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대응하여 공연예술계에서는 라이브 스트리밍이나 녹화 중계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을 만나왔지만 공연의 현장성이라는 벽은 허물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쉽사리 종식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맞이할 2021년의 새로운 방향과 대책을 위한 시스템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여러 대안과 시도들 가운데 지난 9월 24일 오후 8시(한국 시각) 영국 현지로부터 라이브로 중계된 램버트댄스컴퍼니와 빔 반데키부스의 협업작 <내면으로부터(Draw From Within)>는 극장에서 관객의 관람 시점을 배제한 채 디테일한 카메라구도와 여러 공간에서의 동선을 극대화하여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최선의 대안을 제안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세계 공연계의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이른바 언택트 공연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었는데, 우리나라도 국립무용단을 비롯한 대형 무용단이 일찌감치 공연 라이브 중계를 시도하였고, 작은 단체가 주관하는 공연도 유튜브나 네이버TV로 공연 영상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보인 램버트댄스컴퍼니의 <내면으로부터>는 무용작품 라이브 스트리밍의 한 가지 전형을 제시하였다.
카메라워크와 움직임의 절묘한 결합
석양을 배경으로 사전에 촬영된 램버트댄스컴퍼니 스튜디오 옥상에서의 첫 장면은(중계 당시 현지 시간은 오후 12시이다) 모니터 화면 속에서도 충분히 빠져들 만한 매력적인 시작이었다. 두 명의 호리호리한 남성 무용수는 서로 손박자를 쳐가며 흥을 돋우기 시작한다. 페스티벌이 곧 시작되려는 듯 후경의 런던 도시 풍경도 빼어나다. 그러나 한순간에 모든 불빛이 사라진다. 햄릿의 마지막 대사 “남은 것은 침묵뿐”을 연상시키지만 이 침묵을 채우는 건 오히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테드 휴즈의 시이다.
그러고 나서 카메라는 스튜디오 계단에서 스튜디오 안까지 이어지는 롱테이크로 공간을 훑는데, 인간의 내재된 여러 욕망의 이미지들이 암시적으로 나열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여러 단점을 가변식 벽체 세트와 조명 그리고 카메라 시야 밖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전환을 치밀하게 활용하여 타이트하게 진행되었다.
계단을 지나고 나면 이 공연의 주 무대인 램버트댄스컴퍼니의 무용 스튜디오가 나타난다. 흰 의상의 여자 무용수는 향을 피우면서 연기를 공간에 흩뜨린다. 천천히 타들어가며 내뿜어지는 연기는 무용수의 손이 지나가는 움직임에 의해 흔적을 남기면서도 곧 사라진다. 이윽고 남자 무용수가 홀로 연기의 발산하는 운동성을 이어받은 춤을 춘다. 충실하게 독무로 처리한 것은 향의 연기와 움직임 간의 메타포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남자 무용수의 독무가 끝나자마자 이 향과 춤의 1:1 대응은 연이은 트리오들과 더 큰 군무로 확장된다. 많은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무용작품에 있어서 대본을 전제로 두지 않고도 무대에 끌어내려면 안무가들마다 각자 지닌 노하우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이 빔 반데키부스의 연출 측면에서 그가 지닌 개성이기도 하다. 대체로 무용수들은 속도감 있는 군무와 함께 움직임 자체로 자신을 소개한다.
무용수들 각각이 움직이며 이뤄진 군무는 점차적으로 듀엣으로 전환된다. 이 전환의 사이에는 한 무용수가 향을 두개 들고 짧은 독무를 선보인다. 두개의 향이 내뿜는 연기는 곧바로 섞여나가며 안무가가 지닌 듀엣의 성격을 규정한다. 직접적으로 신체적 접촉을 하진 않지만 유연하게 함께 흘러가는 듀엣이 선보여진다. 곧 커다란 바스켓에서 나오는 굵은 연기와 함께 무용수들은 사라져 간다.
장소는 연기 자욱한 블랙의 공간으로 변한다. 이곳에서 무용수들은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며 경련과 경직이 섞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연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일어나는 근육의 순간 경직은 사이사이 일어나는 이완과 함께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경직된 스스로의 몸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을 조우하면 나의 몸이라고 여기고 소유를 의심치 않았던 것이 낯설게 된다. 이런 실존적 상황은 여성 보컬의 할퀴는 듯한 창법의 노래와 함께 비극적 분위기로 표현된다.
로맨틱한 짧은 듀엣의 전환을 지나 다시 넓은 스튜디오로 돌아온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까의 흐릿한 연기와 대비되는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의 선들이다. 이것을 당기고 있는 것은 무용수들의 기울어진 몸의 무게이다. 와이어의 팽팽함만큼 우리는 무용수들 신체가 지닌 무게와 그 저변의 중력까지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장면에 맞게 음악은 현악기를 손으로 강하게 뜯는 소리가 주를 이룬다. 안무가는 장면의 에너지를 쌓아가기 위한 선택을 했다. 와이어가 이루는 선이 이동하며 만들어진 공간에서 줄의 끝을 놓은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초반 장면에서 봤던 연기와 춤의 대응과 마찬가지로 이 장면에서는 춤과 현의 소리의 대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소리는 결국 공기의 파동에 의한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움직임일 것이다.
이러한 선들의 이미지를 지나 당도하는 장면에서는 전화 교환수가 등장한다.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파편들이 무대 뒤편에 단순한 드로잉으로 빠르게 그려진다. 채 마르지 않은 물감의 선이 그 내용보다 오히려 생생하다. 전화 교환수의 작업이 한층 바빠지며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뚫고 물감에 반사된 불빛만큼 생생한 신체 부분들이 튀어나온다. 동시대 연출가 디미트리우스 파파이오아누의 연출이 연상되자마자 그 신체부분은 곧바로 소리 지르는 한 여성으로 걸어나와 생명 잉태의 고통을 표현한다.
그녀가 내려놓은 아이는 빠르게 성장하며 인생극장의 드라마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걷자마자 춤추기도 한다. 축제와도 같이 흥겨운 춤의 향연 속에서 이 아이의 삶은 과장되게 중계된다. 성장하고 폭력을 익히며 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와중에도 이 축제의 춤은 계속된다. 니체가 비극의 근원으로 제시했던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바로 이 춤이다. 한바탕 시끄럽게 춤추고 떠드는 것이 지나가면서도 삶은 자기 성찰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빔 반데키부스의 기존 안무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내면으로부터>도 야성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바닥에서 구르거나 바닥을 박차고 공중에서 보여주는 동작들은 매우 아크로바틱하며 보는 이의 눈을 유혹한다. 그러면서도 더욱 자신 내면에 귀기울여보라며 우리 곁에서 속삭이는 듯하다.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동물적 감각은 세련되게 치장된 도시의 풍경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램버트댄스컴퍼니의 무용수들의 수려한 춤태와 잘 훈련된 표현능력이 힘을 합쳐 위와 같은 표현들을 충실하게 구현해냈다. 물론 내부와 외부, 도시와 야성 등의 이분법적 도식과 때로는 연출 면에서 상징의 설득이 강압적인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친화적이며 상상을 유도하는 매력적 에너지를 지닌 움직임들은 안무가가 가진 작업의 핵심이며 알면서도 항상 유혹 당하게 되는 카리스마 그 자체이다.
무용의 현장성을 영화적으로 해석한 새로운 형식
<내면으로부터>의 가치는 작품의 주제나 안무 방식의 특별함에 있기보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무대라는 개념을 확장하고, 영화적 창작 방식과의 새로운 협업을 보여준 것에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감각적인 변주의 연속이었다. 기존의 블랙박스 무대가 통제된 공간이라면, 이번 작품은 다양한 공간을 무대로 개방하고 카메라 앵글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제한했다.
평면적인 무대를 벗어나 램버트댄스컴퍼니 스튜디오 곳곳을 현란한 카메라워크로 누비며 관객을 이끄는 약 60분 남짓한 시간에 생명의 탄생부터 삶과 죽음까지 담아낸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온라인 상영이라는 특수성의 양면을 모두 느끼게 하였다.
올 한 해 국내외 크고 작은 극장 무대를 촬영한 영상물을 온라인으로 상영한 경우, 관객의 집중도가 한 시간의 호흡을 함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영상매체에 노출되어 있는 디지털시대에, 밀고 당기는 정면 촬영만으로 순수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관람자에게는 몹시 괴로움을 안겨주는 경험이기도 했다.
이렇듯 관람자의 작품 몰입 측면에서 이번 <내면으로부터>는 움직임 이 외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높은 흡인력이 돋보였다. 최근 컴퓨터게임과 영화에서 주목받는 1인칭 촬영기법인 ‘POV(Point of View)’을 통해 무용수와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일체감을 주었다. 직접 체험하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시점은 작품의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만약 이 작품을 관객이 있는 무대에 올린다면 그리 특별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촬영과 편집방식에 있다. 제공하는 형식이 라이브 스트리밍이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을 작품과 영상의 합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작품 구성 단계부터 촬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작품의 전 과정을 영화 촬영을 위한 콘티를 만들 듯이 작업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본 앵글과 카메라 움직임이 나올 수 없다. 편집은 사전 콘티 작업에서 충분히 고려되었고, 철저한 계획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여 촬영과 동시에 편집이 이루어지는 형식이 되었다. 영화에서 편집은 실제 상영하는 분량보다 많은 분량의 이미지가 시간상으로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에서 작품 줄거리에 맞게 재배열하는 작업인데, 공연 라이브는 촬영 시간과 상영 시간이 같기 때문에 편집을 따로 할 수 없다. 그러니 당연히 사전에 카메라 움직임과 앵글, 화면 미장센까지 철저하게 계산해야 했다.
이런 방식은 기존 무대 공연을 카메라가 관조하듯이 잡아낸 기록을 위한 영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내면으로부터>의 영상을 보면 앵글이 굉장히 타이트하다. 즉, 배경을 포함한 움직임을 잡기보다 움직임 자체를 화면 안에 가득 담는다. 카메라 앵글로 작품의 맥락을 끌고 갈 것이라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무대 공연에 익숙한 관객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데, 한편으로 영화에 더 익숙한 경우가 많아서 관객은 곧 그 영화적 앵글에 적응한다. 여기서 무대공연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조명’이다.
무대에서 조명은 밝고 어둠으로 맥락을 만들고 공간을 생성하는데 <내면으로부터> 영상에서는 일반적인 무대 조명은 찾아볼 수 없다. 조명이 있기는 하지만 조명이 출연자를 배려하기보다 카메라에 적절하게 맞춰있다. 카메라 앵글은 불필요한 부분을 배제하고 필요한 것만 취한다. 인간 관객의 눈이 불필요한 부분까지 담는 것과 다르다. 무대 조명은 시야(시선)를 통제함으로써 관객을 작품의 맥락으로 끌어들인다. 영상화된 공연에서는 카메라 앵글과 편집이 조명의 기능과 역할을 대신한다.
LG아트센터에서 디지털 스테이지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상영한 프렐조카주의 <프레스코화>와 비교해본다면 <프레스코화>의 경우 관객이 무대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을 유지하면서, 공연 현장보다 더한 시야를 제공해 일종에 시각적 보너스로 모자라는 현장성을 상쇄해주었다. 이전까지 우리가 보아온 외국의 공연 영상 콘텐츠들은 대부분 이러한 편집방식을 따른 것들이다.
그러나 <내면으로부터>의 조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예 영화적인 방식을 사용했고 이는 영화적 공연, 무용작품의 현장성을 영화적으로 해석한 새로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과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인상주의 화가가 고전주의까지 불문율로 여겼던 화면 안의 빛을 제거했듯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무대 조명을 제거한 것이다. 이런 방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영화 제작방식에 능숙한 전문그룹과의 작업이 필수적이며, 창작과정에서도 이들과 시작부터 함께해야 한다. 전문성의 수준, 자본력 등 갖춰야 할 조건이 만만치 않을 것인데, 이런 점은 <내면으로부터>과 같은 라이브 스트리밍 방식이 확산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온라인 공연 유료 중계의 가능성
한편 관객의 시점으로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은 영상 콘텐츠로서의 전달에는 높은 만족도를 주었지만, 무용 공연의 장르적 특성을 살리기에는 움직임의 비중이 넉넉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초반 향과 함께 시작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이내 사라지는 연기처럼 스쳐 지나가길 반복했다.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하는 의상만큼이나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빠져들려 하면 이내 다른 화면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또한 작품이 진행될수록 수시로 바뀌는 화면구도는 몰입을 저해하기도 했다.
사전에 온라인 상영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작품이라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마지막 끝없이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을 보며 댄스필름과 융복합 영상콘텐츠의 경계를 오가는 것이 온라인 공연의 한계점이 아닐까 싶었다.
무대 위 무용수의 호흡과 눈빛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극장을 채우듯, 객석에서 전달되는 고도의 몰입과 긴장감이 형성하는 서로의 텐션(관계)까지 그 순간의 예술로 기록된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서로의 거리만큼이나 앞으로 온라인 공연물의 창작자는 효과적인 전달과 몰입을 위한 강한 자극과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움직임의 시퀀스를 파악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과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갖춘 인프라 구축이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국내 온라인 무용 공연의 유료 중계의 스타트를 끊은 10파운드(한화 약 1만5천원)가 다음 달 예정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의 향후 국내 온라인 공연의 가격 책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주목해볼 필요도 있다. 창작자의 저작권에 따른 수익 배분과 네이버TV와 유튜브에 국한된 국내의 유통과정 등의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하나 분명한 것은 공연예술이 영상기술과 만났을 때, 개인의 감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화두를 던지는 데에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였다.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곳이 최고의 극장이 될 수 있도록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응원해본다.
참여자_ 서현재, 윤단우, 이상헌, 이세승, 최명현
대표 교정_ 윤단우
사진제공_ LG아트센터