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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적 다양성과 절도 있는 동일성, 그들에 공통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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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발레단이 약 50년의 간극이 있는 유회웅의 〈No More〉와 한스 판 마넨의 〈5 Tango's〉를 ‘더블 빌’(두 편을 연속 상연한다는 의미)이라는 타이틀로 한 무대에 올렸다. 서울시발레단은 컨템퍼러리 발레 그룹으로, 발레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토슈즈는 신지만 튀튀를 벗고 내용에 따라 디자인된 의상을 입었다. 그리고 고전 발레 동작에 기반하지만 다양한 춤의 언어를 접목하여 새로운 안무를 만든다. 수백 년 전의 음악에 수백 전 전의 몸짓을 재현하는 고전 발레는 고전으로서 재현되고 닦여져야 하지만, 그의 후예 중에는 본토를 떠나 창대케 될 땅으로 가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컨템퍼러리 발레가 그 땅이며, 서울시발레단이 그 후예들이다.

첫 무대인 유회웅의 〈No More〉는 2024년 4월 서울시발레단 창단 사전 공연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1년여 만에 이루어진 재연 무대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일상이다. 예술이 삶에 기원을 둔다면, 예술은 일상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모습일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 현대의 사실적 미디어가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로 언급한 현실에 대한 깊은 침투는 영화나 사진뿐만 아니라 일상을 소재로 한 모든 예술 작품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No More〉는 바로 이러한 확대된 범위에 포섭된다. 이 작품은 일상을 깊이 파고든다. 도저히 춤출 수 없을 정도로 쪼갠 리듬에서 초인적 역동성을 보여주는 몸동작은 규격에 맞춰 자동화된 우리 삶에 녹아있는 역동적 수동성에 대한 신랄한 보고다.

그런데 현대적 몸짓으로 펼치는 군무는 고전 발레나 대중음악에서와 다르다. 그들의 동작은 모두 같지만, 모두 같지 않다. 함께 하는 동질성이 있지만, 각각 제 모습을 갖는다. 그들을 연결하는 상상의 구심점을 맴돌며 차이와 다양성으로 존재하는 몸짓들,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면서도 별난 존재를 참지 못하는 이중적 사고의 현실을 깊이 통찰한다. 이것이 고전 발레가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며, 대중 예술과 다른 지향점이다. 여기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더욱 강하게 조여드는 빠른 리듬의 일상을 괴로워한다. 그는 차원의 이탈을 시도한다. 로맨틱한 환상도 접하고, 심지어 무대의 세계관에 존재하지 않는 밴드 연주자와의 존재도 감지한다.

그런데 그가 만나는 환상에도 괴로워하며, 저 너머의 세계에도 불만을 표시한다. 현실의 굴레에 가두는 존재들에도 괴로움을 표현하지만, 그들의 군무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니, 선택지가 주어져 있기는 할까? 유회웅이 선택한 결론은 ‘네오’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벽에 몸을 던져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빛이 있다! 그는 오랜 동화의 이야기와 같이 행복하게 살았을까? 아니면 그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겪게 될까? 분명한 사실은 동화 속 주인공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났다는 것이고, 〈No More〉의 주인공은 벽을 찢고 현실에서 탈출했다는 것이다. 순간 떠오른 생각. 난 어디로 몸을 던져야 할까?

후반부 무대에 오른 한스 판 마넨의 〈5 Tango's〉는 1977년 11월 암스테르담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컨템퍼러리 발레에 탱고의 소울을 불어넣었다. 사실 피아졸라의 ‘누에보 탕고’에는 탱고를 출 수 없지만, 오히려 컨템퍼러리 발레에는 새로운 지평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 모든 무용수는 탱고의 소울을 깊이 담아 리듬에 정확한 군무를 보여준다. 흐트러짐 없이 절도 있는 몸동작과 화려하거나 과하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도도한 표정과 자세 등. 분명 앞서 공연된 〈No More〉와 현격히 대조되었다. 이러한 점은 〈5 Tango's〉가 가진 탱고의 언어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고전’이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5 Tango's〉는 독무와 이인무, 그리고 군무까지 다양한 양식으로 구성되었다. 독무는 발레의 활력과 탱고의 자유를, 이인무는 발레의 우아함과 탱고의 사랑을, 군무는 발레의 화합과 탱고의 열정을 결합한다. 이러한 다섯 장면은 서로 다른 에너지로 서로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서로 다른 감정을 전달한다. 안무자는 각 장면에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에, 감상자는 마치 다악장의 절대음악에서 경험하는 상상의 극적 서사를 자연스레 구성하게 된다. 즉, 피아졸라는 ‘누에보 탕고’를 만든 이후 한 곡의 교향곡도 작곡하지 않았지만, 피아졸라의 음악에 붙인 판 마넨의 〈5 Tango's〉는 춤의 교향곡으로 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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