이다. 무용의 어휘로 재해석된 칼끝은 우리자신을 성찰의 길로 이끈다. 성찰의 끝에서 삶의 ‘균형’을 회복하자고 말을 건넨다. 다음 순간은 펜싱 단체전의 양상을 무용의 군무형태로 풀어낸다. 군무를 통해 결국 삶이란 함께 하는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지속되는 ‘경쟁’의 장임을 재확인시켜준다. 마지막 순간은 서로를 향해 교차와 연결을 반복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흔적’들을 보여주면서 작품은 마무리 된다.

<피스트: 여덟 개의 순간>은 ‘틈’ ‘여백’ ‘길’ ‘경쟁’ ‘거울’ ‘균형’ ‘도전’ ‘흔적’이란 열쇠 말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삶의 순간을 풀어낸다. 한 편의 무용이 암살범의 푸른 칼날처럼, 한 순간에 관람객들의 심장을 벤다. 안무가가 스포츠 중 펜싱이란 스포츠에 끌렸던 이유가 아닐까? 삶 속에서 체험의 압력이 강했던 이들의 언어는 직설적이고, 체험의 밀도와 흔적이 낮을수록 세상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언어를 쓰는 법이다. 펜싱과 무용, 칼끝에서 토해내는 직설적인 언어가 유독 공감 가는 이유는 그 진정성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