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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공연예술창작산실 - 언플러그드 바디즈 〈호모 파베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9 공연예술창작산실 무용 부문 선정작 <호모 파베르>가 1월 11일(토)과 12일(일) 양일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런던 호페쉬쉑터무용단과 러셀말리피센트컴퍼니 등에서 무용수로 활동해온 안무가 김경신은 2014년 언플러그드 바디즈라는 현대무용단체를 결성해 국내 활동을 시작했는데, <호모 파베르>는 지난해 모다페 폐막작으로 올려진 <호모 루덴스>에 이은 그의 호모 시리즈 연작이다.

 




 

 

  <호모 파베르>는 제목 그대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모습을 무대 위로 옮겼다. 도구의 사용은 인간에게 생활의 편리를 가져온 데 그치지 않고 더욱 정교한 노동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문명의 발달로 이어졌다. 무용수들은 공장 노동자들의 작업복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고 매우 거칠고 투박한 움직임으로 무대를 누비는데, 안무는 현대무용에서 기대하기 마련인 자유롭고 창의적인 움직임보다는 누군가의 명령이나 조종에 따른 듯한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채워져 있다.




 

 

 

  무용수들은 생산라인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보이는 무대장치 위에서 박스를 쉼 없이 나르거나 무대 뒤와 양옆을 확장하고, 뒷무대 2층에서 박스를 떨어뜨리고 다시 그 박스를 밀어 올리는 등의 연출은 프로시니엄 무대의 제한된 시야를 넓혀주는 쾌감을 주는 동시에 넓어진 공간 전체를 노동 현장으로 만듦으로써 도구를 부리는 것이 아닌 도구의 지배를 받게 된 인간의 삶을 은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의 발달로 인류는 고도화된 문명 속에서 더 나아진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살상 무기의 개발로 전쟁을 초래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호모 파베르>는 사물과 신체의 관계, 신체와 신체의 관계를 움직임의 대화로 묘사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김경신의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탁자를 이용한 컨베이어벨트 장면의 설정과 컨베이어벨트 위의 움직임은 주제를 명확히 부각시키며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연상시켜 인상 깊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와 교차되는 무용수들의 빠른 움직임은 결코 짧지 않은 연습 과정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새로움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빠른 이동과 회전을 반복하며 무대 곳곳을 넘나드는 움직임은 전형적인 포디즘적인 노동자 몸짓에 머물러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오브제에 가려져 주객이 전도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안무자는 왜 굳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 프랑스의 철학가 앙리 베르그송이 창출한 ‘호모 파베르’의 개념을 표현하려 했을까? 그리고 호모 파베르, 즉 ‘도구의 인간’은 왜 꼭 망치를 들어야 했을까? 도구의 인간은 왜 노동자일 수밖에 없었을까? <레퀴엠>을 비롯한 음악의 편집, 그리고 돌, 망치, 지구본, 장난감 탱크 등 등장하는 오브제들과 클리셰는 조악하고 상투적이었다. 또한, 작품의 여러 부분에서 스펙터클한 장면들이 연출되었으나 DV8 무용단, 아크람 칸,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안무 장면들과 겹쳐 보이면서 지구의 탄생과 인간의 본성이 공존하는 호모 파베르, 즉 인류의 현재 자화상을 그리고자 했던 핵심을 관통했는지는 의문스럽다. 안무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도구들은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지만, 움직임이나 오브제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에 그쳐 담론화나 서사로 승화하기에 미약하였다.


  창작산실은 언제부터인가 그해 안무작들을 지명하고 각축하는 무도장이 되어버렸다. 과거에 안무자의 배출과 창작의 산실을 표방하던 서울무용제, 한국무용제전, 대한민국 무용대상, 중견작품지원 등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의미가 축소되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창작산실이다. 큰 액수의 지원금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 직접 관장한다는 공신력 때문에 창작에 뜻을 둔 안무가들이 매년 도전하는 곳이 창작산실이다. 1차 서류, 2차 인터뷰, 3차 쇼케이스라는 세 단계의 과정을 통과한 작품들이기에 관람 전에 갖는 기대는 매우 크다. 그런데 그 기대는 매번 작품의 미흡과 부실의 벽에 부딪힌다. 도대체 창작산실의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당대 무용가들을 앞서가려는 욕망과 의지일까? 창작산실의 무대는 방향키를 잃어가는 한국의 안무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지원금을 충분히 소비한다는 것을 표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일까? 안무가들은 지나친 개념과 과다한 오브제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이런 과욕은 <호모 파베르>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나 아쉬움을 남겼다.

 


참여_서현재, 윤단우, 이지현, 장지원, 최해리

대표 교정_윤단우

사진제공_언플러그드 바디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