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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종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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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그림 〈성가족(聖家族, La Sacra Famiglia)〉은 몇몇 지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그림 속 마리아는 잔디밭에 앉아 뒤에 있는 요셉에게 어깨너머로 아기예수를 건네받고(주고) 있는데, 세 인물은 수직적 구도 속에서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 겹쳐 보인다. 또 한 근육질의 건강한 마리아의 팔이 눈길을 끈다. 배경에 5명의 나체 청년들은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은 해부학의 발달로 인체의 표현을 중시했었다. 조각가로도 유명했던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육체를 통해 신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벌집〉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안무가 피에트로 마를로는 〈벌집〉을 통해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성가족의 개념을 회화의 형식과 종교로서의 내용 양 측면에서 확장하고자 하였다.

어둠 속 무대 한쪽에는 푸른 천으로 뒤덮인 정육면체의 구조물이 있다. 천은 부풀어 오르듯 천천히 움직이며 정육면체 형태에 균열을 가한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물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도 보인다. 천위로 드러나는 움직임은 그 주체를 볼 수 없음에도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의 움직임은 점차 구조물 내부를 향하다 어느 순간 바닥으로 천을 끌고 나와 구조물에서 벗어난다. 지속되는 천의 움직임은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폭풍 전야의 물결치는 파도처럼 보인다. 천 사이로 나체의 무용수들이 몸을 드러내고, 이들은 곧 천과 뒤엉킨 채 천이 벗겨진 철제 프레임의 큐브를 돌아 무대를 가로지른다. 이는 천을 이리저리 감고 있던 〈성가족〉의 나체 청년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속되는 천과 벗은 몸의 뒤엉킴은 보는 이에게 벗은 몸에 대한 감각을 희석시킨다. 어느덧 붉은 조명 아래 모인 5인의 전라 무용수와 치마를 입은 무용수는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떨며 움직인다. 이는 마치 주술의식처럼 보인다. 집단화된 움직임은 이어지고, 무용수들은 일렬로 앞사람의 등에 한 손을 댄 채 동일한 동작을 하며 무대를 돌기 시작한다. 때로는 2-3인씩 짝을 지어 움직인다. 팔목을 꺾는 식의 움직임이나 사족보행을 하듯 상체를 숙인 채 다리의 움직임에 맞춰 팔 전체를 움직이는 방식은 인간의 동물적 육체성을 강조한다. 무대 전체로 반경을 넓혀가는 무용수들의 구성과 움직임은 점점 자유로워진다. 무대는 다양한 자연의 소리를 모아놓은 듯 신비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여러 소리로 가득 차며 하나의 굿판으로 변해간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으로 이성의 유무와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손의 도구 사용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옷을 입는다는 점 또 한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한 무용수가 치마를 입은 무용수와 싸움을 하듯 서로를 붙잡고 피한다. 이때 이들을 향해 4인의 무용수가 일렬로 백허그 자세로 몸을 겹쳐 다가온다. 개인과 집단의 대비되는 순간이다. 큐브를 둘러싼 무용수들은 두통이 난 듯 머리를 잡고 괴로워한다. 혹은 큐브 안의 한 무용수에게 다른 무용수들이 폭력을 가하는 동작을 취한다. 철제 프레임 큐브는 이 굿판에서 이질적인 요소다. 기하학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에게 입체성과 3차원 공간의 표현의 원리였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구조와 조화를 설명하는 열쇠가 되어줬다. 무대 위의 큐브 또한 우주 혹은 지구를 상징하는 듯하다

전쟁이 난 듯 큐브를 둘러싸고 벌어지던 폭력의 시간이 끝나고, 무용수들은 큐브를 무대 가운데로 밀고 간다. 무용수들은 더 이상 큐브와 대척하지 않는다. 무용수들은 큐브를 붙잡아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거나, 움직인다. 때로는 마치 큐브를 지키듯 단체로 화살의 시위를 당기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어느 순간 공중에서 큐브 안으로 전등불이 내려온다. 큐브 안에 모여든 무용수들은 불빛을 중심으로 돌거나 집단으로 특정한 동작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불을 처음 발견했던 인류의 조상을 떠올리게 한다. 불의 발견은 인류 진화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바로 불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호모 에렉투스는 주로 수렵 생활을 하였다. 수렵 생활은 집단 협력을 필요로 했고, 이들에게 사회적 유대감이 발달했으리라 보고 있다.

한 방향으로만 일렬서기를 했던 무용수들은 처음으로 둘씩 마주 보고 선다. 평행하게 선 무용수와 손목을 맞잡고, 이어 누워있는 두 무용수와도 손을 잡아 삼각형을 만든다. 이들은 다시 양쪽으로 나눠져 모두 손을 맞잡아 육각형을 만드는데, 공연명인 〈벌집〉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큐브가 정사각형으로 프레임으로 해체되고, 무용수들은 무대 바닥에 있던 여러 색의 천을 꺼내 펼치며 공연은 끝을 맺는다. 천의 색깔들은 그림 〈성가족〉에 사용됐던 색들이다. 〈벌집〉은 프레임이 해체되고 색깔이 펼쳐지듯 〈성가족〉에 나타난 회화의 요소들을 분해하여 무용으로 재구성했다. 또한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본질을 고찰하는 작품”이라는 소개에 걸맞게 인류의 시작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인간의 본질을 인류학적 차원에서 고찰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