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호의 〈Gyeong in_ 경인京人 2.0〉(8.28-29,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은 2017년 국립현대무용단의 픽업 스테이지에서 초연되었던 작품이다. 안무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존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탐구하고자 했다. 말 그대로 ‘경인(서울사람)‘이란 한국의 중심,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로, 욕망과 결핍이라는 키워드를 극단적으로 담고 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안무자는 전통적으로 해학과 풍자를 담당하던 탈춤 중 북청사자놀이의 사자탈과 물질적 욕망 혹은 삶의 무게를 달아보는 저울이라는 상징물을 사용했다. 그밖에도 내면을 비추는 도구로서의 랜턴 등 다양한 오브제가 작품의 의도를 살리고 이일우(퓨전 국악그룹 잠비나이)의 음악이 한국적 정서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2019 아르코 파트너 ⓒ옥상훈
작품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게 잔상을 남기는 부분은 전반부였다. 탑 조명 안에서 꿈틀거리는 흰 사자탈은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사자탈의 꼬리 부분에서 머리부터 빠져나온 류지수의 활약은 대단했다. 강인한 신체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와 일부분 아크로바틱한 움직임들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후의 전개에도 박순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무술적 움직임이 추가되고 이밖에도 색다른 느낌의 움직임 어휘로 풀어낸 다양한 구성과 미장센들이 각 장면을 이뤘다.
2019 아르코 파트너 ⓒ옥상훈
그러나 음악적 부분에서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현대무용 전공자인 안무가나 무용수들이 국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동작과 리듬 간의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국악은 서양음악과는 달리 엇박, 즉흥, 농현 등의 여음이 존재한다. 즉 그 장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라이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은 무척 어렵다. 국악 라이브는 연주 공간에 따라 음의 길이나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국악과의 협업에서는 연주자와 무용수 간의 긴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박순호는 피지컬한 춤 어휘, 무용수들 간의 보디 컨택을 통해 만들어내는 특유의 호흡과 긴장감을 잘 살려내는 안무가이다. 그러나 30여분의 작품을 1시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초연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잘 짜인 구성과 긴장도가 느슨해졌고, 비슷한 유형의 음악이 반복되면서 흥미와 몰입이 반감되었다. 따라서 아예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인상까지 받았고, 소극장 공연을 대극장용으로 확대되면서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2019 아르코 파트너 ⓒ옥상훈
이밖에도 뛰어난 기량과 표현력을 보여준 남성 무용수들에 비해 여성 무용수들의 역할이나 기량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고, 짧은 장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작품 안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채 겉돌다 퇴장해버렸다. 무용수 본연의 기량과는 별개로 여성 무용수들의 존재감 없는 움직임은 오히려 제목의 ‘경인’, 즉 ‘서울 사람’이라는 의미를 여성과 남성 간에 다르게 묻게 되고 불필요한 잡음을 발생시켰다.
2019 아르코 파트너 ⓒ옥상훈
따라서 박순호라는 안무가의 정체성도 살리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기하기 위해서는 대극장 무대에 필요한 좀 더 세밀한 구성, 앞부분의 힘을 끝까지 유지해가는 지구력, 남녀 무용수들의 움직임 배분에 대한 고민, 라이브 음악에 대한 충분한 이해 등의 보강이 필요한 듯 보인다. 박순호라는 안무가에 대한 현대무용계의 관심과 호응이 큰 만큼 그의 흡입력 있는 안무와 단체의 특성이 빛을 발하는 재작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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