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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세계, 나를 둘러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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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인잇(In it)〉 은 사전적 의미로는 단순한 '-안에' '그것' 정도를 뜻하는 두 영어 단어의 조합이다. 하지만 막상 제목이 무엇을 뜻하냐를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힘든 제목일 것이다. 〈인잇〉은 바로 이러한 상반성의 공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에는 ‘안/밖’, ‘긴장/이완’같은 여러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DMAU(Dance Makes Asia become the Universe) 프로젝트를 통해 구성된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들 역시 아시아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각기 다른 역사, 문화적 배경과 무용수로서의 경력을 갖고 있다. 바로 이 DMAU 무용수들은 무용수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기반으로 한 움직임 리서치 안무법 ‘프로세스 인잇’과 두 중심축으로 맞물려서 작품을 이끌어 간다.

발이 쳐진 듯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금속성의 긴 세로줄들은 무대를 빙 둘러싸고 원형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 중앙에는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미확인 비행물체를 연상케 하는 띠 모양의 거대한 회색빛 둥근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이 두 가지 조형물은 수평과 수직의 중첩된 구조로 텅 빈 무대에 3차원적 공간성을 강조하며, 동시에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무채색의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듯 조명이 무대 바닥에 누워있는 무용수들을 흩고 지나갈 때마다 미지의 생명체가 깨어나듯 무용수들은 하나, 둘 각기 다른 움직임 속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향효과와 함께 반복되는 리듬이 시작되고 새로운 소리의 층이 생겨남에 따라 무용수들은 각자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다양한 몸의 움직임을 더해간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동작은 불규칙적이며 몸의 방향은 각기 다르다. 마치 ‘사랑’ 이 뭐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한 듯 다른 정의를 내놓듯, 무용수들은 같은 시공간 속에 있지만, 모두 다른 감정을 갖고 각자 다른 것을 느끼거나 사고한다. 몸의 움직임은 ‘보여진다’는 시각적 의미에서 외면적이지만, 각기 다른 움직임의 근원은 무용수 개인에게서 비롯된다는 의미에서 내면적이다. 하지만 무용수들의 각기 다른 움직임은 각각의 개별요소로 존재하기보다는 유기적인 리듬을 만들어 내며 하나의 거대한 움직이는 미지의 생물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사람마다 다른 정의를 내린다는 사랑이 모순적이게도 인류 공통의 언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이런 모순된 원리는 상반된 요소들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드러난다. 그루브가 있는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은 몸을 풀어주듯 유연한 움직임으로 통일성 있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군무를 형성하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지만, 자연스럽고 일률적이지 않다. 때로는 무용수들이 하나로 뒤엉킨 듯 보이지만 서로의 몸은 닿지 않은 채 하나의 무리로 움직일 뿐이다. 이러한 원리는 2인무의 구성에서도 반복된다. 무대 양 끝에 선 두 무용수는 빠름과 느림, 분절과 이어짐의 상반된 동작들을 보여주며 상호작용한다. 혹은 두 무용수가 마주 보며 서서 함께 하지만, 남자 무용수는 몸의 확장을 보여주고, 여성 무용수는 몸을 수축시키듯 에너지를 끌어 모은다. 이런 구성은 비정형적 움직임들에 정형성을 불러온다.

상반되는 요소들이 의도성과 비의도성의 줄다리기로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가운데 음악은 시종일관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한 몸처럼 호흡하듯 함께 한다. 음악은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배경으로서 존재하기도,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기도 거부한다. 절제된 비트와 울림들로 자기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작품 전체에 섬세한 음의 파동들을 수놓으며 몸으로부터 다양한 움직임을 이끌어 낸다. 음악 자체로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듯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더불어 작품 전체를 휘감는다.

어느 순간 한 무용수가 고정된 벽처럼 보이던 무대를 둘러싼 발을 빠른 속도로 온몸으로 흩고 지나간다. 균일한 간격의 세로 선들로 닫힌 공간감을 주던 원형의 무대에 일순간 균열이 생긴다. 이때 관객은 무대 밖의 또 다른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마치 꿈에서 깬 듯,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펼쳐지던 눈앞의 현실이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무용수들은 발을 경계에 두고 발 안쪽과 바깥쪽에서 동시에 비슷한 듯 다른 동작들을 보여준다. 발 사이를 비추는 조명 효과가 더해져 한 사람이 현실계와 가상계의 두 인물로 나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명이 어두워지면 무용수들은 지구를 떠나듯 눈앞에서 사라진다. 작품을 관통하던 상반성의 원리는 세계에 대한 인식에까지 확장되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