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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춤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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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댄서 출신 안무가 보티스 세바는 〈블랙독〉은 우울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라고 말한다. 가볍고 흥겨우며 발랄한 움직임으로 가득한 힙합이 어떻게 어둡고 무거운 마음의 병을 주제로 다뤄나갈까? 이 ‘검은 개’가 거리의 아이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을 어떻게 물어뜯고 괴롭히는지, 그들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궁금한 마음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다.

무대 오른편, 스팟 조명을 받고 서 있는 한 사람에게 서서히 비가 내린다. 쏟아지는 물방울, 바닥에 튀는 물소리, 신체를 감싸는 빛의 반사. 빌 비올라의 비디오 작품 〈크로싱〉을 흑백 사진으로 보는듯하다. 이어 등장한 일곱 명의 무용수는 내리꽂는 조명 아래서만 움직인다. 빛과 어둠의 강력한 대조, 명암의 극단적 대비. 무대 위에 펼쳐지는‘키아로스쿠로’의 스펙터클이 시선을 압도한다.

무용수들은 엉거주춤 앉은 자세로 무대를 돌아다닌다. 개는 두 발로 서지 못하기 때문일까? 사지를 마음껏 놀리는, 힙합의 화려한 기교는 보여주지 않는다. 길거리 춤은 어둠의 세계를 더 짙게 만드는 조명, 정적을 가르고 찢어버리는 날카로운 음향, 뼈마디를 흔드는 강력한 음악에 의해 해체되고 새롭게 태어난다. 길거리 춤의 속됨은 사라지고 절제된 몸놀림, 정제된 안무로 차원이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이 공연의 숨겨진 여덟 번째 무용수는 조명이다. 무대와 객석을 향해 수평 일렬로 수십 개의 전구가 빛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 앞에서 무용수들은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나오는 두 패의 갱단처럼 서로 대립하고 싸운다. 몸싸움, 목조르기, 야구 방망이 휘두르기, 총싸움. 따돌림, 폭력, 죽음, 애도,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7명의 무용수는 공룡의 비늘이 돋은 후드티를 입고 소외, 방황, 폭력으로 가득한 젊음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무대 천정에서 무용수의 머리 위로 수직 조명이 천천히 내려오면서 그들은 후드티를 벗는다. 그들을 짓눌렀던 우울증을, 마치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이 집어던진다.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말한다. “다시 시작해요, 돌아보지 마요,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그들이 아름다운 나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TV의 막장 드라마와 같은 급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의 비극은 막장의 줄거리를 품고 있지만 그 이야기의 속됨을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블랙독〉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블랙독〉은 힙합을 한편의 무대 예술로 진화시켰다. 우리는 이 안무가를 거리의 춤을 무대 위의 정교한 스펙터클로 형상화한 힙합의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