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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와 함께 춤을 추며 간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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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피나 바우쉬와 함께 늘 언급되는 개념은 ‘탄츠테아터’이다. 어원적으로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개념이지만, 피나에게는 단순한 무용극을 넘어선 다양한 장르의 결합이었다. 또 한 안무가 개인에 의한 완성된 안무가 아닌, 무용수에게 ‘질문하기’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갔다. 이런 일련의 창작법들은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관심이 있었다는 피나의 말과 맥락이 닿아있다. 피나 작품의 궁극적인 의의는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데 있다. 다큐멘터리 연극 〈P와 함께 춤을〉은 바로 이런 피나의 작품세계가 피나의 사후 어떻게 다음 세대의 무용수들에게 공유되고,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피나를 통해 오늘날 예술가들의 현실과의 접속을 시도한다.

과거가 되어버린 피나는 피나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챗봇 ‘마스터P‘로 재탄생하였다. 하지만 “나는 질문으로 존재해요”라고 말하며 피나의 분신임을 알리는 마스터P는 역설적이게 질문을 받는 존재다. 무대 위에 직접 등장한 연출가 이경성은 마스터P에게 질문하고, 마스터P는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몸의 구체성에 대비되는 마스터P의 비물질적 성격, 언어와 기록과의 관계 등을 이야기한다. 무대 위에는 오픈 릴 테이프 레코더가 놓여있다. 레코더는 공연 내내 무대 위로 발화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비롯한 모든 공연을 녹음하고 때로는 녹음된 것을 재생시킨다. 최첨단 기술의 마스터P와 구식 레코더는 바로 정신과 몸(물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둘 다 각자의 기록으로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경성은 피나의 창작법을 연극을 통해 무대 위로 펼쳐 보인다.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6명의 배우는 3명의 연극 배우와 3명의 무용수로 된 배우로 구성됐다. 이러한 구성은 피나의 상징인 ‘탄츠테아터’를 상기시킨다. 배우들은 관객들을 향해 각자 실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예술과 피나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레 풀어놓는다. 배우들은 말을 하며 동시에 몸을 움직여 표현하고, 마스터P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동작을 보여준다. 피나는 작품을 위한 이상적이고 정형화된 춤을 원하지 않았다. 예술의 본질은 사람에게 있다고 보았던 피나는 무용수가 스스로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나오는 움직임을 원했다. 무용수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질문하기’ 창작법은 바로 이런 피나의 예술관을 반영한다.

이경성은 극의 도입부에서 부퍼탈 탄츠테아터에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피나에 대한 애정과 연극의 취지를 담은 편지다. 실제로 제작진은 부퍼탈 테아터의 초대로 부퍼탈을 방문하여 리서치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을 담은 영상이 무대에서 상영된다. 제작진은 부퍼탈을 돌아보며 피나의 흔적을 찾는다. 또 한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방문하여 무용수들을 인터뷰하고 리허설과 공연을 참관한다. 하지만 영상은 피나에게 있어 68혁명과 부퍼탈의 지역성이 갖는 중요성, 부퍼탈에서 느끼기 힘든 피나의 존재감, 피나가 떠난 지금까지도 피나의 작품들이 여전히 인기가 있다는 사실 등 방문을 통해 알게 된 파편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는 데 그친다. ‘왜’와 ‘어떻게’가 생략된 이 결과물은 전체 극 속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배우들은 2명씩 짝을 이뤄 예술가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각각의 쌍은 연극 배우와 무용수, 한 세대의 나이 차이, 외국인과 한국인 등으로 ‘서로 다름’의 폭을 넓혀 짝을 이룬다. ‘다름’ 의 폭이 넓을수록 각자의 삶과 경험의 차이 또한 커지고, 서로는 더 모르는 존재가 된다. 즉 ‘다름’은 더 많은 궁금증과 질문을 유발한다. 무용수는 연극 배우의 삶을, 한국인 배우는 한국에서 외국인 배우 삶을 궁금해한다.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과정은 상대를 더 잘 알게 할 뿐 아니라, 대답하는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쌍방향의 소통으로 재구성된 ‘질문하기’는 배우를 보다 주체적으로 극에 참여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공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화는 어느 순간 극의 방향을 미로로 이끌어 간다.

〈P와 함께 춤을〉은 전반에 걸쳐 피나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질문하기’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연극의 특성에 맞춰 마스터P, 혹은 배우들 간의 대화 형식을 통해 연극의 중심을 이룬다. 또 한 배우의 구성부터 소품 활용이나, 서사적 구성을 탈피한 서로 연관되지 않는 개별 장들로 된 구성, 다큐 형식으로 인한 픽션과 논픽션의 혼재 등이 모두 직간접으로 피나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연극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일까? 공연 내내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피나를 매개로 다양하게 펼쳐진 시도들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향하기보다는 모두가 질문으로 머무르고 있다. 질문으로 시작한 연극은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길을 잃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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