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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보다 더 밝은 반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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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겸손하게 이름붙인 ‘반월’은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서울교방 15년의 성과를 한자리에 모아 수놓은 전통춤의 창의적인 태피스트리, 한국 춤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김경란류의 조망도 같은 공연이었다. 교방(敎坊)의 의미 그대로 가르치고 배우고 서로 협업해 이룬 가무의 정수가 그대로 드러난 한판의 멋진 경연(慶宴), 경사로운 잔치의 마당이었다.

김경란류 춤의 본질은 유려(流麗함)이다. 기본 요소인 ‘홀춤’을 우아하고 품격있게 나눴다, 합쳤다, 섞었다가 분리하는 자유자재의 안무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이어진다. 각 단위들은 각자의 개성을 은근히 드러내면서 또렷한 하나가 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풀어져 홀로 도드라진다. 하나로 엮였다가 헤치는 과정이 천의무봉(天衣無縫), 너무나 미끈하고 아름답다.

서진주의 살풀이 ‘홀춤’으로 처음 선보인 ‘논개별곡’이 논개의 다섯 분신, 아바타의 협연으로 태어난다. 전통춤의 특성이면서 단점이기도 한 대칭과 단일성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5방(方)의 연결과 교류, 견제와 균형을 통해 훨씬 풍부한 춤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일 대 다, 스승과 제자의 조화를 보여주는 민살풀이는 서울교방이 자유롭고 유기적인, 창의적인 예술 공동체임을 증명한다.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지만 독단적이지 않고, 함깨 가르치고 배우지만 서로를 제약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이면서 동시에 ‘우리’인 동인들의 공감과 연대를 통해 아름다운 위로의 춤이 태어난다. 스승을 떠받들고 베끼느라 급급한 ‘패거리’와는 차원이 다른 ‘동아리’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날 공연의 압권은 김경란 사범의 홀춤이었다. 관절 노화로 부자연스럽게 시작한 춤사위가 동작이 쌓여갈수록 보는 사람의 숨을 멈추게 했다. 공간을 폈다 접었다, 시간을 조였다 풀었다, 날숨과 들숨의 스타카토, 팽팽함과 느슨함의 루바토가 전통춤의 혼을 되살려냈다. 그 어떤 현대적인 춤보다도 쿨(Cool)하고 쉭(Chic) 하게.

서울교방은 발표 작품마다 안무 대신 ‘재구성’이라는 명칭을 쓴다. 재구성의 영어 Re-Construction 은 다시, 새로 짓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창작의 과정이다. 홀춤이 무리춤이 되려면 서사적인 줄거리를 통해 재구성, 재창조해야 한다. 그동안 전통춤 공연이 지루했던 이유는 춤꾼의 기예에만 의존하거나, 홀춤의 단순한 복사판인 무리춤을 올렸기 때문이다. 서울교방을 모범 삼아 유려한 서사의 재구성을 통해 쿨하고 쉭한 전통춤 공연이 많이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