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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몸에 트는 새로운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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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데카당스(decadence)는 타락, 퇴폐를 뜻한다. 정통의 질서와 정상적 규범을 벗어난 ‘바닥으로의 낙하’를 이스라엘의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은 10개의 춤 deca + dance(실제 공연은 8마디)로 새롭게 쏘아 올린다. 인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성(歎聲)을 자유자재로 조율하고 엮어가면서. 이번 서울판 데카당스의 원동력은 한국의 젊은 춤꾼들이 가진 뜨거운 에너지와 다양한 개성이었다. 21명의 무사(武士이면서 동시에 舞士)들은 각자 자기 고유의 몸 가눔과 움직임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단의 창발성으로 틔워냈다. 한국 현대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이 폭발한 이번 무대는 한 편의 숨 막히는 드라마였다.

공연 시작 10분 전 정장 상의를 걸친 발레리노가 발레의 다양한 자세와 동작을 취하면서 혼자 무대를 누빈다. 데벨로페, 아라베스크, 삐루에트망(연속 회전) 등 고난도 동작을 선보이다가 중간중간 다양한 장르의 춤사위를 섞어가며 자신의 몸이 어느 특정한 스타일과 기교에 얽매이지 않을 만큼 자유롭다고 뽐낸다. 공연의 시작점이 대체 어디인지 의문이 생길 때쯤, 다른 20명의 무용수들이 무대로 들어와 늘어서고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비틀면서 꿈틀거린다.

의자에 앉은 무용수 21명이 유태인의 격렬한 찬가에 맞춰 양팔과 몸을 한 명씩 뒤로 젖히는 리드미컬한 파도타기를 반복한다. 함성과 몸짓의 무한 루프가 고조돼 가며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음표처럼 몸부림치며 절규한다. 파도타기 한 순배가 돌 때마다 구두, 상의, 바지를 차례로 벗어 무대 중앙으로 집어 던진다. 몸을 감싸고 있는 격식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의식(儀式)의 점층법을 통해 젊은 춤꾼들은 자신을 발견해 간다.

춤꾼 무리가 무대를 좌우로 오가면서 무용수 한 명씩 빠져나와 자신의 사연을 몸으로 고백한다. 농아 부모 밑에서 자라 어릴 때 수화로 대화했다는, 머리는 크고 다리는 짧은 자신의 몸에 불만이 많다는, 같은 단체의 동성 남자 무용수와 부부관계라는, 적나라한 개인사를 과감하게 내뱉고 몸으로 표현한다. 젊은 그들이 품은 멍과 응어리가 번개 치면서 몸을 뚫고 나온다. 삶의 사연으로서의 춤은 그들의 몸을 강하게 단련시킨다.

5쌍의 무용수가 서로 마주 보며 자세의 대결을 펼치다가, 각자 허공과의 접촉 즉흥에 몰두한다. 잠시 후 다른 무용수들이 하나, 둘 무대로 들어와 합류하면서 뒤섞인다. 움직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21명이 서로 부딪힘 없이 뛰어다닌다. 무대는 도약의 도가니, 용광로로 변한다. 다양한 개별성은 운동의 질서로 승화한다. 개체의 상호 작용과 피드백을 통해 통일로서의 춤의 창발성이 발생한다.

춤꾼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을 이끌고 무대로 오른다. 처음 무대에 오른 이들은 쑥스러움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간다. 관객들이 몸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듯, 21명의 춤꾼은 나하린 춤의 철학인 가가(Gaga)의 체험을 통해 몸의 감각을 벼리고, 액자에 갇힌 회화가 아닌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서의 춤을 새롭게 발견했다. 갓 부화한 이 신선한 무기(武器 이면서 동시에 舞技) 들이 우리 무용계를 어떻게 뒤흔들어 놓을지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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