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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의 공간에서 무한의 세계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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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여러 단체들로부터 초청을 받으며 예술감독으로 활동해 오고 있는 안무가 정형일은 자신의 커리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형일 Ballet Creative’의 대표와 예술감독을 추가했다. 그가 자신의 단체를 통해 추구하는 안무는, 홈페이지에 적혀있듯이, 기존 발레의 틀을 넘어 신체가 지닌 조형미를 극대화하는 안무라고 밝힌다. 그런데 그의 안목은 춤에 그치지 않는다. 미니멀하고 세련된 무대 연출, 영상기술을 활용한 독창적 구성 등, 그의 이상은 무대로 확장된다. 즉, 그는 무대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건의 총체로서의 ‘공연’을 바라보고 있으며, ‘정형일 Ballet Creative’는 이를 실현하고 있다. 정형일 안무의 〈몬드리안〉은 이의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목이 ‘몬드리안’인 만큼, 무대는 몬드리안의 대표작인 ‘컴포지션’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구성했다. 선으로 평면을 비대칭으로 나누고, 그중 임의의 폐공간에 뚜렷한 색을 더한다. 그리고 공간에 떠 있는 선과 면은 이러한 몬드리안적 공간을 통제하는 전지적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래 몬드리안은 최소화된 구성을 통해 그가 찾고자 했던 세상의 기초와 보편적 아름다움을 평면에 고정했다. 하지만 무대 예술로서 시간이 더해짐으로써 갇힌 색이 풀어지고 다이나믹하게 변화된다. 이로써 몬드리안을 넘어, 진리는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더한다. 의상도 검정에서 백색으로 변화하고, 음악도 13세기 옛 성가부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까지 변화한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서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다. 극도로 단순화하는 몬드리안의 미학은, 변화를 더했다 해도, 안무나 음악, 무대 이미지 등에서(심지어 몬드리안이 탈락시킨 사선도 등장한다) 온전히 구현되었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몬드리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수직과 수평이 만들어낸 강박의 격자 구조”라는 시놉시스에 그 힌트가 보인다. 기획 배경에서는 앞서 언급한 강박과 함께 반복과 집념이라는 키워드도 발견된다. 사실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들과 거리가 있지만,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키워드로부터 트랩에 갇힌 듯 출구 없이 맴도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이 성질에 집중했다.

특히 군무는 선에 대한 강박, 반복, 집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신체를 뻗어 직선을 만들고, 이로써 만드는 조형적 동작은 여러 사람을 통해 동시적으로 반복을 구현한다. 그리고 안무의 반복은 시간적으로도 반복을 만든다. 이러한 추구미를 가장 충격적으로 만든 장면은 후반부에 등장한다. 수없이 반복하는 비제의 발레곡 〈아를의 여인〉 중 ‘파랑돌’(Farandole)을 배경으로 발레의 기본 동작을 이은 여성 군무에서 나는 큰 충격을 경험했다. 집념 가득한 안무는 몬드리안이 컴포지션을 처음 내놓았을 때의 용기와 동등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무대 위에 뿔과 같은 형태는 이념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도 보이는 무대를 압박하는 전지적 존재일 것이다.

그 이전에도 이러한 강박과 집념을 강하게 느낀 장면이 있다. 한 여성 무용수가 다른 다섯 명의 무용수에 의해 동작이 결정되는 장면에서 물질에 구속된 현대인의 수동적인 삶이 나도 모르게 대입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라흐마니노프의 〈저녁 기도〉 중 ‘기뻐하라, 오 성처녀여’를 배경으로 하여, 그 대조적 이미지에 정신이 얼어붙었다. 두 파드되 장면에서는 옛 성가 〈가브리엘의 메시지〉를 다른 버전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이 작품에는 성모에 대한 이미지도 살짝 겹쳐 있음이 발견된다. 메시아의 어머니로 선택된 상황을 타율적 구속으로 본 것일까? 실제로 수태고지 성화 속의 마리아는 대부분 기뻐하기보다는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다.

검은 의상에서 직선이 그려진 흰 의상으로의 전개(시놉시스를 참고하면, 흑조의 죽음과 백조의 불멸), 솔로부터 군무까지 다양한 포맷, 전통 발레부터 창의적 시도까지, 몬드리안의 컴포지션에서 영감을 얻은 미디어아트와 함께 어색하지 않게 구성되었다. 이렇게 무엇이든 포용하고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압박된 공간에서 무한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컨템포러리 발레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한가지 첨언하면, 제목이 ‘몬드리안’이기에 감상자는, 무대와 의상에 대해 그랬듯이, 음악도 몬드리안의 단순성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등 일부 클래식 음악에서는 실패하고 마는데, 이는 이 작품의 방향성이 아니다. 감상자가 자연스레 작품의 주제에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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