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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추억은 어떻게 춤을 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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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이 들수록 현실보다는 추억 속에서 살아간다. 노년의 삶이 불행할수록 과거는 현재의 발목을 잡고 미래까지 암울하게 저당 잡는다. 20년간 발레극의 다양한 실험을 해온 지우영 예술감독의 샤하르 무용단이 현대의 노인 문제를 반영해 발레극 돈키호테를 새롭게 재창조했다.

한 편의 고전 발레극은 따라야 하는 정전(正典)인 음악이 있고 벗어나서는 안 되는 줄거리 궤도가 있다. 샤하르는 루드비히 밍쿠스의 원곡을 살리면서 치매 환자로 가득한 현대의 노인요양원에서 기사도의 이상 대신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둘시네아를 그리워하는 노인 돈키호테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원본 돈키호테의 무대가 여관, 시장, 집시촌, 풍차, 숲 등으로 다양한 반면, 샤하르는 요양원, 도시 두 곳으로 단순화했다. 늙은 아내 둘시네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돈키호테가 젊은 둘시네아를 찾아 요양원을 탈출하고, 도시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산초를 만나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온다는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택했다.

주인공 격인 돈키호테, 산초, 둘시네아 외에 목사, 요양원장, 후원회장, 간호사, 경찰 등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이 살아나 줄거리의 단순함을 충분히 보완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다섯 명의 발레 무용수들이 젊은 발레리나, 발레리노처럼 폭발적인 도약은 없지만 원숙미 넘치는 우아한 춤 기량을 보여줬다.

젊은 두 연인, 늙은 두 연인의 아름다운 파드되 이후 돈키호테는 추억의 일기장을 찢으며 망각 속으로 빠져든다. 애잔한 음악과 노인들의 사진이 스크린에 흐르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을 상기시키면서.

노년의 비애를 발레의 주제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다. 그동안 10여 편의 창작발레를 무대에 올린 단체의 저력을 다시 확인한 공연이었다. 2년마다 소재, 기획, 구성을 달리해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다음에 어떤 소재를 발레의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