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뒤셀도르프발레단에서 객원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는 허용순은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축제의 하이라이트 창작 공연을 독차지하고 있다. 한국 발레의 성장을 가늠할 지표이자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대작을 맡길 발레 안무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유럽 무대에서 오랜 시간 발레 안무가로 단련해 온 허용순의 세련된 기교와 매끈한 구성의 발레작품만큼 동시대 발레 애호가들의 기호에 맞고, 그녀의 작품은 매번 발레축제의 값어치를 높여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번 축제의 폐막식에서 발표된 허용순의 신작 〈Imperfectly Perfect〉
허용순은 에서 안무, 연출, 의상디자인까지 작품의 거의 모든 외피를 커버했다. 인생의 이순(耳順)에 도달한 안무가는 이 작품에서 ‘인연’이라는 개념어를 ‘나’와 내가 아닌 존재와의 관계, 나를 제외한 다른 존재 간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풀어냈다. 마치 서구의 실존주의와 동양의 연기론(緣起論)을 중첩시킨 듯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을 내가 있고, 타자와의 관계가 있고, 타인들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춤으로 역설하였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움직임, 그리고 잘 훈련된 무용수들의 육체가 어우러져 몸의 질감을 훌륭히 살려낸 안무는 메시지의 전개와 완결, 공연과 비공연을 연결하는 매끄러운 연출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것이 없는 공연이었다.
특히 안무자는 무용수들의 솔로, 듀엣, 그루핑의 반복을 통해 구조와 상황 속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마침내 도달한 완벽함 어디선가 결핍을 발견하거나 반대로 완벽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완벽에 다가가려 하는 모순적인 인간의 모습을 유려하게 그려냈다. 그녀의 의도를 펼친 12명의 무용수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진영, 마리오엔리코 디 안젤로, 사울 베가 멘도자와 유니버설발레단의 강미선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한상이, 예카테리나 크라시우크,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 제임스 프레이저, 루이스 가드너, 패트릭 부르파처 그리고 최지원으로 이루어진 다국적 그룹이었다.
이들은 독자적인 존재인 듯하면서도 어느새 둘이서, 또는 그룹으로 관계성을 확장해 가고, 조화를 이룬 듯하면서도 어느새 부조화를 빚어내며 안무자가 의도했던 완전함 속의 불완전함, 불완전함 속의 완전함이라는 역설을 표현해 내었다. 전체적으로 호흡이 느리지 않아 극이 흐르는 내내 긴장감이 유지되었고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움직임이 아름다웠던 것에 비해 몇몇 장치들과 구성이 조금은 올드해 보였고, 추상적인 작품 제목은 작품 안으로 충분히 녹아 들어갔는지, 혹은 녹아 나왔는지는 의문으로 남았다.
〈Imperfectly Perfect〉는 춤을 통해 완벽함이라는 이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한편 그럼에도 그 허망한 완벽을 갖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성찰해보도록 만든 작품이었다.
대한민국발레축제는 ‘발레 대중화’를 목적으로 국내 최고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이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이다. 예술의전당이 가진 기획력과 발레계 대표 지도자 및 오피니언 리더들로 이루어진 조직위원회가 추진하는 발레축제이기에 발레 매니아들과 전문가들이 기대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러나 9회째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의 지향점은 ‘대중화’만 두드러진다. 이 공연을 끝으로 축제의 막은 내렸지만, 내년에는 명확한 방향성을 지닌 기획을 통해 역량 있는 안무가들이 배출되고, 더욱 다양한 창작작품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
참여_ 서현재, 원서영, 윤단우, 장지원, 조형빈, 최해리
대표 교정_ 최해리
사진제공_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